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은 물론 채소에서 수산물까지 방사성 물질에 오염이 됐다고 하니 무엇을 먹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일본 국민들의 체념 섞인 하소연이다.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대량 유출 사태는 일본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도 두려움에 떨게 만들고 있다. 29일 국내 12개 지방 방사능 측정소에서 방사성 요오드가 검출됐으며,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에는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방사성 물질은 눈에 보이지 않고 냄새로 구분되지 않는데다 사람을 통해, 바람과 물을 타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갈 수 있다. 방사성 물질은 반감기가 길게는 수십 년에 이르는 것도 있어 그 피해의 범위를 예측할 수 없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25년이 지났다. 하지만 이 사고로 인한 방사능 피해는 현재도 지속되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이끈 국제 공동 연구진은 1986년 4월 체르노빌 원전 사고 당시 방사능 낙진에 노출된 어린이들의 발암 위험성을 추적 조사한 결과, 방사선 피폭량이 많을수록 암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고, 25년이 지난 후에도 발암 위험이 낮아지지 않았다고 3월 17일자 학술지 '환경보건전망'(Environmental Health Perspectives)에 발표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부 국가에서는 원전 건설 반대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주 독일에서는 25만여 명이 참가한 사상 최대 규모의 원전 반대 집회가 열렸다.
국내에서도 원전을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울진'월성'고리 등 모두 21기의 상업 원전이 가동되고 있다. 여기에 추가로 10여 기의 원전을 건설 중이거나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당장 월성 원전 1호기의 수명 연장을 놓고 지역 주민들은 반대 입장을 보이는 등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국내 원전의 경우 규모 6.5의 지진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있고, 6.5 이상의 지진이 일어난 적도 없고, 향후 발생할 확률도 극히 낮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환경'시민단체들은 지진 규모에 맞춰 원전이 설계됐다는 이유만으로 원전이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대체로 원전의 안전성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정부와 제도권 교육이 오랫동안 원자력발전이 깨끗하고, 안전하고, 값싼 에너지라는 점을 주입시켜 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문가 집단이 원전 담론을 독점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원자력 신화'는 공고해졌다. 하지만 체르노빌에 이은 후쿠시마 사고는 원전의 안전 신화가 허구임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는 원전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꿈의 기술'이라 불렸던 원전에서 예상치 못한 재난이 발생하자 인간과 첨단 기술은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아무리 철저한 설계와 시스템으로 무장을 한다고 해도 인간이 하는 일에서 완벽성을 보장할 수는 없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예상치 못한 지진해일(쓰나미) 때문이라고 하지만, 자연재해는 그 속성상 예상을 벗어난다. 더구나 지구온난화 등의 영향으로 최근의 자연재해는 인간의 재난 예방 시스템을 무력화시킬 정도이다.
독일 정부는 체르노빌 사고 이후 지속적으로 원전의 비중을 낮추기 위해 노력해왔다.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하고 수명이 다한 원전을 폐쇄했다. 원전 개발 대신 대체 에너지와 재생 에너지, 그리고 기존 발전원들의 효율을 높이는 데 자금을 투입했다. 우리도 원전에 대해 고민하고 대안을 생각해야 한다. 정부는 원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대체 에너지 개발과 기존 공급 위주의 에너지 정책에서 수요 관리에 주안을 둔 에너지 정책을 펴야 한다. 국민들이 원전에 대해 정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숨김없이 정보를 공개하고, 국민적 차원에서 원전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정책 결정자와 원전을 지지하는 기술 관료 및 전문가들에 의한 일방적인 에너지 정책 수립 방식은 민주적 의사 결정이 아니다. 더욱이 지구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한 에너지 정책을 결정할 때는 국민들의 의사를 물어봐야 한다.
김교영(특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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