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단상에 오르자 독일 함보른 탄광 광부들로 구성된 브라스 밴드가 애국가를 연주했다. 광부와 간호사들은 애국가를 불렀다. 하지만 그 애국가는 점차 목멘 소리로 바뀌었다.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에 이르러서는 울음소리가 돼 버렸다.
대통령 부부도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먹였다. 이어 대통령은 준비된 연설문을 읽어나가는 도중 말문이 막히기도 했다. 이윽고 장내 곳곳의 흐느낌이 통곡으로 변하자 대통령도 연설을 마무리짓지 못했다. 행사가 끝나고 눈물을 감추려 애쓰는 모습을 보고 뤼브케 대통령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1964년 12월 10일 서독 루르탄광 지대에서 있었던 '아픈 역사'의 한 장면이다. 간략하게 옮겨봤지만, 이 사실을 지금 기억하고 있는 사람 은 과연 얼마나 될까. 당시 광부들은 지하 1천m와 3천m 사이의 막장에서 일했으며, 간호사들은 사망한 사람의 몸을 닦는 일부터 했던 모양이다.
1976년까지 1만30여명의 간호사, 7천800여명의 광부들이 일하러 갔으며, 이들의 송금액이 GNP의 2%대였다고 한다.
▲'파독(派獨) 간호사' 이후 40년 만에 간호사들의 '해외 취업 붐'이라고 한다. 국제통화기금 체제 때부터 취업난으로 간호사들의 해외 진출이 재개된 뒤 해마다 50% 정도씩 늘어나고 있으며, 90% 이상이 미국을 선호하는 경향이다.
미국에서는 경력 2, 3년이면 우리나라 임금의 2, 3배를 벌 수 있고, 취업이민 형식의 영주권도 받을 수 있으며, 건강하면 60, 70세까지도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60년대의 독일 간호사 행렬은 국가 차원의 외화 벌이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지금은 취업난이 가장 큰 원인이며, 악화되는 자녀 교육 환경과도 깊은 함수관계가 있는 점이 다르다.
미국간호사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간호사 면허시험에 1천58명이 응시했으며, 올해는 1천500명이 넘을 전망이다.
미국에서는 간호사가 힘든 직업으로 인식되는 데다 앞으로 10년 동안은 12만명 이상의 인력난을 겪을 것으로 예상돼 이 붐은 가속화될는지도 모른다.
▲지난 1월 김진표 경제부총리는 올해 공공부문에서 지난해보다 8만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 의욕은 높이 살 만하지만, 일회성 일자리가 적지 않아 실망스러웠다.
더구나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민간부문의 일자리는 도대체 늘어나지 않아 곳곳에서 아우성이다. 우리나라 간호사들의 미국행 열풍 소식을 들으면서 애국가의 마지막 구절을 대통령마저 통곡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던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설움과 눈물의 의미를 새삼 떠올려보지 않을 수 없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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