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린내가 진동했다.
엄마 손을 부여잡은 한 꼬맹이가 코를 움켜쥐었다.
고무 대야에는 붕어 서너 마리가 펄떡거렸다.
물이 튀겼다.
낡은 칼이 도마를 내리치자 갈치가 도막 났다.
생선장수의 이마에는 비늘이 땀방울에 쓸려 미끄러졌다.
늙은 상인은 꼬맹이의 찌푸린 인상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눈가에 주름살이 접힐 만큼 한껏 웃어댔다.
옆 대장간에는 불꽃을 뿜어내고 있었다.
불에 달군 쇳조각들이 언저리에 놓여있었다.
핏줄이 불거져 나온 대장장이의 팔뚝이 연신 두드려대는 망치와 함께 꿈틀거렸다.
쪼그려 앉은 할머니 주위로는 장바구니를 든 아낙들이 모여들었다.
아낙들은 고사리와 채소를 한 움큼씩 쥐락펴락했다.
포장마차 둘레에는 김이 모락모락 솟아올랐다.
순대나 국수로 한끼를 때우려는 이들로 나무의자가 비좁을 정도였다.
트럭을 옆에 둔 과일장수는 값을 깎으려는 손님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고령 장날은 그렇게 왁자지껄했다.
생동감과 활력이 묻어났다.
닷새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장날 모습. 1천500년이 지난 대가야의 도읍지, 활기찬 후손들의 풍경이다.
코흘리개들이 산을 올랐다.
무덤 곁을 헤집는 아이들은 마냥 즐겁다.
따갑게 내리쬐는 햇빛도, 길을 이끄는 어린이집 교사의 목소리도 뒤로한 채 뜀박질에 여념이 없다.
'대가야'가 뭔지, '껴묻이(殉葬) 무덤'이 뭔지는 모르지만, 지산동 고분군을 신기한 듯 살폈다.
아이들의 환한 미소와 재잘거림은 무덤 주위를 맴돌며 퍼져 나갔다.
천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대가야의 왕과 코흘리개들은 그렇게 어우러졌다.
왕릉을 오르는 고사리 손들의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내일도, 모레도, 아니 수십년 뒤에도 그 역사의 끈은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자란 뒤 대가야 왕과의 만남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설 터.
'별들이 소곤대는 우륵의 가락/찬란한 가야금관 벽화 연화문/왕정의 맑은 샘/들리는 금림의 그 말발굽 소리/가야의 후예여….'(대가야문화재 찬가 중/김도윤 작사.작곡)
묻힌 역사의 끈을 이으려는 대가야 후손들의 몸짓도 숙지지 않고 있다.
'대가야향토사연구회'(회장 이달초)는 내년이면 벌써 지천명(地天命)을 맞는다.
지난 56년 경북 고령지역 신문사 지국장 겸 기자 9명이 연구회를 창립했다.
찬란한 대가야 문화를 이어받고, 널리 알리자는 취지였다.
고령지역 유적지와 문헌을 발굴조사하고 향토교실을 마련했다.
그동안 △'고령 2천년사' 발간 △고령군민의 노래 작사.작곡 △합천 야로 야철지 발견 △대가야문화총서 29권 발간 등 숱한 사업을 벌였다.
특히 연구회 회원인 고(故) 조용찬씨는 지난 70년 고령군 '알터 암각화'를 최초로 발견해 학계에 알리면서 대가야 역사의 모태를 규명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연구회 창립회원들은 약 50년 세월이 흐르면서 대다수 작고했다.
그러나 회원수는 21명으로 늘었고, 향토역사를 올곧게 계승하려는 후손들의 애착은 더 강해졌다.
연구회 창립회원인 김도윤(고령읍 지산리)씨는 "수십년 동안 지역 산천을 샅샅이 훑어 새로운 가야문화 유적지를 발견하는 등 많은 성과를 냈다"며 "앞으로는 지방자치단체와 국가가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달초(개진면 반운리) 회장은 "연구회에 젊은 회원들을 확충, 대가야 유적지 보존과 역사문화 계승사업을 더욱 활성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회 고문인 김문배(고령읍 연조리)씨는 "최근 신라와 백제문화가 크게 조명받고 있는데 비해 가야문화에 대한 정부의 관심은 미약하다"며 "정부차원에서 가야문화권 개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가야역사연구회 회원들은 오늘도 500년 역사의 찬란한 영광을 안은 '지산동 고분군'과 '대가야 왕릉전시관'을 돌아보며 대가야의 내일을 말하고 있다.
대가야를 비롯해 가야권 전반의 문화를 조사 연구하는 모임인 '가야문화연구회'(회장 권영관)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 85년 결성한 이 모임은 경북 고령뿐 아니라 대구, 성주, 경남 김해, 창녕 등 가야문화권을 포괄하는 지역의 학계와 향토사학계 20명이 참여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회지(가야문화)를 발간하고 학술세미나, 현장답사를 갖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펴고 있다.
고령에 자리잡은 가야대학교(총장 이경희)도 학생들에게 대가야토기를 바탕으로 발전해온 '도공의 혼'을 불어넣고, 박물관에 토기와 철기 등 다양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또 1996년부터 '가야문화연구소(소장 이동진 교수)'를 꾸려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전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이처럼 대가야의 후손들은 펄펄 뛰는 삶의 현장에서, 역사연구회 모임에서, 대학에서 각각 잊혀져 가는 대가야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또 고사리 손들이 줄지어 지산동 고분을 오르며 대가야 역사의 밝은 미래를 기약하고 있는 것이다.
대가야의 내일은 그렇게 후손들이 보듬고 나가고 있었다.
김병구기자 kbg@imaeil.com
김인탁(고령)기자 kit@imaeil.com
사진.안상호기자 shah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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