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학입시)경북대 수시2학기 인문·사회계열 논술

인식의 객관성·주관성에 관한 입장 밝혀야

♠ 문제

※ 다음 제시문을 읽고 논술 문제에 답하시오.

(가) 인간의 지성을 고질적으로 사로잡고 있는 우상과 그릇된 관념들은 인간의 정신을 혼미하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진리조차도 얻을 수 없게 만든다. 그러므로 인간이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 용의주도하게 그러한 우상들로부터 자신을 지키지 않는 한, 학문을 혁신하려고 해도 곤경에 빠지고 말 것이다. 인간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우상에는 네 종류가 있다. 구별하기 좋게 이름을 붙인다면, 첫째는 종족의 우상이고, 둘째는 동굴의 우상이며, 셋째는 시장의 우상이고, 넷째는 극장의 우상이다. 우리는 이 우상들을 확고하게 물리치고 폐기해야 하며, 이를 통해 지성을 완전히 해방시켜야 한다. 우리는 세간의 속설과 고정관념을 일소하고,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공정한 지성으로 자연을 관찰해야 한다. 미신이나 기만, 오류나 혼란 없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정말로 고귀한 것이다.

(나) 강물은 두 산 사이에서 흘러나와 바위에 부딪혀, 다투는 듯 거세게 흐른다. 놀란 듯한 파도, 성난 듯한 물결, 애원(哀怨)하는 듯한 여울물은, 내달아 부딪치고 휘말려 곤두박질치며 울부짖고 고함치는 듯하여, 항상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쳐부술 듯한 기세가 있다. 전차(戰車) 만 대, 전기(戰騎) 만 필, 전포(戰砲) 만 문, 전고(戰鼓) 만 개로도, 무너져 덮쳐 내리는 듯한 소리를 충분히 형용(形容)하지 못할 것이다. 모래밭에는 거대한 돌들이 우뚝우뚝 늘어서 있고, 강둑에는 버드나무들이 어두컴컴한 모습으로 서 있어서, 흡사 물귀신들이 다투어 나와 사람을 업신여겨 놀리는 듯하고, 좌우에서 이무기들이 사람을 낚아채려고 애쓰는 듯하다. 어떤 사람은 이곳이 옛날에 전쟁터였기 때문에 강물이 그렇게 운다고 말한다. 그러나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강물 소리는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마음이 물소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귀가 그렇게 소리를 만들어 주었을 뿐이다.

(다) 나는 사서(史書)를 읽을 때마다 늘 의심이 생긴다. 선(善)한 것은 지나치게 선하고, 악(惡)한 것은 지나치게 악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권선징악의 의도로 그렇게 한 것이겠지만, 요즈음 사람들의 치우치지 않은 입장에서 본다면, 선한 자는 어찌 저다지도 선하며 악한 자는 어찌 저다지도 악할까 하는 의심이 든다. 당시의 사람들이 도덕적 시비是非)에 현혹되어 역사를 어느 한쪽에 치우치게 서술한 것이다. 따라서 사서를 읽을 때 도덕적 시비에 현혹되면 사실에 대한 인식을 그르치게 됨을 명심해야 한다.

(라) 역사가는 한 개인이다. 다른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역사가도 자기가 속한 사회의 산물인 동시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 사회의 대변인이다. 이러한 자격으로 역사가는 과거의 사실에 접근하는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역사의 과정을 '움직이는 행렬'이라고 말하는데, 이 비유는 좋다. 그렇지만 역사가는 외따로 떨어진 암벽 위에서 사방을 굽어보는 독수리나 사열대 위에서 행렬을 내려다보는 중요 인물이 아니다. 역사가도 행렬의 한 부분에 끼여서 터덜터덜 걸어가는 또 하나의 보잘 것 없는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행렬이 휘어져서 때로는 오른쪽으로 구부러지고 때로는 거꾸로 되돌아오고 함에 따라 이 행렬에서 다른 부분들의 상대적 위치는 끊임없이 변한다. 그래서 1세기 전의 증조부보다는 오늘날의 우리들이 중세에 더 가깝다고 말하거나, 또는 단테의 시대보다는 케사르의 시대가 우리들에게 더 가깝다고 말하는 것이 매우 좋은 의미를 갖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역사가도 이 행렬과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새로운 전망, 새로운 시각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역사가는 역사의 한 부분이다. 지금 역사가가 속해 있는 행렬의 지점이 과거에 대한 그의 시각을 결정한다.

