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작가 예진우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건넨 첫 마디가 내내 잊혀지지 않는다. "그림만 보고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 마세요." 그림은 '누드화'를 일컫는 것이고, '이상한 사람'은 행여 여체를 탐닉하는 괴짜 화가라는 뜻일 터. 아마 작가는 짐짓 농담으로 건넨 말이겠지만 누드화에 대한 일반인의 편견 때문에 마음 고생을 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작업실을 찾아갔을 때 작가는 한창 전시 작품을 마무리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내달 2~11일 갤러리 제이원에서 열리는 '예진우 누드전'. 인물화를 주로 그리는 작가는 이번엔 아예 누드화 20여점으로만 갤러리를 채우기로 했다. 물감 묻은 앞치마를 두른 작가를 앞에 두고 첫 질문을 던졌다. 왜 누드를 그리느냐고. 여체의 아름다움 운운할 줄 알았더니 뜬금없는 답이 나왔다. "공부하는 과정 중에 하나죠. 예전엔 인물화를 주로 그렸는데 차츰 벗은 몸을 그려보고 싶었고, 인체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계명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및 입선, 신라미술대전 대상까지 받은 작가가 아직 공부하는 중이라니. 예진우의 인물 및 누드 묘사를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완성된 그림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미련을 떨치지 못한다. "선배 화가들이 와서 붓을 빼앗아버릴 정도였습니다. 그만하면 됐다고. 그런데 제 마음에 100% 만족스런 그림을 아직 그리지 못했습니다."
학창 시절 그는 운동권 학생이었다. 풍물패에서 기타를 맡아 꽤 열심히 활동했다. 이념과 사상과 가치관이 혼돈스런 시기였다. 나름대로 살 길을 찾겠다며 그림을 시작했을 때 그가 선택한 길은 자연스레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애정을 쏟을 대상으로 사람을 택했다. 노래 가사처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기' 때문이리라. 먹을 것에 열중하는 어린 아이, 행상을 끄는 할머니 등 그가 그림 속에서 포착한 우리 이웃들의 표정 속에는 사랑이 넘친다. '살벌한'(?) 눈빛을 지닌 작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그의 누드 작품은 빼어난 인체 관찰력이 돋보인다. 대담하게 전신을 드러내기도 하고 수건으로 하체를 감싸기도 한다. 풍만한 가슴과 탄탄한 엉덩이가 눈길을 끌기도 하지만 정작 눈여겨 봐야 할 것은 뛰어난 관절 묘사다. 마치 모델이 살아 움직이는 듯 생동감이 넘친다. 피부 톤과 부드럽게 굴곡진 근육의 묘사도 놀랍다. 예진우의 붓끝이 누드를 거쳐 어디로 향할지 지켜볼 만 하다. 053)252-0614.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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