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위험한 식탁

존 험프리스 지음/르네상스 펴냄

생존하려면 다른 생물을 먹어야 한다.

싱싱한 푸성귀, 기름기 흐르는 고기, 윤기나는 과일, 따뜻하고 얼큰하며 시원한 국물. 성찬으로 차려진 식탁 앞에 서는 즐거움은 여느 쾌락에 비할 바 아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의 식탁은 인간의 욕심이 만든 각종 오염 찌끼들로 찌들어가고 있다.

자연주의 학파의 주창자인 도리스 그랜트는 1959년 '주부에게'라는 간행물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이제 정직한 식품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음식물은 어느 것 할 것 없이 변형 처리되거나 화학물질이 첨가되어 본래의 좋은 성분이 모두 제거되고 파괴된 상태다.

게다가 불결하다.

우리가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

그녀가 목청을 높인 보람도 없이 '정직한 식품'을 사기란 더욱 요원한 일이 됐다.

영국의 식품학자 에릭 밀스톤 교수의 추정에 따르면, 최소한 3천850종의 식품 첨가물이 현재 사용되고 있고, 보통 사람이 매년 먹는 첨가물의 양은 4kg이나 된다.

정부는 식품 포장에도 경고 문구를 붙이는 것을 의무화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경고! 먹으면 건강에 해로울 수 있습니다.

'

◇ "농사는 자연과의 투쟁 아니다"

초식동물인 소에게 육식 사료를 먹임으로써 인간은 광우병이라는 보복을 받았다.

인간 광우병 때문에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150명이 숨졌고 이중 143명이 영국인이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영국의 방송인 존 험프리스로 하여금 식탁의 위험성에 관한 책을 쓰게 하는 계기가 됐다.

비슷한 책들이 농약 잔류물과 화학 첨가제의 위험성 등을 알리는데 치중하고 있다면 그의 '위험한 식탁'(원제 The Great Gamble)은 건강에 위협을 주는 식량 생산방식을 인류가 어떻게 채택하게 됐는지 그 과정을 추적한다.

도시 인구가 불어나기 시작한 산업혁명 때부터 음식의 질은 본격적으로 나빠졌다.

불량식품의 역사는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건 개인적 비리였다.

집약 농업과 상업화된 목축업을 통해 불량 식품은 조직적인 범죄로 번져나갔다.

기술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집약적이고 산업화된 농·축산업은 음식의 오염을 가속화시켰다.

외견상 우리의 식탁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풍성하다.

그러나 각종 기생충과 질병 때문에 괴로와하면서도 고도의 가공된 먹이와 막대한 양의 화학약품으로 목숨을 지탱하는 양식 물고기들, 약으로 토실토실 살이 오른 소·닭, 베타 카로틴과 적정량의 철분을 함유하도록 만들어진 쌀 등으로 우리 식탁은 채워져 있다.

미국의 생물학자인 레이첼 카슨은 저서 '침묵의 봄'에서 '전 인류가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는 순간에서부터 죽을 때까지 위험한 화학적 물질과의 접촉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적었다.

가혹하게 다루고 지나치게 많은 생산을 요구받으면 땅은 수확을 오히려 더 적게 내놓는다.

옛날의 농부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퇴비로 양분을 토양에 공급하든지, 밭이 쉴 수 있게 작물을 심지 않았다.

그러나 집약농업 방식 이후 농부는 화학비료로 땅을 혹사시켜왔고 병충해를 잡겠다며 농약을 퍼부었다.

화학비료로 땅은 황폐화되고 농약은 흙속 잔류물로 축적되거나 강, 호수, 바다로 흘러들고있다.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인간의 몸 속에 이같은 화학물질이 쌓이는 것은 피할 수 없다.

◇ 인류건강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우리의 몸엔 500여종의 화학물질이 섞여 있는데 100년 전엔 존재하지 않은 것들이다.

영국의 경우 1999년 조사에서 43%의 과일과 야채에서 농약 잔류물이 발견됐다.

환경단체 '지구의 벗'(Friends of the Earth)은 집에서 흔히 먹는 과일 샐러드에 들어가는 과일에 무려 57종의 농약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집약 농업이 예전의 생산방식보다 효율적이라는 주장은 허구일 뿐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비료 1t을 만드는데는 석유 5t이 필요하다.

식량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것보다 서너배나 되는 에너지가 식량 생산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항생제는 가축의 성장 촉진제로 쓰이고 있다.

영국의 양계장에서 사용되는 항생제의 종류는 모든 병원을 다 합한 것 만큼이나 많다.

새로 떠오르고 있는 위험은 유전자 변형식품이다.

아쉽게도 유전자 변형식품이 구체적으로 인체에 어떤 피해를 입히는지 정확한 연구는 아직 없다.

인류 건강에 어떤 결과를 미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미 많은 유전자 변형식품에 노출돼 있다.

단순히 농작물산 방식을 바꾸는 것만이 아니라, 사고의 전환이 절실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특히 농사는 자연과의 투쟁이라는 생각을 인류는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집약 농업은 식량 부족 사태에 대한 반사작용에 불과했는데 폐해를 제대로 아는데는 50년의 세월이 걸렸다.

뭐든 하고 싶은대로 하고 어떤 결과가 벌어질지 전혀 신경쓰지 않는 오만한 태도를 더 이상 유지해서는 안된다.

저자는 목청을 높인다.

이제는 멈춰야 한다고.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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