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자식처럼 정성껏…나비 사랑 33년

경남 거창군 주상면 남산1구 마을에서 한점 혈육도 없이 혼자 살고 있는 김임순(73) 할머니는 나비와 더불어 살아온 '나비 할머니'이다.

거실과 방안을 가득 메운 수백마리의 나비 표본이 할머니가 정성껏 돌봐온 유일한 자식들인 셈이다.

색깔이 곱고 예뻐서 붙였다는 기생나비, 사자머리 같아 지었다는 사자머리나비, 공군나비, 세모시나비…. 나비마다 할머니가 나름대로 붙인 이름도 독특하다.

할머니의 나비사랑 인연은 30여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나이 마흔이던 지난 1971년, 대구 앞산공원을 산책하다 두꺼비가 긴 혀로 나비를 잡아 삼키는 것을 목격하고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토록 고운 색깔의 나비를 두꺼비나 까치 따위가 잡아먹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어요". 할머니는 그때부터 나비를 찾아 채집하고 표본을 하기 시작한 것이 33년의 세월이 흘렀다.

13년전에는 나비를 찾아 아예 이곳 거창으로 옮겨왔다.

할머니가 '나비박사'로 널리 알려지면서 거창군은 지난해 '테마가 있는 녹색체험축제'에 초청해 전시회까지 마련해 주기도 했다.

요즘은 방학이면 대구.진주 등 인근 도시의 손자같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찾아와 채집과 건조, 표본방법 등을 배워가기도 한다.

할머니는 나비 사랑에 대한 교육도 빠뜨리지 않는다.

"6월 초순 산란기 이전에는 절대 채집하면 안돼요". 할머니는 산란과 함께 생을 마치는 나비나 가로등 불빛에 홀려 땅바닥에 떨어지는 나비 등을 정성껏 거둬 표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렇게 채집한 나비는 1여년간의 건조기를 거쳐 완벽한 것 만을 선별한다.

그리고 유리액자에 옮긴 완성품은 관공서나 나비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내지만 할머니는 돈은 받지 않는다.

"자식이 없으니 아들 딸 시집 장가 보내는 마음으로 아낌없이 준다"는 것이다.

할머니가 한해동안 채집하는 나비는 500여마리 60여종에 이른다.

그러나 "해마다 개체수가 줄어간다"며 "갈수록 농촌환경이 나빠지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며 안타까워 한다.

할머니는 초등학교 때 계단에서 넘어져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다섯번의 대수술을 거친 5급장애자이다.

그러나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며 기초생활보장 선정도 거절한 채 9년전 공직에서 퇴임한 남편이 타계하며 남긴 연금으로 살아가고 있다.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지만 자식같은 수천마리의 나비를 남겨두고 갈 수 있어 행복해요". 할머니의 나비사랑은 끝이 없다.

거창.정광효기자 khje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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