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否定의 세월

2002년 9월 노무현 후보가 최악의 시기를 맞던 때였다. 국민경선으로 회오리치던 노풍이 YS 방문 이후 푹 꺼져 당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대구시 내 한 음식점에 몇몇 언론사 정치 담당 데스크를 초청한 후보와 일행은 한껏 맥이 빠져 있었다. 서로 할 말을 찾지 못할 만큼 무거운 분위기였다. 별말이 없던 노 후보가 입을 열었다. "좀 도와 주십시오. 그러면 ○○일보가 대구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일순간 어색한 웃음이 좌중에 돌았다. 도와달라는 거야 의례적으로 할 수 있겠다 싶었지만 뒷말은 충격적이었다.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이 특정 신문에 대해 뼛속 깊이 증오와 적개심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섬뜩했고 그런 속마음을 서슴없이 드러내는 게 놀라웠다. 그렇게 말하면 지방지는 넙죽 반길 거라고 여긴 사고방식이 어이없었다. 더 현기증이 돈 것은, 못마땅한 대상은 아예 눈앞에서 제거함으로써 정치적 위안을 얻으려 하는 현실 부정의 발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은 그날 받은 느낌 그대로였다. 당선 이후 줄기차게 추종자들까지 가세해 ○○일보의 존재 자체를 묵살하려 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또 다른 메이저 신문들에까지 전선을 확대했다. 어떤 신문과는 국영화 운운으로 평생 원수가 졌다. 언론과의 '건강한 긴장관계'는 속맘을 감춘 말 포장이었다. 특정 신문을 향한 돌팔매는 광기였다. 청와대 전 홍보수석은 "눈만 뜨면 ○○일보를 죽일 방법을 궁리했다"고 대놓고 말했다. 대통령 사람들은 돌아가며 시퍼렇게 날을 세운 글과 말로 보수 신문을 씹고 저주했다. 국정 에너지를 언론 공격에 몽땅 쏟아 붓는 것 같았다. 끊임없이 싸움을 걸었고 끝장을 보려했다.

무시당한 신문들은 가만있지 않았다. 무시가 아니라 숫제 간판이 끌어내려질 것 같은 굴욕과 위기감에서 저항은 필사적이었다.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다. 대통령의 말꼬리를 물고 늘어졌고 사사건건 으르렁거렸다. 눈에 불을 켜고 시비 거리를 찾았다. 모든 비판은 언론 본연의 책무에서 명분을 찾았다.

정권의 맷집이 약한 건 뜻밖이었다. 적어도 선전포고를 했으면 어떤 반격에도 끄떡 않을 줄 알았다. 호기롭게 한판 붙자고 나설 때는 믿는 구석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기야 나름대로 새로운 관영 매체를 만들고 우호 언론을 열심히 키우기는 했다. 그렇지만 맥도 못 추었다. 보수 신문들이 쏟아내는 공격에 의연하지 못했다. 사소한 기사 하나에도 팔짝팔짝 뛰었다. 신경질적 맞대응은 호응을 받지 못하기 일쑤였다. 보수 언론이 집권세력의 실정을 등에 업고 여론을 끌고 나가자 더 약 올라 했다. 그러면서도 걸핏하면 치적을 평가해주지 않는다고 언론을 원망했다. 대통령은 대통령 대접을 하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어제도 언론을 험담하며 '똑바로 하라'고 쏘아붙였다.

대통령이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하지 않아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고 말한 적도 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은 부정의 정치를 자인한 것처럼 들렸다. 하나 지나가는 빈말이었다. 반성이 아니었다. 그 말 이전이나 이후나 대통령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

언론뿐 아니었다. 우리 역사를 통째 부정했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기회주의가 득세한 불온한 세월이었다고 대못을 쳤다. 온갖 '과거사 위원회' 완장을 찬 기관들이 내년에도 4천억 원 가까운 돈을 써가며 '역사 바로잡기' 과업에 나설 것이라 한다. 영욕이 교차한 역사의 해석은 지성의 영역이고, 특정 시기의 권력 코드에 맞추는 위험을 경고하면 수구골통으로 몰아 세우고 있다. 어떤 사람의 반독재 투쟁 부분만 따로 떼어내 민주화로 표창하고 뒷날의 간첩행위는 별개라며 문제 삼지 않는 식이다.

역사의 그늘만 보는 외눈박이 정치는 세상의 원망을 부추기며 잘나가는 기성의 모든 것들을 갈아엎고자 했다. 그리고 X표를 친 자리마다 조급한 개혁의 이름표를 붙였다. 그 결과는 혼란과 참담한 실패였다. 아무리 좋은 개혁이라도 동조할 우군이 없으면 성공하기 어려운 이치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부정의 도그마에 사로잡혀 온 사방에 적을 만든 탓이다. 맹꽁이 같은 정권. 지지율 한 자리 수는 대통령 존재 부정(Say no)이다. 국민이 지난 4년을 수긍하지 않는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허망하게 흘려보낸 세월이다.

金成奎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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