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14년을 살았다지만 기무라 도쿠고(49·안동시 와룡면)씨는 한국말이 아직 서툴렀다.
그녀가 사는 곳은 안동시에서 한참 외곽으로 벗어난 시골. 인근에 집이라고는 몇 채 보이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당연히 가족 외에는 대화를 나눌 사람이 거의 없다 보니 한국말도 더디게 늘 수밖에 없었다.
기무라 도쿠고씨는 1996년 한국으로 시집왔다. 교회 인연으로 남편 박현수(가명·52)씨를 알게 됐고, 결혼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녀는 "처음 시집왔을 때는 생각지도 못한 시골이라 처음에는 잠시 거쳐가는 산장 같은 곳인 줄만 알았다"며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눈물만 쏟아졌다"고 했다.
집은 작은 방 1칸과 주방·거실 역할을 하는 또 다른 방 등 2칸이 전부. 시골집임을 감안하더라도 작은 규모였고, 아이들 셋과 부부가 함께 살기에는 비좁아 보였다. 방 한켠에는 낡은 컴퓨터 한 대와 작은 TV가 놓여 있었다. 그나마 그것들이 그녀를 세상과 이어주는 연줄이라고 했다.
기무라씨는 "시집와서 5년 동안은 위성방송도 없었던 시절이라 지상파 2개 채널 외에는 TV를 볼 수도 없어 감옥이 따로 없었다"며 "지금은 케이블 채널을 통해 일본 방송을 볼 수도 있고, 컴퓨터를 통해 원하는 드라마를 다운받아 보기도 한다"고 했다.
넉넉잖은 살림에 입에 풀칠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남편은 시골에서 살았지만, 살고 있는 집을 제외하고는 농사지을 땅 한 평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남의 집 농사일을 도와주면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래도 기무라씨는 잘 적응해 냈다.
그녀는 "남편이 잘 해 줘서 좋았다"고 했다.
지금은 초등학교 6학년, 3학년, 네 살짜리 세 딸의 엄마. 가족들과 함께 가끔 안동댐으로 나들이도 가고, 마트도 다니는 그런 평범한 한국 주부가 됐다. 이들 가족이 가장 즐겨찾는 나들이 장소는 도심의 학교 운동장이다. 또래친구들이 없는 시골에 살다보니 운동장에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어서였다.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그녀에게 병마가 찾아왔다. 올 5월 일본 아오모리에 있는 친정집을 다녀 온 뒤 계속 소화가 안 되고 토하는 증상이 이어졌다. 그녀는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는데 겨우 한 고비를 넘기는 모습을 보고 안동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이후 한 달도 채 안돼 위암 3기 진단을 받게 됐다"고 했다.
박씨는 "2년 전 아내가 처음 위장에 통증이 느껴진다고 했을 때 제대로 치료를 못한 것이 뼈에 사무치게 후회된다"고 했다.
기무라씨는 위궤양 진단을 받고 약을 처방받았지만 "막내가 모유를 먹을 때라 약을 먹기 겁난다"며 중단하고 말았던 것. 이 후 가끔 배가 아프다고 했지만 병원가기도 힘든 시골이라 무심히 넘기고 말았다.
현재 기무라씨는 경기도의 한 병원에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위를 절제해 내는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아직 경과는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 박씨는 12년 된 티코 승용차를 몰고 경기도의 병원까지 왔다갔다 하며 아내의 병수발을 하고 있다.
세 아이 중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맏딸뿐. 기무라씨는 "딸이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는 전보다 더 의젓하게 엄마를 챙겨준다"며 "아직 둘째와 막내는 나이가 어려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리기 힘들다"고 했다.
요즘 기무라씨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일은 막내딸을 안고 뺨을 부비는 일이다. 그녀는 "스킨십이 많을수록 아이가 바르게 자란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꾸 안아주려 노력하고 있다"며 "싫어하고 도망가기만 했던 막내딸도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와서 안아달라고 조르기도 한다"고 했다.
"언제쯤이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이 환한 마음으로 아이를 안을 수 있을까요?" 그녀는 막내를 안고 고개를 푹 숙였다.
글·사진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매일신문사'입니다.
댓글 많은 뉴스
홍준표 "제대로 된 공항 만들어야…군위 우보에 TK신공항 건설 방안도 검토"
대구시 '재가노인돌봄통합' 반발 확산…전국 노인단체 공동성명·릴레이 1인 시위
최재영 "벌 받겠다…내가 기소되면 尹·김건희 기소 영향 미칠 것"
탁현민 "나의 대통령 물어뜯으면…언제든 기꺼이 물겠다"
尹, 한동훈 패싱 與 지도·중진 ‘번개만찬’…“尹-韓 앙금 여전” 뒷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