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통계로 보면 77%의 영화에 흡연 장면이 등장했다. 당시 앨 고어 미국부통령이 아동의 흡연을 줄이기 위해 영화의 흡연 장면을 줄이도록 미국 배우협회와 감독조합, 극작가조합에 요청하면서 제시한 통계였다.
요즘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전무하다. 영화에서도 필요한 경우에만 흡연 장면을 넣는다. 그나마 TV에 방영될 때는 흐릿하게 처리해서 보여준다.
담배는 한때 주인공의 감정을 드러내는 필수적인 소품과도 같았다. 짐 자무시 감독의 '커피와 담배'(2003년)는 96분 러닝타임 내내 주인공들이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워대는 영화다.
웨인 왕 감독의 '스모크'(1995년)는 제목대로 담배연기에 담은 인생이야기다. 영화의 주인공은 대개 술을 마시는데 이 영화에선 담배를 피워댄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고독하고 좌절한 인생의 패배자들이다.
작가 폴(월리엄 허트)은 담배를 사러 간 아내가 은행 강도의 유탄에 맞아 죽자 아내를 잊지 못해 담배를 피우고, 담뱃가게 주인 오기(하비 케이텔)는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친 옛 애인을 잊기 위해 담배를 피운다. 이들의 담배에는 지난날의 향수가 자욱하게 서려 있고, 삶에 대한 허무도 진하게 배어있다.
마틴 브레스트 감독의 '미드나이트 런'(1988년)은 현상금 추적자와 마피아의 돈을 훔친 회계사의 인간미 넘치는 '동행'을 그린 영화다. 잭 왈쉬(로버트 드 니로)는 마피아의 뇌물을 거부하다 그들의 농간으로아내와 이혼까지 한 전직 경찰. 그가 현상금 10만달러를 벌기 위해 쫓는 존 마두카스(찰스 그로딘)는 마피아자금 1천500만달러를 횡령해 불우이웃을 도운 '기이한' 회계사다. 거의 '사망선고'를 받아놓은 거나 다름없다. 뉴욕에서 LA까지 대륙 횡단하는 이들을 FBI와 마피아, 또 다른 현상금 추적자가 추적하면서 존과 잭은 묘한 우정을 깨닫는다.
여기서 세 명의 캐릭터들은 줄담배를 피운다. 잭과 FBI국장, 잭과 경쟁 현상금 추적자. 모두 허무주의적이거나 '끝까지 간' 캐릭터다. 그러나 '스모크'와는 달리 담배는 유머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
브라이언 드 팔머 감독의 '칼리토'에서 칼리토(알 파치노)는 시가를 피운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길 건너편 연인의 발레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칼리토. 갱영화이면서 멜로의 맛이 어느 영화보다 절절했던 것도 '총과 담배'라는 절망스런 분위기였다.
미국에선 담배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담배 피우는 것 역시 떳떳하지 못하게 인식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담배가 사라진 영화는 아련한 옛 추억이 한 장 뜯겨져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험프리 보가트가 회한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표정으로 담배연기를 내뿜던 장면이 흐릿하게 처리되어 방영될 때 더욱 그랬다.
김중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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