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안동여성농업인센터를 찾았다.
만나보려던 박인옥(41) 소장은 없었다.
휴일날 출근을 하지않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곳 일에 워낙 열정을 보인 터라 혹시나 해서였다.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예상치 않았던 불청객이 반가울 리 없었겠지만 여성농업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간청에 허락을 받았다.
여성농업인센터 앞에서 40분쯤 기다렸을까. 화장기 없는, 조금은 푸석푸석한 얼굴의 그가 나타나 대뜸 핀잔부터 준다.
"집에서 쉬는데 미리 약속도 하지 않고 찾아오면 어떻게 합니까."
그는 전북 군산 출신으로 이화여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교사가 되려는 꿈도 있었지만 농민의 삶을 살며 그 속에서 노동의 의미를 찾기 위해 여성농민의 길을 택했다.
대학시절 열성적으로 참가한 농활이 진로변경의 방향타였다.
1995년이었다.
대학때 만나 뜻을 같이했던 남편이 먼저 서울에서 안동시 길안면으로 내려와 과수원을 장만했고 그는 이듬해 갓난아이 둘을 데리고 합류했다.
연고는 전혀 없었다.
단지 농활을 경북지역으로 주로 다녔고 이곳 출신인 전국농민회 간부로부터 소개를 받았다는 게 인연의 전부였다
그는 처음 왔을 때의 마음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진 게 없다고 한다.
"육체노동이든 정신노동이든 사회를 지탱하고 기여하는 데는 아무런 차이가 없지만 상대적으로 그 가치에 차이를 두는 사회여서, 많은 농민들이 농사를 버리고 농업이 시들어 간다고 생각했어요."
서울서 전셋집 찾은 돈으로 남편은 사과밭 4천 평과 농기구를 샀고 그는 남편의 밭일을 도우면서 길안면 여성농민회를 맡아 억척스럽게 일했다.
돈은 좀 벌었느냐는 질문에 파안대소를 하며 "빚만 졌다" 고 대답했다.
"땅과 농기구 구입하는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든데다 한두 번의 사과값 폭락으로 입은 손실을 좀처럼 만회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일을 하다 실패하면 농사짓겠다는 생각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2001년부터 안동시여성농업인센터가 개설되고 그 무렵부터 사과값이 좋아진 건 조금은 지친 그의 농촌생활에 활력소가 됐다.
농촌에 정착한 뒤 그의 최대 관심분야는 여성농업인문제였다.
그만큼 농림부에서 인터넷 공모를 통해 민간위탁 여성농업인센터를 개설한다는 소식을 듣고 유치전에 뛰어든 것은 당연한 일. 그동안 생각해 둔 농촌어린이 보육, 방과 후 학습지도, 여성농민 농업교육 및 문화활동 프로그램 등으로 사업계획서를 냈다.
결국 전국 4곳 가운데 하나를 얻어냈고 그는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4년간 센터 대표생활은 강행군 그 자체였다.
5명의 종사자들과 원아 21명의 보육· 학습지도에다 여성농민과의 상담에 입술이 부르튼다.
"이런 시설이 2001년에 들어서야 만들어졌다는 것이 너무 아쉬워요, 여성 없는 농촌과 농업은 상상할 수도 없고 여성농업인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도 이루 말할 수 없는데 사실상 방치됐던 거죠."
그는 뒤늦었지만 정부에서 이런 시설을 운영하며 여성농업인문제 해결을 위해 제도적으로 접근한다는 것과 그 연장선상에서 경상북도가 도내 시·군에 농촌정보보육센터를 만들고 있는 것을 무척 고무적인 현상으로 평가했다.
그는 "아직도 보완하고 지원해야 할 게 많다"며 "특히 여성농업인의 보육과 문화생활, 경제적 지위향상 부분에 대한 지원은 현재의 2배, 3배가 되더라도 지나치지 않다" 고 강조했다.
또 "관련 정책들은 학자와 관료, 여성단체가 참가한 가운데 숙의돼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마련되야 할 것" 이라며 "여성농민들이 파업하면 정말 만만치 않을 것" 이라고 의미 있는 농을 건넸다.
올해부터 경상북도 여성농민회 사무국장을 맡게 된 그는 "농촌에서 살고자 했던 초심을 흔들림 없이 지키며 우리 농촌과 농업인 여성을 위한 일에 한걸음 더 내디뎌 볼 생각"이라며 항상 격려해준 농민들에게 고맙다는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안동·정경구기자 jkg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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