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초반은 어떤 시대였을까. 〈3.1 운동 후에 일제 식민 통치가 '무단통치'에서 '문화 통치'로 바뀌었다.
'허무와 낭만'의 정서를 담은 문학이 싹텄고 해외 독립투쟁이 치열했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내용이다.
그러나 당대의 문화와 유행의 중심에는 '연애'가 있었다〉. '개조론' '개량론'이 세상을 휩쓸었다.
전근대적인 것을 버리고 새롭게 고치고 거듭나자는 것이다.
지식인들이 주창한 이 새로운 유행은 일종의'연애열'로 바뀌었다.
'연애'라는 말은 당시까지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았다.
수입된 개념, 새로운 용어였지만 이 낯선 개념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당시 연애의 주체는 남성, 그 중에서도 신학문을 배운 '신남성'이었다.
이들의 연애의 대상은 신여성이었다.
전통적으로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기생과 조혼한 아내였던 '구여성'은 '신여성'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신여성의 외양은 구여성과 달랐다.
기름 바르고 쪽찌고 비녀 꽂던 헤어스타일은 단발과 같은 '양(洋)머리'에 밀렸다.
짧은 통치마와 양산은 여학생의 필수품이었다.
연애편지를 주고받고 사랑에 목숨을 걸며, 때로는 사랑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기도 했다.
연애 소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사회 개조론과 잇닿아 있던 연애(열)는 바야흐로 1920년대 초반 식민지 조선의 화두라 할 수 있었다.
낭만과 감상이 넘쳐흐르는 애조 띤 연애편지와 연애소설, 달 밝은 밤의 연주, 이루지 못할 사랑에 괴로워하다 자살하는 연인들,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가 흘러나오는 뾰족지붕, 짧은치마를 입고 즐기는 정구와 스케이트….
1920년대 초반의 연애열에는 이 모든 것들이 있었다.
연애에서 결혼에 이르는 과정과 코스가 새롭게 개발되었고, 연애를 위한 만남의 공간 역시 새롭게 탄생했다.
사람들은 책에서 연애를 배웠고, 학습한 내용을 실천에 옮기려 노력했다.
3.1운동이 실패로 끝난 1920년대. '무엇이 되겠느냐. 정치가가 될 가망이 없고 실업가도 될 가망이 없고…'. 좌절했던 젊은이들은 연애에 들떴다.
이 시대를 달군 연애열은 결국 자아, 내면의 발견에 이르는 열병이었다.
〈참고자료:연애의 시대, 1920년대 초반의 문화와 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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