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은 동성로가 젊음의 거리지만 1960년대 청춘을 보낸 연세 지긋한 장년층 이상에겐 중앙통이 대구 최고의 번화가였다.
ㅁ양복점 사장 이상동(65)씨는 20대 초반 직장을 구하려고 이 거리를 찾은 뒤 줄곧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냈다.
그는 사진을 쳐다보며 옛 생각에 젖어 빙그레 웃더니 사진 속 오른편의 애안당이 현재 이동통신 대리점이라고 했다.
"당시 이곳은 양복점이 줄지어 있었어요. 그 땐 다들 양복을 맞춰 입었으니까 장사도 잘 됐죠. 1966년이라면 내가 재단사로 일할 무렵이네요. 당시에는 일을 시키고 밥만 먹여줘도 일하겠다는 사람이 넘쳐나던 시기라 기술까지 가르쳐주는 양복점 취직은 하늘의 별따기였지요"
옛 사진 속 아치 아래에는 '도라지 위스키'라고 적혀 있다.
"이 무렵 애안당 뒤편은 도라지 위스키를 파는 고급 술집들이 즐비했어요. 향촌동에서 술을 먹으려면 고향의 논 한마지기는 날릴 것이라는 말들도 나오던 때죠"
이씨는 사진 속 버스를 보더니 한바탕 웃는다.
"아! 이 버스! 그땐 시내 합승버스라 불렀는데 요즘으로 치면 좌석버스 정도 될까. 일반버스보다 요금도 더 비쌌고."
국경일 행사라도 벌어지면 이 거리에는 고적대의 음악소리가 울려퍼졌고 이를 구경하는 사람들로 거리가 북적댔다.
"이 때는 중앙통이 최고의 번화가로 요즘 말로 하면 정말 '삐까뻔쩍'했죠. 그땐 지금처럼 '시내 간다'고 하지 않고 '성내 간다'고 했고 그 성내가 바로 이곳이었지요. 동·서·남성로와 남문로 밖은 시골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논밭이 그대로 남아있었으니…. 나도 그땐 한창 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는데…" 채정민기자 cwolf@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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