(마) 소위 '학문의 역사'라는 것과 '지식의 계보학'을 구분할 수 있다. 학문의 역사가 허구에 대한 진리의 승리 과정을 기술하는 데 비해, 지식의 계보학은 담론(지식)과 권력의 상호관계를 기술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지식의 계보학을 18세기에 적용해 보면 이것은 계몽주의 시대의 기본 관점을 해체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그것은 그 당시에 (19세기와 20세기에도 마찬가지로) 계몽주의적 진보로 여겨졌던 것, 즉 무지에 대한 지식의 투쟁, 환상에 대한 이성의 투쟁, 편견에 대한 경험의 투쟁, 오류에 대한 이성의 투쟁이라는 기본 관점을 해체시켜야만 했다. 지식의 계보학은 어둠을 헤쳐가는 대장정으로 묘사되고 상정되던 이 모든 것을 제거해야만 했으며, 낮과 밤, 지식과 무지 등의 투쟁 대신에 매우 다른 어떤 것을 감지해야만 했다. 그 시기에는 거대하고 수많은 투쟁이 있었는데, 그것은 지식과 무지 사이의 투쟁이 아니라, 지식들 상호 간의 거대하고 무수한 투쟁이었다. 지식들은 각기 상이한 형태, 서로 적대적인 그 주창자들, 그리고 그것들에 내재하는 권력 효과들 때문에 서로 투쟁을 벌였다. 지식들이 대립하는 배후에는 정치적'경제적인 권력 투쟁과 이해관계의 대립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논술 문제】

제시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인식의 문제를 중심으로 한 편의 논술문을 작성하시오. 단, 논술 과정에서 아래의 세 가지 물음에 대한 답변을 반드시 포함시킬 것. (분량은 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400~1,600자로 할 것)

(물음 1) 제시문에 나타난 객관적 인식에 대한 견해를 기준으로 제시문 (가)~(마)를 크게 두 부류로 나누고, 각 제시문을 그렇게 분류한 이유를 설명하시오.

(물음 2) 신채호가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에 대해 아래와 같은 역사적 평가를 내린 이유를, 제시문 (라)의 관점에서 자세히 설명하시오.

고려시대 때 묘청은 수도를 개경(開京)에서 서경(西京)으로 옮기는 운동을 펼쳤는데, 이러한 서경천도운동은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으로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이 운동에 반대한 김부식은 사대당(事大黨)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물음 3) 제시문 (마)의 관점에서 아래 주장에 대해 어떤 비판을 할 수 있는지 자세히 서술하시오.

근대에 들어와 민간요법은 쇠퇴하고 서양의학이 승리를 거두었다. 그 이유는 민간요법이 무지와 편견을 바탕으로 형성되어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이었던 반면에, 서양의학은 객관적인 관찰과 진리를 바탕으로 형성되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었기 때문이다.

▶ 유의사항

1. 답안에는 자신의 신원을 드러내는 표현을 쓰지 말 것

2. 논술문의 제목은 쓰지 말 것

3. 제시문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쓰지 말 것

4. 답안작성은 흑. 청색의 필기구를 사용할 것(연필사용 금지)

5. 답안수정은 원고지 교정법에 따를 것(수정액사용 금지)

♠ 해설

2007년 11월 24일에 경북대학교 수시2-2학기 논술고사가 실시되었다. 문제 유형은 2007년 5월에 실시된 모의논술고사의 유형을 거의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경북대학교 논술고사는 다소 특이한 유형이다. 요즘 대부분의 대학입학논술고사에서 실시하는 통합교과형 또는 분절형 논술문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통글로 된 전통적인 논술문을 요구한다. 하지만 (물음1)(물음2)(물음3)을 주어 논술문의 전반적인 내용을 이미 질문 형식으로 요구하고 있다.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이 바로 논술문의 본론이 된다. 서론과 결론에 대한 약간의 구성력만 지니면 통합교과형을 실시하는 다른 대학의 논술고사와 별반 차이가 없다.

이번 수시 논술고사에는 인식의 문제가 출제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주어진 제시문이 대부분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인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주어진 물음을 중심으로 논제와 제시문을 분석해보자.

(물음1) 제시문에 나타난 ①객관적 인식에 대한 견해를 기준으로 제시문 (가)~(마)를 크게 두 부류로 나누고, 각 제시문을 ②그렇게 분류한 이유를 설명하시오.

대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양상은 크게 두 가지이다. 주관적인가, 아니면 객관적인가. 달리 말하면 상대적인가, 아니면 절대적인가라고도 할 수 있다. ①은 그 기준에 따라 제시문 (가)~(마)를 두 부류로 나누라는 것이다. 나누기 위해서는 제시문의 내용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에서 글쓴이는 인간의 지성을 사로잡고 있는 우상과 그릇된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우상을 넷으로 나누고 그러한 우상을 지성을 통해 해방시켜야 한다고 하면서 속설, 고정관념, 미신, 기만, 오류, 혼란 등이 없이 사물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결국 (가)는 대상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이 필요함을 역설하는 글이다. (나)는 중국을 여행한 기행문의 한 부분으로, 글쓴이는 마음에 따라 대상이 모두 다르게 보일 수 있다고 하여 객관적인 인식이 불가능함을 주장하고 있다. (다)에서 글쓴이는 역사서를 읽을 때 절대로 도덕적 시비에 현혹되어 사실에 대한 인식을 그르치지 말라고 했다. 이른바 대상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을 강조한다. (라)에서 글쓴이는 개인으로서의 역사가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기가 속한 사회의 산물이기에 자신이 처한 상황을 통해 역사를 바라본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역사는 객관적인 무엇이 아니라 역사가에 의해 끊임없이 창조되는 대상이다. (마)는 지식의 계보가 지식 상호간의 거대하고 무수한 투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면서 그 배후에는 정치적·경제적인 권력 투쟁과 이해관계의 대립이 존재한다고 밝히고 있다. 결국 지식은 객관화된 무엇이 아니라 권력과 이해관계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주관적인 대상임을 강조한다.

