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무당…과연 '뭔가' 있나

샤먼/ 피어스 비텝스키 지음/ 창해 펴냄

'무당은 쉴 새 없이 두 발을 모아 뛴다. 징과 꽹과리, 바라는 격렬하게 울어대고 무당은 빙글빙글 춤을 춘다. 한바퀴씩 돌 때마다 다른 신(神)이 들고 난다. 동자신은 애기 목소리를 내고 장군신은 벼락같이 소리를 지른다.

굿판이 벌어지는 마당엔 소, 닭, 돼지의 붉은 살점이 흩어져 있다. 무당은 짐승을 죽이고, 그 피를 먹어 원혼을 달랜다. 그리고 초승달 모양의 작두날에 맨발로 오른다. 웃는 듯, 우는 듯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하늘을 보고, 사람을 보고, 땅을 본다.'

굿 판은 늘 공포감과 신명으로 뒤섞인다. 망아(忘我'ecstasy) 상태에 빠진 무당의 말과 몸짓은 의뢰인의 감성에 불을 붙인다. 죄책감, 불안감, 기대감 등 가슴 속 응어리는 격렬하게 폭발하고, 이내 고요함과 무력감이 엄습한다. '카타르시스'다. 이런 과정을 통해 무당 즉 샤먼은 산 자의 세계와 영들의 세계를 매개하는 치유자이자 사제가 된다.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나타나는 샤먼적 신앙의 특징들은 놀랄 만큼 닮았다. 샤먼은 영들에게 선택되어 망아상태에 빠지고 사람의 영혼과 함께 천상의 다른 세계로 날아오르거나 위험한 틈새를 통해 지하세계의 공포 속으로 기어들어가도록 가르침을 받는다. 또 영들과 싸워서 그들에게 희생당한 사람들을 치유하며 적들을 죽일 힘과 사람들을 질병 또는 굶주림에서 지켜낼 힘을 얻는다.

샤머니즘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이며 영적인 분야이자 의료행위다. 그러나 샤머니즘에는 교리도 없고 세계적인 샤먼 교회도 없다. 게다가 판단 기준이 되는 경전도 없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권위 있게 설교해 줄 사제도 없다. 문자로 기록되는 경우조차 극히 드물다. 그러나 샤머니즘은 수천 년 동안 존재해 온 종교적 심상이다. 단일하게 통합된 종교가 아니라 종교적 감수성이나 비교문화적인 관습의 한 형태로 때로는 통합되고 사라지거나 기성 종교와 타협하면서도 끈질기게 맥을 이어왔다. 우연과 불행에 관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두려움이 수렵과 홍수, 흉작 등 자연으로부터 여권과 허가서, 시험 합격이나 구직 등 복잡해진 사회에서 기복 신앙의 형태로 옮겨갔을 뿐이다.

'샤먼'은 시베리아의 설경에서 아마존 정글에 이르기까지 과거와 현존하는 샤머니즘의 세계를 펼쳐낸 책이다. 석기시대부터 공산주의 체제 이후의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환상, 입무의식, 샤먼의 노래, 샤머니즘과 정신건강, 샤먼의 식물활용, 샤먼적 활동의 정치적'사회적 배경 등을 풍부한 사진과 설명을 통해 풀어냈다. 합리주의 혹은 과학적 전통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한 존재들에 대한 심각한 질문을 던지는 것. 샤먼의 자연과의 합일에 대한 감각과 최근 서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태학적 의식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샤먼적 논리는 영혼이 몸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꿈은 영혼이 독자적으로 돌아다니다가 죽음을 야기하지 않고도 되돌아올 수 있다는 증거다. 또 샤먼의 세계는 각 집단이 뿌리내리고 있는 자연 관념과 통한다. 캄차카 반도에서 시베리아의 사람들은 거친 비바람과 광활한 산악지대에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절벽과 호수에서 영들을 본다. 아마존의 무성한 정글에서는 영들이 물속까지 뿌리내린 특이한 종의 거목들 속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샤먼의 삶은 고단하다. 영들과 교통하지만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이기에 죽을 만큼 앓고, 평범한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행복을 빼앗기는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 때문에 샤먼들은 영들이 들어와서 샤먼이 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가능한 한 있는 힘을 다해 이에 저항한다. 이 과정에서 겪는 것이 바로 '무병'(巫病)이다. 무병을 앓을 때는 횡설수설하거나 알몸으로 들판을 내달리기도 하고 나무 위에서 일주일을 지내거나 땅바닥에 미동도 않고 누워 있는 등 정신이상 징후를 보인다.

무병은 샤먼에게 영력을 부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일생 동안 지속될 근심과 고통을 야기한다. 하지만 무병 자체는 샤먼이 자신의 운명을 이해하고 수련받는 수단이 된다. 아마존 강 상류에 사는 페루의 한 샤먼은 몸 중에서 가장 생명력이 넘치는 부위인 위장의 윗부분에 영력의 일면을 진한 흰 가래로 간직하고 있다. 샤먼은 이 지식과 영력을 전수하기 위해 이 가래 중 일부를 뱉어내 자신의 제자에게 마시라고 준다.

유혹과 장애물, 괴물이 등장하는 샤먼의 여행은 영웅의 서사를 담은 모험담의 원형이다. 그리스의 오디세우스는 아름다운 노래로 선원들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세이렌 요정을 극복하고 외눈박이 거인에 의해 동굴에 갇히고 섬에 노예로 감금되기도 한다. 또 지하 세계의 죽은 자를 방문한다. 자아 발견과 동시에 세계의 발견인 이 여행에서 오디세우스는 샤먼의 모습과 겹쳐진다. 책은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에서 실행되고 있는 현대 샤머니즘들의 사진과 샤먼 예술, 공예품, 우주론적 지도 등 풍성한 역사적 기록을 담아냈다. 또 자료에 대한 상세한 주석과 함께 본문에서 언급한 종족과 민족의 목록, 주소록 등도 담아 샤머니즘에 대한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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