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꿈을 향해 던져라" 꿈 던진 야구영화

스포츠 영화 중에서 '야구'가 가장 많이 선택되는 이유가 뭘까. 혹시 영화로 옮기기에 가장 쉽고, 적당하기 때문일까. 움직임과 멈춤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야구가 카메라에 담기에 가장 적합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한 인간이 도전과 좌절 속에서 마침내 꿈을 이룬다는 설정을 가장 잘 나타내주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병역비리 여파에 휩싸인 그라운드에는 꿈과 희망이 사라졌다. 그러나 스크린에서는 여전하다. 그라운드에서 사라진 꿈과 희망을 야구영화들에서 찾아보자.

◇슈퍼스타 감사용

불 같은 광속구와 폭포수 같이 떨어지는 변화구, 그리고 숨어있는 2cm를 찾아내는 섬세한 컨트롤…. 최고의 투수를 검증할 때 쓰는 잣대들이다. 하지만 17일 개봉하는 '슈퍼스타 감사용'(김종현 감독)은 이것과는 아무 상관없는 평범한 재능을 가진 한 투수의 꿈과 희망을 그렸다.

평범하지만 왼손잡이라는 이유만으로 프로야구단인 삼미슈퍼스타즈 유니폼을 입게 된 감사용(이범수). 사회인 야구팀에서 프로야구 원년 멤버로 급상승한다는 설정이 자칫 나중에 최고의 투수가 된다는 '신데렐라 스토리'를 연상할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철저히 사실에 입각한다. 다섯 시즌 동안 1승1무15패. 팀 내에서는 패전 처리용 전문 투수로 인식되고, 그가 나오면 상대팀은 감사해 했으며, 중계방송은 정규방송 핑계로 중단하곤 했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당대 최고의 투수로 이름을 날렸던 OB베어스 박철순(공유)의 20연승을 눈앞에 둔 경기. 삼미의 투수들은 모두 희생양이 되기를 거부했고, 어쩔 수 없이 감사용은 생애 처음이자 고대했던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오른다. '최고와 대결해 이기면서 마무리짓는다'는 으레 이런 영화들이 가지는 방정식을 이 영화는 피해 간다.(15패 뒤의 1승은 벅찬 감동이겠지만)

그래서 이 영화는 단순한 야구영화가 아닌 꼴찌들을 위한 찬가로 읽혀진다. 뭔가 잘 안 풀리는 요즘 사회를 살아가는 소시민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취지대로 감동과 웃음을 적당히 버무려 휴머니즘의 옷을 입힌 이 작품은, 더도 덜도 아닌 딱 기대만큼 관객을 만족시킨다.<

경기 장면에는 스포츠 영화의 묘미가 잘 살아 있는 느낌이다. 땀방울까지 생생히 보여주는 클로즈업, 한숨 뜸을 들이다 결과를 보여 주는 속도조절, 교차편집된 주변사람들의 반응 등 긴박감과 감동을 의도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점에서 스포츠영화는 스포츠중계와 다른 매력을 갖는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1980년대를 프로야구와 함께 보낸 세대에게 바치는 영화다. 덧붙인다면 성적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부정까지도 서슴지 않는 요즘 프로야구 선수들이 꼭 봐야할 영화. 상영시간 115분, 전체 관람가.

◇이색적인 두 최초 야구단

뉴욕 양키스, 한신 타이거즈, 두산 베어스. 미국과 일본, 한국을 대표하는 프로야구단이지만 이들 구단의 맨 첫머리에는 항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이들 외에도 최초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이색적인 구단들이 있다. 물론 그들을 위한 영화도 이미 나왔다. 바로 '그들만의 리그'(페니 마샬 감독)와 'YMCA 야구단'(김현석 감독).

금발 미녀에 미니스커트 유니폼을 입고 섹시하게 슬라이딩하거나, 파울볼을 잡은 팬에게 키스선물도 하고, 덕아웃에선 뜨개질을 하는 등 야구와는 무관하다고 생각되는 이 구단은 실제로 있었다. 2차 대전 당시 남자선수들의 참전으로 인해 시들해진 야구의 인기를 되살리기 위해 투입된 미국 여자프로야구 리그. 영화 '그들만의 리그'는 그녀들의 야구에 대한 열정과 꿈을 담은 이야기다.

'YMCA 야구단'은 문헌상 조선 최초의 야구단이었던 'YMCA 베쓰볼' 팀의 흥망성쇠를 애잔한 유머로 다루고 있는 영화. 구한말이었던 1905년 미국인 선교사에 의해 탄생한 이 야구단은 암울했던 시대에 민족혼을 던지며 조선인들에게 하나되는 기쁨을 선사했다. 아마도 경기 때마다 선수들과 관중이 한목소리로 이렇게 외치지 않았을까. "잘하세!"

◇가장 기억남은 야구영화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야구영화 장면을 꼽으라고 하면 아마도 지난 1987년 개봉했던 '내츄럴'(베리 레빈슨 감독)이 생각나지 않을까. 공에 맞아 경기장 전광판의 조명등이 터지면서 폭죽놀이를 하듯 떨어지는 불꽃 사이로 천천히 그라운드를 도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모습은 환희 그 자체였다.

TV CF에서도 수차례 쓰일 정도로 이 라스트 장면은 압권. 천재적인 야구 실력을 가진 한 시골 소년 테드 윌리엄슨의 파란만장한 삶과 그의 꿈을 가득 담았던 이 영화는 야구영화의 고전으로 꼽힌다.

◇꿈을 이룬 영웅

2002년 개봉한 '루키'(존 리 핸콕 감독)는 35세의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최고령 신인 짐 모리스의 실화를 스크린에 옮겼다. 부상으로 야구를 일찌감치 접어야 했지만 야구에 대한 불 같은 열정은 나이를 잊게 만들었다.

감동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있지만 영화는 밋밋하고 심심한 편이다. 다만 어렸을 적 꿈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노력해 그토록 갈망하던 마운드에 우뚝 선 그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비록 두 시즌 동안 기록은 보잘것 없었지만 그가 단지 야구공이 아닌 꿈을 던진 사나이로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게 된 비법은 뭘까.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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