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여성 대통령'이 나올수 있을까? 얼마전만 해도 상상하기 조차 어려운 화두였지만, 이제는 그 가능성의 싹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몇년새 걸출한 여성 정치인.행정가들이 대거 등장, 뛰어난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 이들을 볼때, (비약인지 모르겠지만) '세계 최후의 가부장적 남성사회'라는 한국사회의 틀이 바뀔 날이 멀지 않았음을 느끼게 된다.
'인물과 사상 제27권'(개마고원 펴냄)은 '한국 여성 정치의 최전선'이라는 흥미로운 특집을 게재했다. 이 책이 다룬 인물은 추미애 민주당의원, 이미경 민주당의원, 최현숙 민주노동당여성위원장, 고은광순 개혁국민당 서초갑지구당위원장, 강금실 법무부장관 등 5명이다.
이들은 각자 독특한 캐릭터를 갖고 있지만, 뉴스의 속성에 비춰 매력적인 인물로 대중의 눈길을 모으는 것은 추미애 의원과 강금실 장관이다.
◆힘이 넘치는 추미애
추미애의 강점은 단연 '자신감'이다. 그의 정치활동은 부끄러움이 없는 정치인으로, 정치철학과 소신이 분명하고, 자신만큼 공부하고 고민하는 정치인이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상임위 활동이나 입법 활동에 관한 모든 여론조사에서 최상위의 성적을 기록했고, 대북송금 특검수용, 신당 비판 등 고비때마다 '큰 결단'을 보여주는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자기관리와 절제, 그리고 성실성은 마치 꼬투리 잡히지 않기 위해 평생을 투자한 사람처럼 완벽에 가깝다.
그렇지만 그의 탁월한 자질은 독선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언론을 백안시하는 태도부터 그렇다. 국회의원회관의 추미애 의원실은 기자들의 발길이 가장 뜸한 곳이다. "기자들이 찾아가면 앉으라는 말도 없이 용건을 묻고, 용건에 대한 간단명료한 답변이 끝나면 말문을 닫아버린다."
그는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정치인이지만, 동료 의원들과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는 인기가 없다. 그의 소신과 추진력을 존중하지만, 인간 추미애에게서는 큰 매력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한 동료 의원의 평가. "지금 국회의원들 중에서 그에게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청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평이나 충고를 해도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즘 그가 이런 저런 공격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신당 모임에 동참하지 않기로 했다는 점이나, 호주제폐지 법안에 유일하게 이름을 올리지 않은 여성정치인이라는 점 등 때문이다. 정치적인 시련기다. '미모와 화려한 경력을 갖춘 여성정치인'이라는 딱지를 떼고 큰 정치인의 반열에 오르려면 한번쯤 거쳐가야 할 관문이 아닐까.
◆너무나 인간적인 강금실
여성계에서 향후 정치판에 여성들의 대표선수로 뛰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첫번째 대상이 바로 강금실 장관이다. 그만큼 매력으로 철철 넘쳐나는 인물이다.
그는 선거판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후보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지위향상 보폭을 10년쯤 앞당겼다는 첫 여성 법무장관으로서의 프리미엄 뿐 아니라, 명석함과 유능함, 리더십, 강인함, 변호사 출신다운 언변, 호감을 주는 인상과 감각있는 차림새 등도 빠트릴 수 없는 요소다.
그렇지만 그는 정치에는 뜻이 없다고 한다. 그는 "나는 그냥 나로 살고 싶다. 장관 끝나면 빚이 남았으니 돈버는 일을 해야 한다. 또 나는 재미있는 것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고, 사적인 생활을 즐기는 사람이다"고 말한다.
'예전에 강금실과 술자리를 같이 한 적이 있다'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도 놀랍다. 잘 나가는 변호사가, 그것도 장차 법무부장관이 될 사람이, 주류가 아닌 주변부 그룹에 섞여 함께 모임을 꾸려간다는 것은 얼핏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다. 장관이 되어서도 시인, 변호사, 철학교수 등의 지인과 함께 아지트인 화가의 화실에 둘러앉아 약간의 술을 함께 할 정도다.
그는 오랜 친구가 남편의 병원비가 부족해 쩔쩔 매는 것을 보고, 결혼반지를 빼 보태라고 줘놓고도, 자신의 결혼반지를 무슨 일에 썼는지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무관심(?)했다. 그가 돈에 무관심하고 솔직하고 통이 크다는 사실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그렇지만 그는 아직까지 확실하게 검증을 받은 사람은 아니다. 여성 법무장관으로서 불과 5개월 남짓 화려한 조명을 받았지만, 어떠한 시련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두 사람의 스타일을 비교하자면...
추미애 의원이 탱크라면 강금실 장관은 오픈카다.
추의원은 대단한 폭발력을 내장하고 웬만한 장애물은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깔고 지나간다. 그의 정체성은 탱크 속에 숨어있고, 자기 정체성 가운데 바깥에 드러내고 싶은 것만 드러낸다. 그처럼 자기 주변 관리를 엄격하게 하는 사람은 정치판에서 단 한명도 없을 것이다.
강금실 장관은 오픈카 처럼 시원하게 바깥으로 트여있다. 기본적으로 자신을 가리기보다 드러내길 좋아하고, 군림하기 보다 소통하기를 더 원하는 사람이다. 그의 친화력은 그의 성품에서 오는 것이고 그의 세계관에서 오는 것이다. 행정가 이전에 그 모든 사회적 계급적 조건과 편견과 선입관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인간이다. 아주 드문 경우다. (소설가 조선희)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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