이렇게 제시문을 분석하면 ①에 대한 답변은 충분하다.(인식의 객관성을 강조하는 것 : 가, 다, 인식의 주관성을 강조하는 것 : 나, 라, 마) ②그렇게 분류한 이유도 위의 제시문 분석을 참고하면 된다. (다) 제시문이 다소 분류가 어렵지만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바를 중시한다면 객관적인 인식을 중시한다고 평가해도 무방하다.

(물음2) ④신채호가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에 대해 아래와 같은 역사적 평가를 내린 이유를, ③제시문 (라)의 관점에서 자세히 설명하시오.

③제시문 (라)의 관점은 개인으로서의 역사가는 자기가 처한 상황을 통해 역사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는 역사가의 태도와 성향에 따라 상이하게 기록되고 평가될 수 있다. 역사가는 전지전능한 객관성을 지닌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역사의 행렬 속에 포함되어 걸어가는 한 존재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상이한 평가를 보이는 몇 가지 사례를 들면 와 에 나타난 상고사에 대한 인식의 차이, 한글창제나 동학혁명에 대한 당대와 현재의 상이한 평가, , 김홍도의 풍속화 등에 대한 당시와 현재의 인식의 차이 등이 거론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④신채호가 내린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에 대한 평가 이유를 기술하라는 문제이다. 신채호는 우리의 주권을 일본제국주의에 빼앗긴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다. 나아가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와의 투쟁이라고 주장하면서 일제에 대한 끝없는 투쟁만이 민족이 나아가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전형적인 민족주의자이다. 식민지와 저항이라는 '움직이는 행렬'속에서 살았던 신채호의 관점에서 보면 당시 중국에의 사대주의를 표방한 김부식은 민족을 일제에 팔아버린 매국노와 다름없고, 그 김부식과 대결한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은 민족의 자주 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될 수 있었다. 즉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역사가 신채호가 만들어낸 자신만의 행렬 속에서 묘청과 김부식의 역사적인 행위가 인식된 것이다.

(물음3) ⑤제시문 (마)의 관점에서 ⑥아래 주장에 대해 어떤 비판을 할 수 있는지 자세히 서술하시오.

⑤제시문 (마)에서는 지식의 계보가 단순히 무지와의 투쟁이 아니라 상이한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에 놓인 지식과의 투쟁에서 승리한 지식들로 이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즉 어느 시기 특정 지식이나 담론이 중심 위치에 서 있다고 해서 그것이 지식 자체의 객관성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는 관점이다. 결국 대립하는 지식 이면에는 정치적·경제적 권력 투쟁과 이해관계의 대립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마)를 토대로 ⑥'서양의학의 민간요법 우위' 주장을 비판해 보자. 두 가지 방향이 가능할 것이다. 먼저 서양의학이라는 지식의 계보가 민간요법보다 나중에 형성되었다고 해서 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치유력이 높다는 객관적인 증거는 없다. 또한 서양의학의 우위 선점은 개화=서구화라는 우리 근대화의 특수성과 서구 열강의 정치적·경제적인 힘의 우위(자본, 인구, 국력, 세계 권력 구조 등)가 자연스럽게 서양의학의 승리로 반영된 것일 뿐이다. 최근 서양의학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병을 민간요법이나 대체의학으로 치유하고, 실체가 없는 허망한 것으로 여겨지던 기(氣)의학이 과학적으로 존재를 인정받고 동양의학에 대한 학문적 성과의 축적이 바로 그 방증이다. 동서양의 정치 경제적 우위가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따라 서양의학, 동양의학(민간요법)의 지식의 계보가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논제와 제시문 분석이 끝나면 그것을 토대로 하여 개요를 작성한다. 개요는 결론을 먼저 정리하도록 한다. 인식의 객관성과 주관성이 이번 논술의 주된 논점이니 '사건이나 상황, 역사에 대한 인식은 인식의 주체가 역사적 존재이기에 주관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혹은 '인식의 주관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등으로 자신의 입장을 결론으로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결론이 정해지면 서론에 대상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발생하는 현상(예 : 박지원에 대한 당대와 현대의 평가 차이)을 배치한다. 본론은 제시된 논제를 순서대로 적되, 문단과 문단의 연결을 자연스럽게 해주도록 한다. 그리하면 한 편의 논술문이 자연스럽게 마무리될 것이다.

한준희(대구통합교과논술지원단, 경명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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