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술좌석마다 군대 얘기 봇물

군부대 총기 사고가 터진 이후 남자들이 모인 자리마다 군 얘기가 단연 화제다. 20일 밤 9시 대구 중구 계산동 한 식당. 막걸리를 한 잔씩 주고받기 시작한 회사원 7명. 한 사람이 온 국민을 놀라게 한 총기사고에 대해 얘기를 꺼내자 군대에서 있었던 각종 일화가 봇물 터지듯 흘러나왔다.

가장 먼저 나온 얘기는 선임병들의 각종 가혹행위에 대한 아픔들. 1970년대에 군생활을 했던 박모(52·대구 달성군 다사읍)씨는 "당시에는 주먹으로 가슴팍을 치고 군홧발로 무릎을 차는 등 주로 구타로 군기를 잡았다"고 했다. 80년대 군번인 선모(45·서구 평리동)씨는 "해병대에선 곡괭이 자루, 군용 철모 등으로 단체로 때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을 받았다. 그러자 제대한 지 5년 된 서모(28·달서구 용산동)씨가 갑자기 얘기를 자르며 "선배! 요즘은 가혹행위가 더 지능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씨는 "변태 같은 한 고참은 지프 라이터를 이용, 실수한 후임병들의 콧털을 살짝 태우는가 하면 "뒤로 돌아라"고 한 뒤 정통으로 똥침을 날린다"고 하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이날 밤 10시쯤 수성구 지산동 한 막창집. 자리마다 총기사고가 화제에 오른 후 군대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5명의 직장동료끼리 소주잔을 돌리던 한 좌석에선 신세대 장병들의 나약한 정신상태와 물러진 군 기강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권모(50·중구 동인동)씨는 "함께 생활하는 전우들을 향해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한다는 게 있을 수 있느냐?"며 "'오냐 오냐'하며 자라난 세대들이 양보하고 인내할 줄 몰라 생긴 참극"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옛날 군생활을 떠올리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어느 부대에나 있는 '고문관' 얘기도 빠지지 않았다. 암구호도 제대로 외우지 못할 정도로 무식했던 골통 병사들의 얘기부터 사단장 소원수리 때 '흰 우유 대신 딸기, 초코 우유를 달라'고 했던 철없는 이등병의 웃지못할 에피소드까지. 군대를 일찍 갔다온 선배들은 "지금은 관심사병이라 불리던 당시 고문관들은 항상 사고를 치고 다녔지만 마음만은 착하고 순수했다"며 "이기적이고 약삭빠른 신세대 고문관과는 질적으로 달랐다"고 세태를 비판하기도 했다.

방위 출신인 최모(31·남구 대명동)씨도 "도시락에 맛있는 반찬을 싸와 혼자 먹는 동기 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한마디했다.이들 5명은 자정무렵 숨진 장병들에 대한 애도묵념으로 술자리를 끝냈다.

권성훈기자 cdrom@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