경북 의성의 빙계계곡과 밀양 얼음골(천연기념물 224호). 더위가 한창인 요즘 계절의 순리를 거스르는 곳들이다.
이곳에선 한여름에도 바위에서 찬바람이 나오고 8월까지 얼음이 얼어있기도 한다.
올 4월 밀양 얼음골엔 바닥에서 위쪽으로 고드름이 형성돼 신비감을 더해주기도 했다.
여름 속의 겨울을 보이는 이곳은 '과학 피서지'로도 꼭 한번 들러볼만한 곳들이다.
◇왜 그럴까=한여름에 얼음이 어는 원리는 무엇일까.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속시원히 그 신비를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이때까지 발표된 10여편의 연구논문들에서조차 인근 주민들의 속설만을 토대로 해 잘못 기록한 경우도 포함돼있을 정도. 다만 골짜기 지형과 두터운 너덜겅(talus 지형:산비탈에 굴러떨어진 돌들이 쌓여있는 지대), 기상학적인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얼음골의 신비한 현상과 관련해서 1973년 서울대 김성삼 교수가 단열팽창설을 발표한 이래 자연대류설, 기화열설 등 여러 가지 이론들이 제기돼왔다.
김 교수는 얼음골의 신비는 낮은 온도에서 포화상태에 이른 공기가 뜨겁고 건조한 대기와 만날 때 급격한 팽창현상이 일어나 주위의 열을 빼앗아감으로써 갑자기 온도가 내려가는 현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KAIST 송태호 교수는 자연 대류에 의해 겨울철의 찬바람이 돌을 꽁꽁 얼렸다가 냉열이 방출되는 재생기 효과(regenerator effect)라고 설명했다.
신비의 열쇠는 얼음골을 구성하는 화산암들. 용암이 식으면서 만들어진 화산암은 구조가 치밀하지 못하고 미세한 구멍이 뚫려 있는 돌이다.
이런 화산암이 쌓여 생긴 길다란 너덜겅에는 공기가 큰 저항 없이 통과할 수 있다.
겨우내 차가워졌던 너덜겅 내부의 공기는 외부의 온도가 올라가면 상대적으로 밀도가 높아진다.
밀도차이로 너덜겅 내부의 차가운 공기가 흘러나오면서 찬바람을 내고 얼음을 얼린다는 것이다.
부산대 대기과학과 문승의 교수는 한여름에 얼음이 어는 것은 기화열설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기화열설은 일사량이 극히 적고 단열효과가 뛰어난 얼음골의 지형특성상 겨울철에 형성된 찬공기가 여름까지 계곡 주위에 머무는 상태에서 암반 밑의 지하수가 지표 안팎의 급격한 습도차에 의해 증발되는 동시에 주변의 열을 빼앗아 얼음이 얼게 된다는 이론이다.
◇최근 연구동향=얼음골의 신비한 현상을 둘러싼 연구는 최근 들어서도 활발하다.
한여름에 얼음이 어는 원리만 규명된다면 별도의 에너지가 필요 없는 무공해 냉각시스템이 탄생하는 획기적인 연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1997년 일본 쓰쿠바대학 다나카 히로시 교수 일행이 밀양 얼음골을 현장 연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1999년부터 밀양 얼음골에 자동기상측정망을 설치해 연구중인 부산대 황수진 교수(지구과학교육과)는 올 가을학회에 4년간의 관측결과를 보고할 예정이다.
황 교수는 "기온과 습도 풍향.풍속, 일사량과 복사량 등을 종합적으로 장기간 관측해왔기 때문에 여름철 결빙현상의 신비가 어느 정도 풀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구의 얼음골 연구가인 김윤이(66)씨는 지난 1978년부터 전국의 얼음골을 연구해 올해 초'얼음골 탐구'란 책을 펴냈다.
"지형적으로 알맞은 조건을 갖춘 너덜겅 아래층 부분 암석이 겨울에 빙점 이하로 냉각되고 여기에 수분이 공급되면 얼음이 얼게 됩니다.
빙점 이하로 냉각된 너덜겅 내부에 잠열이 큰 얼음이 틈을 메워 보냉효과를 발휘해 여름까지 남아있는 것이 얼음골이죠".
김씨는 여름에만 얼음이 언다는 것은 속설에 불과하다고 했다.
"실제는 3월 전후로 표면에서부터 언 얼음이 내부로, 아래쪽으로 이동하면서 범위도 축소되는 것인데 이 얼음은 빠르면 4월, 늦은 경우 8월 중순이면 다 녹아 없어집니다".
◇우리나라의 얼음골=천연냉장고인 얼음골과 풍혈은 우리나라 전국에 10여곳이 있다.
경북 8승중의 하나인 의성 빙계계곡의 빙혈과 밀양 얼음골, 단양 금수산 능선 위인 하양지가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전북 진안의 풍혈.냉천, 강원 정선의 한골, 경기 연천의 풍혈 등은 여름 내내 찬바람이 불어나오는 곳이다.
그런데 이런 얼음골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김씨는 얼음골 형성엔 지형적 계절적 조건이 작용한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적당한 틈의 크기와 규모가 큰 너덜겅 이여야 한다"며 "적당한 경사를 이루고 햇빛을 적게 받는다는 것도 얼음골을 구성하는 조건"이라고 했다.
암석들의 틈은 결빙공간을 제공하고 배수, 찬 공기 흐름 등 냉기와 얼음보존에 유리하다.
틈이 너무 크면 열전달 속도가 너무 빨라 쉽게 냉각되고 가열되어 결빙상태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내륙 산간지역에 얼음골이 형성되는 것으로 보아 겨울에 얼마나 기온이 낮고 길었는가도 한 요인이다.
4월 중순 이후 비가 많으면 빗물에 얼음이 빨리 녹아 결빙현상이 일찍 끝날 수도 있다.
밀양시 관계자도 "최근들어 여름 결빙상태가 좋지않다"며 "올해는 잦은 봄비로 얼음이 녹아 내려 거의 자취를 감춘 상태"라고 말했다.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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