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너무 사랑해서' 착각하지마, 병이야!…의처(의부)증

'배우자 바람 피운다' 불륜 의심 부정망상…편집증·열등감 원인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델로(Othello)'를 잠깐 생각해보자. 오델로 장군은 순수한 사랑에 독을 뿌리는 흉악한 이야고의 거짓말을 믿고 아내인 데스디모가 자신의 심복 카시오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고 단정한다. 복수심에 불탄 오델로는 카시오를 죽이고 난 뒤 아내마저 죽인다. 그래서 배우자의 부정을 의심하는 '부정망상'(不貞妄想)을 '오델로 증후군'이라고 한다. 흔히 의처증, 의부증이라고도 한다.

부정망상의 유병률은 1~4%. 주로 35~55세의 연령층에서 많이 발병한다. 성격이 예민하거나 강박적인 사람의 경우 환경이나 잘못된 정보로 인해 일시적으로 배우자를 의심할 수 있다. 하지만 의심이 믿음으로 발전돼 현실적인 망상이 되기도 한다. 드물게는 정신병의 초기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어떤 경우가 부정망상이며, 치료는 어떻게 할까?

◆의처증에 시달리는 30대 여성

30대 초반의 주부가 남편의 의처증을 견디지 못하겠다며 정신과를 찾았다. 마음 같아선 당장 이혼하고 싶지만 남편이 집요하게 놓아주지 않을뿐더러 아이들이 눈에 밟혀 결심이 쉽지 않다고 했다. 결혼 전부터 여자관계가 복잡하던 남편은 이 세상에 믿을 수 있는 여자는 한 명도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아내라고 예외는 아니다. 결혼 전 짧은 연애기간 동안에도 남편은 그녀의 행동에 강박적인 집착을 보였지만, 그녀는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그런 것이려니 믿었다. 남편의 의처증은 신혼 때부터 시작됐다. 지금은 폭력까지 휘두를 정도로 중증 상태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집으로 전화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물론 아파트 경비 아저씨와 잠깐 얘기를 나누어도 '불륜'을 의심한다.

◆증상 및 진단

사람들은 흔히 의처증이나 의부증 증세를 '사랑이 지나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의처증이나 의부증은 병이다. 정상인들은 대부분 배우자가 의심스럽다가도 아니라는 증거가 확실하면 결백을 믿는다. 하지만 의처증, 의부증 환자들은 아니라는 증거가 있어도 믿지 않고 오히려 배우자가 바람을 피웠다는 증거를 찾고 싶어한다. 이들은 배우자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다. 그 믿음은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는 것이 아닌 망상의 수준이다. 배우자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질투망상'과 그 망상 때문에 행동이상이 동반될 때 의처증이나, 의부증이라는 진단을 한다.

환자들은 자기 망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를 찾기 위해 온갖 수단을 쓴다. 도청이나 미행,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폭력이나 협박, 녹음기 및 비디오 촬영은 물론 '몸'을 살펴보기도 한다. 이런 환자들은 다른 면에서는 정상적으로 행동을 하기 때문에 피해를 보는 배우자 이외에는 그 문제를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상담을 하는 경우는 많이 있으나 치료까지 이어지기가 쉽지 않다. 남편이 의부증이 있는 아내를 병원으로 데려가기는 쉽지만, 아내가 의처증이 있는 남편을 병원에 가도록 하는 일은 어렵다. 또 주위 사람들에게 하소연을 해도 '뭔가 의심받을 짓을 한 것이 아니냐.'는 눈총을 받기도 한다. 배우자들은 그 고통을 참느라 화병에 걸리기도 한다. 그런데도 환자들은 자기가 배우자를 너무도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자기의 질투를 사랑으로 합리화하는 것이다.

◆왜 생기나?

▷성격적 원인:편집증적 성격이 원인이 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까다롭고 무슨 일이든지 그냥 넘기지 못하고 지나칠 정도로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 다른 사람의 태도나 행동에 대해 예민하고 과장해서 생각하는 사람들, 이기적이고 쉽게 앙심을 품고 불평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자주 나타난다. 이들은 대부분 융통성이 없거나 남을 잘 믿지 못한다. 참을성도 없다. 여자의 경우는 의존적이고 미숙해서 배우자가 옆에 있어야 안심하는 성격 유형에서 의부증이 자주 나타난다. 시샘이 많고 독점력이 많은 경우도 의부증이 될 확률이 높다.

▷심리적 원인:배우자에 대한 열등감이 있고 지기 싫어하는 경우, 자존심이 많이 손상됐을 때 배우자를 의심하게 된다. 자신이 바람피우고 싶거나 동성애적 경향이 있을 때, 배우자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부부생활에 문제가 있을 때 증상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다. 어릴 때 부모가 적대적이거나 지배적이어서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자란 경우, 부모가 알코올중독이나 편집증이 있는 경우, 구박을 많이 받고 자란 경우도 심리적 원인이 된다.

◆치료는 이렇게

의처증 및 의부증은 망상증의 하나이므로 항정신성 약을 먹어야 한다. 이와 함께 정신치료나 가족 및 부부치료가 필요하다. 환자들은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불신과 열등감이 많으므로 비판하거나 설득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비위를 맞추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한결같이 단호한 태도로 '나는 당신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는 이해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자신이 왜 그런 망상을 갖게 되었는지 분석해 주는 치료가 필요하다.

김교영기자 kimky@msnet.co.kr

도움말·김은경 대동병원 진료부장(정신과 전문의)

▨ 의처(부)증 자가진단표

1.과거 배우자의 외도를 발각해 시인받은 적이 있다.

2.현재 배우자가 외도를 한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증거를 갖고 있다.

3.하루의 많은 시간을 배우자에 대한 생각으로 보낸다.

4.결혼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의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5.외도를 한 사람은 꼭 그만큼의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6.배우자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다.

7.배우자가 바람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주변에 공개한 적이 있다.

8.배우자의 핸드폰, 소지품 혹은 차 안을 가끔 점검한다.

9.배우자가 외도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10.배우자의 외도는 직감으로 알 수 있다.

11.부부는 서로의 행적에 대해 알고 살아야 한다.

12.밝혀지지 않은 외도문제로 부부가 2주 이상 냉전 상태로 지냈던 적이 있다.

13.외도를 확인하느라고 이틀 이상 잠을 안 재운 적이 있다.

14.외도한 증거를 주변 사람에게 상세히 말한다.

15.배우자에게 의심한 것이 잘못됐다고 사과를 한 적이 있다.

※1, 2번은 각각 4점, 3~6번 1점, 7~13번 2점, 14~15번 3점으로 채점한다. 총점이 4~6점이면 의심단계, 7~12점은 의처(부)증 증상을 의심할 수 있는 단계, 13점 이상이면 의처(부)증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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