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무·바다·바람도 '마지막 안식처'…바뀌는 장례문화

'화장(火葬)은 기본이고 자연장(自然葬)은 선택이 되는 시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화장한 첫 전직 대통령. '운명이다, 화장하라'는 그의 유언대로 시신은 화장돼 분골은 고향 봉하마을 정토원에 안장됐다. 시대 변화일까. 죽고나면 이젠 화장해 납골당에 안장하는 것이 더 보편화된 장례문화가 되고 있다. 분골을 두는 방식을 조금씩 달리 해 나무와 함께 기억되거나 바람에 날려가거나 물 속에 뿌려지는 등의 새로운 장례방식도 확산되는 추세.

노 전 대통령이 유언에 남긴 유명한 표현,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느냐'는 그런 것이다. 죽고 나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현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땅 속에 묻는 것보다 화장해 안장되든 자연 속 어디든 뿌려지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2007년 전국 화장률은 58.9%로, 1997년 23.2%에 비해 2.5배로 급증했다. 2010년에는 70%가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장례방식에 대한 질문에도 응답자의 80%가 화장을 원했다. 특이한 것 중 하나는 남자는 화장해 봉안되는 걸 원해고, 여자는 자연장을 더 선호했다. 남성은 '사라지기 싫다', '후손들이 기억해달라' 등 후손들과 교감을 바란 반면 여성들은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다' 등 다 잊고 이승과 이별하고 싶어하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바뀐 장례문화 속 사람들의 의식을 들여다보자.

◆나무·바다·바람과 함께

5년 전 수목장(樹木葬)을 지내 자연으로 돌아간 고(故) 김장수 전 고려대 교수. '나무박사'로 알려진 김 교수는 경기도 양평의 한 참나무에 몸을 뉘였다. 볕이 좋은 데 자라는 참나무를 골라 30㎝ 깊이로 주변 땅을 판 후 유골을 뿌렸다. 그리고 '김장수 할아버지 나무'라는 명패를 나무에 달았다. 이로 인해 수목장은 세상에 더 널리 알려졌다.

그의 아내 이용균씨는 당시 "남편은 자신이 배운 것을 그대로 실천하고 갔다"며 "남편이 묻힌 나무를 볼 때면 '여기에 계시는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든든해진다. 저도 나중에 남편 곁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원 이재원(36·대구시 서구)씨도 3년 전 갑자기 떠난 부인을 조그만 나무 아래 묻었다. 부인이 평소 좋아했던 할머니의 묘지 바로 옆 나무 아래 묻은 것. 이씨는 해마다 이곳을 찾아와 나무에 물을 주고 이 나무에 부인 이름을 붙여 '자경이 나무'라 부른다. 그는 "아직도 꿈에 나타나 그립지만 항상 나무와 함께 있다고 생각하니 슬픔이 덜하다"고 말했다.

김준호(48·가명)씨는 지난해 남해안에 낚시하러 갔다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김씨의 가족과 친구들은 낚시를 좋아했던 그를 화장해 분골 중 일부를 그곳 바다에 뿌리고 남은 분골함은 납골당에 안장했다. 그의 친구들은 "함께 낚시를 갔기 때문에 죄책감도 있다"며 "그나마 자신이 좋아했던 곳에 뿌려졌기 때문에 저승에서도 편안히 잠들길 바란다"고 했다.

'바람처럼 왔다가는 나그네'라며 산 위에서 바람과 함께 자신의 분골을 날려달라는 '풍장(風葬)'을 원하는 사람들도 적잖다. 황동규 시인은 '풍장'이라는 시를 통해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섭섭하지 않게/중략/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바람과 놀게 해 다오'라고 했다.

◆지역의 대표적 자연장지 '수림장과 인덕원'

'잔디 위는 산 자의 공원, 잔디 밑은 영혼의 안식처'. 영천 고경면 오룡2리의 도덕산 자락 도로 옆엔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소공원이 있다. 1천652㎡(약 500평) 규모의 잔디밭 둘레엔 철따라 갖가지 꽃들이 핀다.

처음으로 자연장을 표방한 경주 최씨 진사공파 소문중의 가족공원. 이곳 오룡 산골짝 공원이 우리나라 장례문화 혁신의 출발점이자 자연장의 모델이다. 자연장 과정도 간단하다. 잔디를 걷어내고 가로·세로 깊이 50㎝로 땅을 판 뒤 유골분과 흙을 섞어 메우고 잔디를 다시 덮는다.

인덕원을 만든 최봉진(77) 씨는 "좁은 국토를 잠식하는 묘지 관습, 납골당 방식을 탈피해 지난 2000년 여생의 사업으로 자연장 조성에 나섰다"고 말했다.

영천 은해사 수림장 역시 '자연과 인간은 둘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천년 고찰 은해사 법당 주위의 아늑한 솔숲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이곳이 수림장의 장소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다. 수림장은 화장한 유골분을 추모목에서 40∼50㎝ 떨어진 곳에 묻어 고인이 나무숲에서 자연과 영원히 함께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출생, 사망일, 가족관계 등을 기록한 명함크기의 명패만 나무에 달려 있을 뿐 봉분, 비석, 상석 등이 전혀 없어 자연 그대로의 숲을 간직하고 있다. 목탁소리나 대종소리가 들리는 사찰 주위 1만6천500㎡(5천여평) 터에 조성됐다.

돈관 은해사 주지스님은 "사람이 죽은 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수림장이 소나무숲으로 우거진 은해사에서 시작돼 새로운 장사문화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장례문화 변화 '산 자 위주'

죽은 자의 뜻도 중요하지만 바쁘게 사는 산 자에게 불편함을 줘선 안 된다. 예로부터 장례문화는 망자(亡者)에 대한 예의에 무게를 두었다면, 이젠 유족의 편의가 우선시 되고 있는 것. 생활양식이 바뀌면서 전통적 장례문화는 유지되기 어렵게 됐다.

대구의 하모씨는 부친의 장례식을 전통양식으로 치르면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털어놨다. "하나부터 열까지 홀로 일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밤새 문상객을 받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산소 조성, 영구차 임대까지 챙겨야 했지요. 상여를 맬 상두꾼을 모으는 것도 간단치 않았습니다. 상두꾼 대표에게는 운구 중의 '저승길 노자' 시비를 없애기 위해 아예 가욋돈을 집어줬습니다."

하씨는 부모의 뜻을 받들기 위해 이 모든 짐을 졌지만 편리함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이 이런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전통장례를 주장할 이유는 없다.

병원 장례식장과 상조회사가 각광을 받는 것은 도시화와 주거공간의 협소화 때문. 아파트 생활이 일반화되면서 많은 문상객을 받기가 어려워졌다.

서울보건대 장례지도과 이필도 교수에 따르면 대구를 비롯한 대도시권에서 최근 5년간 80% 이상이 전문 장례식장을 이용해 장례를 치른 것으로 집계됐다. 전문 장례식장은 원스톱(ONE-STOP) 서비스로 유족의 편의를 최대화하고 있다.

추모 사이트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서울시 '사이버 추모의 집'(www.memorial-zone.or.kr)과 장묘전문업체 효손흥손의 '하늘나라'(www.hanulnara.co.kr) 등은 인터넷상에 고인의 사진과 동화상, 육성을 올려 세계 어디서든 추모글을 올리고 헌화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인터넷이 망자와 산 자를 연결하고 있는 셈이다.

영천·민병곤기자 minbg@msnet.co.kr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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