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세상의 저녁

다 저문 날, 눈이 내린다. 무한 창공을 날아온 눈발은 한데 뒤엉켜 와와 몰려가다가 순식간에 지상으로 곤두박질한다. 그 무애한 난무에 강 건너 풍경이 소리 없이 흔들리고, 당장 발바닥을 구르기만 하면 강한 회오리를 타고 날아오를 것 같은 환희에 가슴이 벅차다.

어김없이 거드름을 피우며 멀어지는 한 해의 뒷모습을 바라보기 위해 올해도 혼자 강변을 찾아왔다. 나는 언제부턴가 '사는 일'이란 '혼자'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연상되곤 했다. 혼자 떠나고 혼자서 돌아오는 일, 그것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외로운 삶의 참모습이다. 자신의 고달픈 삶을 되돌아보며 쓸쓸해지는 저녁 나는 긴 그림자를 밟고 강변에 서 있다.

강둑에 늘어선 미루나무는 풍성했던 시절을 아낌없이 떨어버리고 숙청의 모습으로 겨울을 가고 있다. 가장 작은 부피와 무게로 남은 양심으로 느껴진다. 따뜻한 남쪽으로 조금씩 어깨를 기울이고 다시 올 생명을 위한 인종의 기다림이 처연하고 숭고하다. 속속들이 가린 것 없이 묵상에 잠긴 겨울 나무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하는가.

반쯤 드러난 강바닥의 자갈들은 강줄기의 흔적을 따라 순연하고, 강물은 치맛자락을 여민 듯 반만으로도 넉넉하게 흐르고 흐른다. 혹한에도 끊이지 않고 흐르는 저 강물은 어디에 시원을 두고 있으며 또 어느 곳에서 길고 먼 여정을 마감하는지.

한순간도 한 자리에 머무름 없이 부단히 흘러야 하는 준엄한 속성 앞에서 마음은 잠시 숙연해진다. 결코 임의로 침범하지 않고 고의로 넘쳐나지 않으며 말없이 흘러가는 강물은 또 무엇을 보여주려 함인가.

세상의 모든 형상을 거꾸로 안고도 무엇 하나 흩트림 없이 흐르는 강물에 나도 거꾸로 서 있다. 생경한 그림자에 잠시 내 몸이 기우뚱하는 착각이 든다. 어디에서도 피해 갈 수 없는 생존 대열의 꽁무니에서 헉헉거리며 떠밀려 온 자신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거기엔 적잖이 지치고 피곤한 한 여자를 남겨둔 채, 세월은 강물처럼 저만치 혼자 흘러 가버리고 없었다.

설령, 악의 없는 사람들의 권유든 자신의 의지에서든 놀음과 주흥에 흥청거리고 정말 마지막이라며 누군가를 열심히 사랑하였다 해도 이때쯤 돌아서서 마주보는 것은 진저리치도록 초라하고 빈 껍질뿐인 자신이 아니겠는가. 나누어 가지면 배가되는 기쁨과 반으로 준다는 슬픔을 진실한 눈빛으로 말하는 사람을 만났던가. 가슴을 열고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은 있었던가를 강물에 비친 자신에게 되물어 본다.

머리 풀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낮게 일러준다. 다투지 말아라, 돈과 명성을 위해 서로 미워하고 짓밟지 말아라,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 하지 마라. 모든 것은 머무르지 않고 지나가 버리는 것. 끝내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오직 내 한 육신뿐. 펼치면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두 손을 나는 왜 움켜쥐고 놓지 못하는가.

차츰 내 안에서 순양한 온기가 차 오르고 필요 없는 긴장이 몸밖으로 빠져나간다. 그렇다. 일상의 테두리 밖에서 혼자일 수 있다는 것은 저항과 경계 밖에 있다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지 시간의 운행에 운명을 맡기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 그 미덕을 새삼 깨우치게 된다. 마디지어진 시간을 벗어나서 무한궤도를 도는 혼미한 도취에 빠져봄으로써 정확한 궤도로 귀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의심과 반의로 덮여 있는 때묻은 생각을 갈아엎으면 믿음과 수용의 씨앗이 싹을 틔우겠지. 더러는 나의 불찰로 그르친 일들과 사람과의 만남을 생각해 보고 먼저 용서를 비는 진솔이 부끄러움이 아니라는 것도 이제는 알아야 할 테지. 늘 참고 기다리는 것을 인내와 의지라고 속여 온 자신에게 용기를 가지고 부딪쳐 보라고 격려도 아끼지 말아야지.

어쩔 수 없이 묻혀 온 절반의 나 아닌 것을 떨어버리고 그 때문에 수축해진 명징한 영혼을 안고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리라. 다음해 나는 또 어떤 모습으로 이 자리에 서 있을지, 저무는 세상의 저녁을 바라본다.

백정혜(교동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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