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사 정현주의 휴먼 토크]전쟁과 평화

며칠 전 조간신문 1면을 장식한 사진은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집 앞에서 울고 있는 가자지구의 한 소년의 모습이었다. 추운 겨울, 금융위기로 얼어붙은 마음을 더욱 아련하게 만들었다.

학창시절 '전쟁과 평화'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평화'의 대조어로 '전쟁'이란 단어를 선택한 톨스토이의 안목을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해를 거듭할수록 감탄하게 되었다. 전쟁을 평화·행복·사랑 등 인간이 만들어 낸 긍정적인 단어의 총체적인 반의어로 묘사하는 톨스토이의 발상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되었다. 전쟁에 내포된 의미는 발생된 인간들의 탐욕에서부터 발생 도중에 자행되는 온갖 권모술수, 발생 후의 죽음, 상실, 슬픔 등 모든 불행들을 다 들춰내보면 그야말로 '악의 축'으로 정의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서로의 입장 차이와 명분으로 전쟁을 하고 있단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동굴을 만들고 로켓 미사일을 쏘아 댄다"며 공격하였고, 하마스는 "방어하는 형태지만 내심으로는 이 전쟁을 계기로 내부 결속을 다지고 전열을 가다듬어 통치력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너무 강공, 무고한 시민이 희생되고 피해가 속출하여 유엔이 개입하여 이스라엘을 비난·견제하고 있다며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가 흥분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거침없는 공격을 보면서 5천년 동안 그 민족을 지탱해온 지혜이자 생활규범인 탈무드 중의 한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며칠 굶주린 여우가 포도밭을 지났다. 여우가 포도밭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울타리가 쳐져있어 들어 갈 수가 없었다. 포도밭 주위를 둘러보니 울타리 밑으로 조그만 틈이 있어 굶주려 홀쭉해진 배로 간신히 들어갈 수가 있었다. 포도밭에 들어간 여우는 바라던 대로 마음껏 포도를 먹었다. 허기를 채우고 난 여우는 밭에서 나오려 했지만 포도를 너무 많이 먹은 탓에 들어간 좁은 틈으로 도저히 빠져 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여우는 사흘을 굶어 다시 홀쭉해지고서야 그 포도밭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그러고는 "포도밭을 들어 갈 때나 나올 때나 배가 고프기는 마찬가지로군"이라며 구시렁거렸다.

세상 모든 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모두가 빈손으로 태어나 빈손으로 떠나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이다. 인생 길에서 우연히 포도밭을 만나 욕심부려 마음껏 먹어보지만 그 포도밭을 나올 때는 다 주고 와야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그들이 왜 전쟁를 하는지 혹은 누가 옳은지 따위는 추호도 관심이 없다. 다만 그들이 굶주린 여우처럼 욕심내지 말고 전쟁을 멈추어 포도밭을 나올 때처럼 '빈손'이 되어 가자지구 소년의 눈물을 멈추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053)253-0707, www.gounm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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