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숨겨놨던 영화 이야기 '술술'

나의 사랑 씨네마 - 김수용 감독의 한국영화 이야기/ 김수용 지음/ 씨네21 펴냄

박찬욱의 몽타주·박찬욱의 오마주/ 박찬욱 지음/ 마음산책 펴냄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가 시작된 지도 10여 년, 한국 영화사도 80년이 넘었다. 그동안 숱한 작품과 감독이 명멸해간 한국의 영화판도 일정 부분 정리가 시도되는 요즘이다. 최근 한국영화가 급격하게 신장함에 따라 이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 또한 증대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의미있는 영화 관련 서적 3권이 새롭게 소개됐다. 하나는 '한국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로 불리는 한국 영화계의 거장 김수용 감독의 '한국영화 이야기'이고, 다른 두 권은 현재 한국 영화계의 대표감독 중 한 명인 박찬욱 감독의 '자신의 영화 이야기'와 '외국 영화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다른 두 감독이 다른 매체에서 다뤘던 이야기를 엮어서 아주 우연히 같은 시기에 책을 펴낸 것이 흥미를 끈다.

김수용 감독은 1960,70년대 열악한 시설과 억압적인 시대적 분위기 속의 한국영화계에서 양적·질적으로 수작을 만들어내며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한가운데에 섰던 작가다. 통산 109편을 찍은 다작 작가이면서도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 같은 흥행작과 '갯마을'(1965), '만추'(1982) 같은 수준높은 영상을 선보인 영화사적 자료 그 자체다.

이 책 '나의 사랑 씨네마'의 내용은 그런 김감독이 평생에 걸쳐 꼼꼼히 기록한 메모를 근거로 한 이야기들이다. 개인사적 측면은 물론 작품적·영화산업적·문화사적 측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김감독이 영화에 첫발을 디딘 후 신상옥 감독과의 첫 만남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거치며 검열과 맞설 수 밖에 없었던 얘기, 최근작 침향을 찍으며 있었던 얘기로 이어진다.

검열에 관한 이야기는 억압의 시대에 만들어진 영화들에 대한 애환을 들려준다. '병신과 머저리'라는 제목은 관객을 모독한다는 이유로 '시발점'(1969)이라는 엉뚱한 제목으로 개봉됐다. 창고에 쳐박힌지 3년 만에야 빛을 본 '야행'(1977)은 무려 53곳이나 난도질당하며 누더기 상태로 개봉됐다. 중광 스님의 일대기를 다룬 '허튼소리'도 우여곡절 끝에 찍은 작품을 마음대로 삭제당한 아픈 기억의 영화다.

촬영을 함께 했던 배우들에 관한 이야기는 당시 영화팬들이라면 기억할 만한 내용들로 채워져있다. 영화개봉 일정을 맞추느라 신혼여행도 연기하고 촬영했던 신성일·엄앵란이 부부싸움으로 촬영을 중단했던 일, 여배우 트로이카 남정임·문희·윤정희와 함께 촬영한 이야기들도 담겨져 있다.

'박찬욱 감독의 몽타주'는 스크린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박감독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산문집이다. 만만찮은 필력을 자랑하는 박감독이 여러 매체에 틈틈이 기고해온 칼럼과 에세이(1부), 서면·셀프 인터뷰, 제작일지(2부) 등의 글들이 모여 박찬욱이라는 '매력적으로 뻔뻔한' 인물의 몽타주를 구성하고 있다. 3부에서는 감독론과 영화평을 싣고 있다.

1부의 글들을 읽으면 박감독의 인생관과 취향이 두루 드러난다. 딸아이에 관한 얘기에 박감독의 가정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소설·음악·영화 등 다양한 문화예술 장르에서 인상 깊었던 작가나 작품들을 소개하는 것을 보면 "레퍼런스가 풍부한 감독"이라는 평이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2부에서 소개되는 글들은 "인터뷰는 괴롭다"면서도 이를 창조적으로 수용해 여러 독창적인 글들을 만들어낸 박감독의 글솜씨가 엿보이게 한다.

3부의 감독론·영화평은 '박찬욱의 오마주'와도 연결된다. 박감독은 감독으로 주목받기 이전에 비평가로 유명했다.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만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B급 무비나 장르영화까지 섭렵해 독자적인 시각으로 재평가한 평론집 '영화보기의 은밀한 매력-비디오드롬'(1994)을 개정증보한 것이 바로 '… 오마주'다. 박감독의 팬들에겐 그의 다재다능함을 확인할 수 있는 엮음집이 되겠다.

한국 영화계의 신구세대 두 감독이 기록한 생생한 영화 현장이 재미를 자아낸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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