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양비론의 정당성

대우 김우중 전 회장이 6년여만에 귀국한 날 인천 국제공항은 개항 이래 최대의 취재진과 시위대가 몰렸다. '우리 경제를 이끈 진정한 영웅', '서민의 피땀을 눈물로 얼룩지게 한 부도덕한 경제인'이란 양면의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는 그에 대한 착잡함과 원망이 함께 쏠린 것이다.

평양에서 열리고 있는 6'15 남북공동선언 5주년 기념행사를 바라보는 눈도 완연히 다르다. 통일부 장관을 대표로 보낸 것을 보면 우리 정부는 평화통일에의 향로로 인정한다. 그러나 보수 우익단체는 6'15 행사는 '대한민국에 대한 반역음모'라며 극렬하게 비난한다.

지구촌 인류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에도 환호의 박수갈채 뒤로는 우려의 시선이 던져진다. 난치병 치료라는 복음에 잠복한, 인간존엄성의 훼손 위험성을 우려한 종교계는 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한다. 과학기술의 양면성 때문이다.

국가정책에서부터 개개인의 선택까지 무슨 일에나 양면이 있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고 득이 있으면 실도 따라온다. 당연히 어느 쪽을 선택할까를 놓고 찬반 양론이 부딪친다. 양면의 주장과 장점은 모두 타당성이 있다. 그러기에 서로 등진 양면은 쉽사리 합쳐지지 않고 승복하려 하지 않는다.

사방 팔방으로 흩어지는 다양한 욕구와 목소리를 모으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국가의 방향을 잡아주는 정치가 어렵고 정책에는 정답이 없는 것이다. 먹고 사는 길이 제각각인 국민들의 욕구를 무슨 재주로 한칼에 해결할 수 있을까. 삶의 다양한 방식에서 갈등은 불가피하고 다양성을 외면하는 데서 갈등은 커진다. 서로 다른 욕구를 인정하지 않기에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정부의 정책 선택은 때때로 너무 쉽게 결정된다. 그래서 정권이 바뀌면 정책도 달라지고 국민은 갈팡질팡 혼란에 휩싸인다. 개발 독재시절 법을 지킨 순진하고 착한 국민은 어느새 민주화에 낙오한, 어리석은 패배자가 되어 있다. 서민을 위한 깨끗한 정책이 되레 서민의 삶을 옥죄고 가진자가 덕 보는 토대를 만들어 준다. 서울 강남 집값을 잡겠다고 나서자 강남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고 금연을 확산시키겠다고 담뱃값을 올려 서민들의 주머니를 턴다.

그저 '빨리 빨리'다. 개혁은 급하고 멈출 수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동서고금 정권이 바뀔때마다 으레 등장해 온 개혁의 목소리는 국민만 바보로 만든다. 바둑에서도 아마추어는 저만의 수순만 생각하고 프로는 상대의 속셈을 헤아린다.

양비론은 우리 사회에서 잘못된 주장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 것도 옳고 저 것도 옳다는 논리야말로 비겁하고 무책임하다고 격하한다. 남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여유를 잃어버린 사회의 잘못된 판단이다. 양면을 함께 보는 여유와 인내를 출발선으로 하는 점에서 양비론은 나만 옳다는 주장보다 정당하고 건강하다.

대구'경북의 침체를 다양성의 상실에서 찾는 이가 적잖다. 술도 내 고향 것만 마시고 그저 끼리끼리만 어울린다. 남이 하는 일은 우선 탓부터 하면서도 달콤한 과실은 먼저 먹으려고 한다. 언제부터인지 지역 민원을 받아 든 중앙부처 공무원 사이에선 "해줘 봤자 알아주지도 않는데 무엇 때문에 해 주느냐"는 말들을 한다고 한다.

국가 정책에는 단답식의 정답이 없다. 대신 저마다 이유있는 다양한 답이 등장한다. 살아가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지름길만 빠른 길이 아니다. 돌아가는 일이 의외로 편하고 빠른 길이 될 수도 있다.

한 세기 전 어려운 시절을 어렵게 살다간 풍수의 삶을 그린 소설 이야기다. 대동강변 순천 고을 어느 촌로의 묘앞에서 당대의 명 풍수는 삶의 지혜를 깨닫는다. 농부였지만 땅을 볼줄 알던 촌로가 묘터로 잡은 곳은 이른바 산비수거형(山飛水去形)이었다. 자식들이 빈털터리가 돼 고향을 떠나야하는, 절대로 묘를 써서는 안되는 흉지였다. 그러나 패가망신하여 고향을 떠나는 최악의 선택이 전쟁의 아비규환속에서 자손들을 살리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徐泳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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