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가에서-진리와 약속, 약속의 진리

시인이자 소설가인 대학의 현직 국문과 교수가 외설 논란에 휩싸여 기소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즐거운 사라'의 작가 마광수 선생이다. 급기야 실형을 선고 받고 대학교수직에서 파면되었다. 1992년의 일이다. 문학적 상상력과 표현의 자유가 법의 잣대에 굴복하는 문명사회의 치욕적인 사건이었다. 그 후 마교수는 사람과의 접촉을 단절하고 자발적 유폐생활을 시작했다. 복권과 복직이 이루어질 때 까지 그의 표현을 빌자면 눈뜨고 싶지 않은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강의를 다시 시작하고 한참 뒤에야 이전의 생활로 복귀할 수 있었던 그의 첫 번째 결단은 이혼이었다. 이유를 묻는 방송진행자의 계면쩍은 얼굴을 허허로운 특유의 웃음으로 바라보면서 그가 뱉은 말은 너무도 간단했으나 또 너무나 충격적인 것이었다. "연애하고 싶어서" 그는 위선을 극도로 경멸했다. 반칙을 야유했다. 결혼을 통해 사랑의 약속, 사회적 약속을 해놓고 술집에서, 나이트클럽에서, 다방에서, 심지어는 식당에서 거의 모든 곳에서 반칙을 일삼고 위선의 연애질을 하는 다수의 보통사람들, 그들의 허상과 천박함을 질타했다. 그들은 최소한 '즐거운 사라'를 비판하고 비난할 자격이 없다.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저자 박현욱은 중혼(重婚)의 감성-이성적 구조를 신선한 필치로 재미있게 풀어낸다. 한 여자는 두 남자와 결혼한다. 관습적 규범은 위반했지만 진정성을 바탕으로 세 사람은 모두 계약에 합의한다. 단순한 여성의 반격이 아니다. 반칙의 일상화에 대한 너무도 인간적인 선전포고다. 이미 절반가량 무너진 일부일처제라는 성벽에 대한 솔직하고도 진지한 성찰이다. 그래서 도리어 빛나는 것은 처연한 사랑 자체에 대한 갈구가 된다. 형식의 포로가 되어 왜곡되고 실종되어 버린 사랑의 내용을 구조하려는 담담한 노력이다. 생생하지 않은, 이미 죽어버린 사랑의 마음을 결혼과 가족이라는 관(棺)속에 넣어놓고 사랑을 지키고 있다고 착각하는 그릇된 신화는 종결되어야 한다.

일부일처제는 진리가 아니라 약속(約束)이다. 약속했다면 지켜야 한다. 싫으면 다른 약속을 하던가, 아니면 아예 약속을 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 약속의 진리가 있다. 삶은 약속이다. 커다란 진리를 쳐다보며 작은 약속을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두 사람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손가락질한다.

그런데 어쩌면 좋은가 내 가슴이 뜨끔뜨끔하다.

황보진호 (하늘북커뮤니케이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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