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은 선사시대 암각화가 뚜렷이 남아 있고, 520년간 찬란했던 대가야국의 도읍지였으며, 가야금을 창제한 악성 우륵 선생의 출생지로 곳곳에 문화유적이 산재해 있는 유서 깊은 고장이다.
88고속국도의 고령IC를 나와서 고령읍내 방향으로 4㎞ 정도 가면 지산동 고분군과 대가야 박물관을 만난다. 대가야 박물관은 지산동 제44호 고분을 발굴 당시 모습으로 재현한 왕릉전시관, 대가야의 문화와 역사를 소개한 대가야 역사관, 그리고 다양한 현악기와 우륵의 전설을 소개한 우륵 박물관 등 3곳으로 이뤄져 볼거리가 다양하다. 박물관 뒤쪽에는 지산동 고분과 관광로가 있고, 농촌체험의 장으로 이름난 개실마을이 부근에 위치해 '종합학습장'을 이룬다.
우선 '박물관에서 역사 공부를 한 뒤 고분군을 찾아가면 대가야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는 현지 문화관광해설사의 말을 따르면 가야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대가야 역사관은 기획 전시실과 어린이 체험 학습실이 1층에 있고, 2층의 상설 전시실에는 대가야 및 고령지역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도록 구석기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역사·문화에 대한 설명과 유물을 전시해 놓았다.
역사관을 둘러본 후 서쪽 언덕을 오르면 국내 최고, 최대의 순장묘인 지산동 제44호 고분 전문전시관인 왕릉전시관이 위용을 드러낸다. 규모와 구조면에서 국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초대형 돔식 구조이다. 발굴 당시 모습 그대로 재현하여 당시의 대가야 역사와 순장풍습 등에 관하여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다.
왕릉전시관을 나와 주산(311m) 기슭을 따라 300m 정도 오르면 사방에 널려진 고분군을 만난다. 규모가 작은 고분에서 큰 것까지 수백 개에 이르는 고분군이 능선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제일 큰 무덤인 제44호 고분은 금림왕릉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지름 27m, 높이 6m의 봉토분으로 고분의 중앙에 왕을 안치한 주석실이 있고, 남쪽과 서쪽에 부석실을 두고 그 둘레에 32개의 순장석곽으로 배치하고 있다. 이외의 대형 고분들도 왕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제44호 고분에서는 국보 제138호인 가야금관을 비롯하여 수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1977년부터 활발한 연구, 조사 및 발굴 등으로 고분의 성격 일부가 밝혀졌으며, 특히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순장묘가 확인되어 고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대가야 박물관과 고분군을 천천히 둘러본 후, 읍내로 가면 우륵 기념탑과 우륵 박물관이 있다. 다양한 현악기와 우륵의 전설을 소개한 우륵 박물관은 전국 유일의 우륵과 가야금 테마 박물관이다. 입구 동편에는 전문 장인이 가야금 공방을 운영하고 있어 가야금의 제작 과정도 체험할 수 있다.
▨ 지산동 고분군에 대한 Q&A
▶대가야는 어떤 나라인가?
대가야는 고령 지방을 중심으로 성장한 나라로서 6가야 중의 하나이다. 금관가야가 멸망한 후 가야연맹의 맹주가 되었으나, 신라 진흥왕 때 이사부 등에 의해 멸망했다. 대가야국은 시조 이진아시왕으로부터 도설지왕까지 16대, 520년의 역사가 있다. 전성기 때는 낙동강 중류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고령을 중심으로 남해안 일부와 함양, 남원, 섬진강 유역까지 도달할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순장이란?
순장은 죽은 이가 무덤 안에서 영원히 머물며 살아 있을 때와 같은 생활을 한다는 믿음에서 행한 것이다. 그래서 죽은 이의 살아 생전 사용하던 물품들과 함께 그의 시중을 들어줄 사람도 같이 묻는 장례법이다. 순장시엔 살아 있는 사람을 그냥 묻는 경우와 죽여서 묻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지산동 제44호 고분은 사람을 죽여서 묻은 경우에 속한다.
▶가야가 500년의 찬란한 역사를 남긴 배경은?
가야연맹은 낙동강 유역의 충적 평야에서 발달한 농업 생산력과 철의 생산을 기반으로 하여 성장하였다. 또한 백제와 신라의 점이적 위치인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주변국과 교역 활동이 활발하였다. 그러나 5세기 이후에 왜국이 철광산 개발에 성공하고 백제가 왜와 직접 교역하기 시작하면서 왜에 대한 상대적 우월성이 약해졌다. 또한, 6개의 가야로 나뉘어져 정치적인 힘이 고구려, 백제, 신라보다 훨씬 뒤처져 있어서 연맹왕국 단계에서 멸망하였다.
▨ 주변에 이런 곳도 있어요
▶양전동 암각화
양전동 암각화는 높이 3m, 너비 5.5m의 직사각형 암벽에 새긴 그림으로 1971년 고령읍 장기리의 알터마을 입구에서 발견되었다. 청동기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암각화로 짐작되며 그림의 내용은 동심원과 십자형, 가면모양 등이 조각되어 있다. 당시 주민들의 농경의식이나 제사 때 사용했던 장소로 추정되며, 이곳에 새겨진 각종 문양들은 우리나라 선사문화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간주된다.
▶개포 나루터
개진면 개포리의 낙동강변에 위치한 개포는 옛날 개산포(開山浦)라 부르다가 이곳에서 고령읍을 거쳐 해인사에 이송된 팔만대장경을 운송한 역사로 인하여 개경포(開經浦)라 불렀다. 그러나 일제강점시 왜인들이 사상을 이유로 경(經)자를 빼고 개포로 부르게 되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경상도 내륙 지역의 곡식과 소금을 운송한 큰 포구였으며 강태공들이 몰려와 불야성을 이루기도 하였다.
▶개실마을
쌍림면 합가리에 위치한 개실마을은 영남사림학파의 종조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아오는 곳으로 350여 년간 전통을 이어 오고 있다. 마을에는 민속자료 제62호 점필재 종택, 문화재 자료 제111호 도연재, 유형문화재 제209호 점필재 문적유품 등의 문화재가 있다. 식사 및 숙박이 가능하며, 방문객에게 다양한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위상복(영남삶터탐구연구회, 대구제일고 교사)
참고자료 : 삶터탐구활동 길잡이(대구남부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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