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공부 잘 하는 학생으로 만들고, 성격에 맞춰 지도함으로써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시키는 것은 모든 부모들의 소망이다. 부모들은 사교육비를 감당하기 위해 어떻게든 허리띠를 졸라매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어떤 희생이든 감수한다. 하지만 남의 손에 맡겨서는 자녀의 적성과 소질, 학습 여건과 상황에 맞는 지도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부모가 먼저 학습의 과정과 진로 선택 방법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해야 이후의 과정들도 효과를 거둬 좋은 결과에 이를 수 있다.
대구가톨릭대 심리학과가 최근 창설 30주년을 맞아 '심리학으로 학습 들여다보기'를 주제로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내용들은 이런 측면에서 유용하다. 핵심적인 부분들을 소개한다.
◆학습의 개념과 좋은 학습자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고 학교 수업에 맞춰 예습, 복습을 충실히 했어요."
대학입시 수석 합격자들의 인터뷰에서 흔히 등장하는 이 말은 얼마나 사실일까. 흔히 의례적인 답변으로 생각하지만 가장 정답에 가까운 방식이라고 심리학자들은 분석했다.
고전적 의미에서 학습이란 주위 환경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사이의 연관성을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라고 정의했지만 최근에는 관점이 능동적으로 바뀌었다. 단순히 입력되는 자극에 대한 기계적 반응의 연결 현상이 아니라 정보를 입수·처리·저장·재생시키는 일종의 정보 처리 과정이라는 개념이다. 학습자는 적극적인 정보 처리자이자 지식 생성자로서 지식과 정보를 저장하고 인출하는데 나름대로 전략을 사용한다.
결국 좋은 학습자란 학습 전략을 잘 세우는 학습자다. 대가대 심리학과 이윤형 교수는 좋은 학습자가 되기 위한 방법으로 단계적인 전략을 제시했다. ▷문제를 살펴보고 분석하고 ▷구체적이며 달성 가능한 학습 목표를 세워서 ▷스스로에게 맞는 전략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며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조절해 ▷목표를 달성하는 성공 경험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학습자는 학습을 계획하고 목표를 설정하며 자신의 수행을 점검하는 자기조절 전략을 가져야 한다.
◆학습의 과정과 효율화 방법
좋은 학습자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이 어떻게 사고하고 학습하는지 원리를 올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부모나 교육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 후 학습자에게 가장 효율적인 학습 방법을 파악해 습득, 활용해야 한다. 이 교수는 학습 과정에서 일어나는 인지 정보처리 모형을 앳킨슨과 쉬프린의 연구에 기초해 그림과 같이 설명했다.(그림 참고)
먼저 감각등록기란 학습자가 외부로부터 감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이는 수많은 자극을 최초로 저장하는 곳이다. 용량에는 거의 제한이 없으나 곧바로 처리하지 않으면 흔적이 사라진다. 지속시간은 자극의 노출 시간과 강도 등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시각은 약 1초, 청각은 약 2~4초 동안 정보를 유지한다.
학습은 중요 정보에 주의를 집중하는 데서 출발한다. 유입되는 모든 정보를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중요한 특정 정보를 선택해 관심을 쏟지 않으면 학습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교육자가 물리적 도구를 사용하거나 '시험에 나온다'는 식으로 강조하거나 시범, 도표, 그림, 문제 등을 활용하는 것도 학습자의 주의를 끌기 위한 방법이다.
지각은 학습자가 주관적으로 정보에 의미와 해석을 부여하는 과정이다. 과거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사전 지식이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수업 시작 전 잠깐 동안의 복습이 큰 도움을 주는 것은 공부가 기존의 지식체계에 새로운 지식을 추가시키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축적한 지식과 경험이 많을수록 효과가 커지는 빈익빈부익부 원리가 작용한다.
작동기억(Working Memory)이란 정보를 처리하는 장소로 용량에 한계가 있다. 시연이란 작동기억 안에서 이루어지는 처리과정으로 정보를 읽고 반복하는 것이다. 충분한 시연이 이루어지면 장기기억으로 전이되기도 하지만 보통 정보가 사용될 때까지 작동기억에 유지된다. 유지되는 정보는 앞 또는 뒤의 정보에 의해 간섭받기도 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멸된다. 학습과 시험 사이에 간격이 적을수록 좋은 '벼락치기'는 간섭과 소멸을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방법이다. 단, 사전에 이해가 되고 미리 학습한 후에 벼락치기를 해야 효과적임을 명심해야 한다.
반복적인 시연 외에 작동기억 안에서 처리한 정보를 장기기억으로 이동시키는 또 다른 방법은 부호화다. 장기기억 속에 존재하고 있는 기존의 정보와 연결하거나 연합하는 과정을 말한다. 부호화를 고려하지 않은 기계적 암기는 한계가 분명하다. 배우들이 대사를 외울 때 실제처럼 연습하는 것도 부호화의 한 방법이다. 학생들로서는 누군가에게 강의하듯 설명하면 가장 잘 이해된다고 한다.
정보를 유의미하고 일관성 있게 묶는 조직화와 정교화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고시 합격자의 노트는 잘 정리돼 있지만 누구나 그 노트로 공부한다고 고시에 합격하는 건 아니다. 자신에게 맞는 분류 체계에 따라 분류된 정리 노트는 공부에 필수적이다.
장기기억은 무한한 정보를 영구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곳으로 심리학자들은 도서관의 장서 보관체계에 비유한다. 장기기억에 존재하는 정보는 네트워크 구조로 형성되므로 여러 정보들을 서로 관계 지어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효과적인 학습전략이란 결국 정보를 유의미한 범주로 조직화해 체계적으로 저장하는 방법을 말한다.
◆개인별 차이와 극복
학습은 누구에게나 비슷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개인별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여기에는 주의나 지각 능력의 차이, 사전 지식의 양, 작동기억의 차이 등의 요소와 함께 기억 전략의 차이, 지식 간의 연결성, 입력 단서들의 풍부성과 단서 활용 가능성의 차이 등 방법적인 요소도 큰 영향을 미친다.
차이를 일으키는 또 다른 결정적 요소는 정서나 동기 같은 특성이다.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감이다. 작은 성취를 통해 기쁨을 누리게 해 줘야 한다. 성공에 대한 체험은 긍정적인 자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자신감이 떨어지면 할 수 있는 일도 못 하게 되며 나중에는 하려고 들지도 않는다. 어려운 문제를 못 풀면 자신감이 떨어져 쉬운 문제도 못 푸는 식이다.
동기가 약한 학습자에게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통해 학습하게 만들어야 한다. 자동차만 좋아하고 책 읽기를 싫어한다면 자동차 관련 책을 읽히는 것이 현명하다. 수의 개념이 약한 아이에게는 좋아하는 과일이나 음식을 통해 이해시키는 방법이 유용하다. 이윤형 교수는 "개인별 차이는 학생과 부모의 책임이 먼저이므로 여기서 실마리를 풀어야지 학교나 학원에 맡겨서는 해결되지 않는다"며 "학습자에게 가장 효율적인 학습·사고 방법을 파악해 활용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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