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든 잘 놀아 좌중을 흥겹게 하는 사람을 흔히 한량(閑良)이라고 부릅니다. 원래 놀고먹는 양반계층을 지칭하는 한량의 자격은 시(詩)'서(書)'화(畵)는 물론, 풍류와 가무(歌舞)에 뛰어나야 합니다.
지두화가(指頭畵家'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 고홍선(45) 씨. 예향인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12살에 판소리에 입문하면서 서예와 산수화를 함께 공부했고 이어 독학하다시피해서 자신만의 지두화풍을 만들어 낸 이 시대의 가객이자 한량입니다.
단골 민속식당인 '소리재'에서 하얀 무명저고리에 갈색 한복바지를 입고 유건 곱게 쓴 고 씨를 만나 신명나는 호남 사투리로 강진의 토속음식과 동'서편제로 나눠진 호남 판소리와 지두화에 대해 들어봅니다.
말투부터가 구수한 호남 사투리다. 속담에 급수 높은 한량은 임금하고 바둑도 둔다던데. 고 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충분히 그럴만하다. 판소리면 판소리, 글씨면 글씨, 그림이면 그림 못하는 게 없다. 특이하게도 대학에선 신학을 공부했다는 데 주체할 수 없는 끼를 버리지 못해 한 때는 서울 인사동을 많이 배회하기도 했다.
"명창 오병수, 진봉규, 박동진 선생에게 판소리를 배우면서 산수화와 서예도 같이 징허게 배웠지라잉."
그러면서 심청가 대목 중 심 봉사 부인의 신세타령 대목을 한 자락 읊었다. 이런 고 씨가 지인들과 자주 가는 곳이 민속식당 소리재(보성 인근에 있는 실제 지명)로 대원군이 '천하제일의 소리꾼'이라고 칭한 명창 박유전 선생이 살던 곳이다.
"음악도 국악이 흐르고 실내분위기도 한옥 분위기를 살리고 있어 이 집을 자주 찾는디요. 찜이나 매운탕 음식 맛도 솔~찬게(제법) 내는 구만요."
저녁에 술 한 잔 걸치면 지인들과 즉석공연을 벌일 정도로 마음이 편한 곳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말이 길어질 것 같아 화제를 지두화로 돌렸다.
"지가 우리나라 유일한 지두화가인디 북한에 1명, 중국에 2명이 있는 것으로 알지라잉."
인사동 시절 우연히 접한 4점의 지두화를 보고 매료된 이래 어렵사리 지두화첩을 구해 혼자서 지두화법을 공부해 현재 고 씨 자신만의 지두화풍을 개척한 셈이다. 몇 해 전 영화 '취화선' 제작 땐 오원(吾園) 장승업(최민식 분)의 지두화 장면에 대해 자문을 하기도 했다.
"지두화는 산수화를 그리지 못하면 그림그릴 엄두도 못낸당께요. 나는 정밀묘사가 필요한 인물화도 손가락으로 그리지라잉. 지두서라고 해서 손가락 글씨도 쓰구요."
지두화는 본래 약 400여 년 전 일반 백성들이 저잣거리에서 전문 화가들의 그림을 흉내 내던 화풍이었으나 근대에 사라진 것을 고 씨가 다시 살려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또 붓을 손바닥을 움켜쥐고 그리는 악필(握筆) 서법에도 탁월하다. 글씨를 쓰다가 신명이 도지면 붓 두 자루를 한꺼번에 움켜쥐고 그야말로 일필휘지로 써 내려간다. 여기에 갖은 창과 재담까지 섞어 한바탕 이벤트를 벌이면 좌중은 배꼽을 쥐지 않을 수 없다.
"아참! 음식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지라. 지 고향 강진은 어리굴젓, 토하젓, 홍탁이 유명한 곳이여. 따끈따끈한 쌀밥에 토하젓에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려 비벼 먹으면 그게 바로 강진의 최고 별미랑께요."
고 씨의 고향마을 옆을 흐르는 오옴천이 바로 토하 주생산지이기 때문이다. 또 홍어 삼합에 막걸리 한잔이면 속이 다 후련하고 코를 찌르는 특유의 향은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고 자랑이다.
"우리 호남 사람들은 말이요. 누굴 만나 꿍하니 가만히 있으면 그게 이상한 놈이랑께요."
부인이 대구사람이어서 대구에 정착한 지 올해로 7년째인 고 씨는 현재 호남예술원장, 호남미술단장, 전통문화지킴이 소장 직을 맡아 영호남 예술 교류에 힘쓰고 있다.
◇소리재
대구 서구 평리 4동 구 평리네거리를 지나 청구아파트 맞은 편 육교 골목 뒤편에 있는 민속식당 소리재는 심해 어종인 흑태(메로)찜이 대표메뉴이다. 넉넉한 양념과 감칠맛 나는 양파, 대파 등으로 맛깔스럽게 만든 흑태찜은 부드럽고 구수한 육질과 자박하면서도 칼칼한 국물이 별미로 통한다.
한옥 집을 개조한 민속풍의 실내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집이다. 특히 식전에 내는 오보차는 대추, 둥글레, 삼백초, 녹차 등을 혼합해 주인이 개발한 차로 독특한 향을 낸다. 유황오리 구이와 얼큰한 도루묵 매운탕은 동동주 안주로 단골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다.
문의:053)527-8856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작성일: 2006년 0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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