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르포] 부인 먼저 떠난'외톨이 농사꾼'

문경시 호계면 봉서리 김모(69)씨는 4년 전 아내와 사별한 뒤 혼자서 소 10여 마리를 키우고 9마지기 논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처음엔 자녀가 자주 집을 찾고 반찬도 택배로 보내와 불편이 없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집안살림은 엉망이 됐고 외로움은 깊어졌다.

이웃의 주선으로 용기를 내본 맞선은 마음의 상처만 됐다.

현찰은 얼마나 줄 수 있나, 노후대책은 어떻게 해줄 것이냐 등 재혼을 돈으로 보상받으려는 세태는 그에게 충격이었다.

김씨는 "사람 만남은 정주기 나름인데 정은 우리들 곁을 떠난 지 오래이고 오직 돈만 있을 뿐"이라며 "빨래는 세탁기가 해줘 문제가 없는데 밥 해먹는 일이 귀찮을 따름"이라고 씁쓸해 했다.

농촌 고령화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김씨처럼 혼자 농사를 짓는 노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 범국가적 차원의 관심이 절실하다.

농촌지역 홀몸노인들은 대부분 부부가 함께 오순도순 농사를 짓다가 어느 한쪽이 먼저 세상을 떠나 '외톨이 농사꾼'으로 남았다.

수십 년 동안 고달픈 농사일에도 부부가 함께 들판에 앉아 새참도 먹고 대화를 나누며 힘든 줄 모르고 지내왔지만 이제는 말 한마디 건넬 상대조차 없이 외로움 속에 지내고 있다.

문경시 호계면 봉서리 경우 60, 70대 할아버지, 할머니가 혼자 살면서 농사 짓는 가구가 전체의 3분의 1 정도인 10여 호에 달하고 있다.

할머니들은 힘에 부치는 논농사는 임대를 주고 고추·참깨 등 밭농사만 직접 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농기계를 다룰 줄 아는 할아버지들은 논농사는 직접 짓고 밭은 묵히거나 빌려주고 있다.

2일 오전 이 마을에서 만난 최모(77) 할머니는 "20여 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6남매를 키우면서 농사를 지어왔다"며 "할머니들은 그래도 농사일과 식사, 빨래 등에 문제가 없지만 혼자 사는 할아버지들은 보기에도 안쓰럽다"고 걱정했다.

사실 김씨처럼 다른 할아버지들도 출가한 자녀가 밑반찬을 챙겨 보내주는가 하면 이따금 달려와 빨래도 해주고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취사. 이 때문에 할아버지 혼자 사는 집이 많은 마을에서는 이장, 새마을지도자는 물론 이웃 모두가 걱정할 정도다.

김치를 담그거나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면 꼭 갖다 드리는 배려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이 마을 김옥진(60) 이장은 "할아버지들은 혼자 농사일에다 집안 살림까지 힘들어 자녀까지 나서서 재혼을 시켜려 노력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자들이 돈만 따져 잘 성사되지를 않는다"고 했다.

문경시 산북면 김모(73) 할아버지는 "늙어서 말동무도 할 겸 재혼을 하고는 싶지만 아무도 쳐다보는 사람이 없다"고 했고 박모(68) 할아버지는 "자식들 성화에 못 이겨 서울에도 가 살아봤지만 힘들어도 시골에서 농사 짓고 사는 일이 가장 좋은 것 같아 이틀 만에 되돌아 왔다"며 웃었다.

문경시농업기술센터 이상진 소장은 "농촌 인력이 고령화로 치달으면서 홀로 농사를 짓는 어르신들이 늘어나 일손지원과 특별 영농지도 등 용기를 북돋워주는 정책에 신경을 쏟고 있다"고 했다.

문경·장영화기자 yhj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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