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을 구분해 양립하는 것으로 보고 있지만, 종교에서는 악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원래 악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선함이 없거나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이 악이라고 보고 있다.
영화 '베니싱'은 흥미롭게 빛이 없는 어둠이 공포의 대상이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어둠이 사악한 악마의 손길처럼 사람들을 위협한다.
정전이 있던 다음날 TV리포터 루크(헤이든 크리스텐슨)는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길에 오른다. 그러나 거리에는 사람의 흔적이 없다. 허물처럼 벗겨진 옷가지와 주인 없이 나뒹구는 자동차들만 거리를 덮고 있다. 하늘에서는 여객기가 곤두박질 친다.
급히 방송국에 간 루크는 어둠이 덮쳐 사람들이 사라지는 충격적인 영상을 보게 되고 어둠을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사흘 후 그는 암흑으로 뒤덮인 도시에서 자가발전기로 유일하게 빛을 내는 7번가 술집을 찾아내고, 그 곳에서 다른 생존자들과 만나게 된다. 영사기사 폴(존 레귀자모), 물리치료사 로즈마리(텐디 뉴튼), 술집 주인의 아들인 제임스, 이들의 공통점은 정전 당시 그들을 지켜주던 빛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남아 있는 빛도 점점 꺼져가는 최악의 상황. 발전기가 언제 멈출지 모르고, 낮도 점점 짧아진다.
'베니싱'은 사람이 사라지는 초자연 현상을 소재로 한 스릴러다. 1585년, 115명의 사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로어노크섬 실종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강박관념에 시달려 점점 말라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머시니스트'의 브래드 앤더슨이 연출하고, '점퍼'의 헤이든 크리스텐슨이 주연을 맡았다.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절박함이 공포스러운 비주얼에 녹아 피가 철철 흐르는 여느 공포영화와 다른, 종말론적인 공포를 선사한다.
영화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앞으로 어떻게 될 지에 대한 단서를 주지 않는다. 우연하게 작은 빛이 있어 살아남았던 사람들이 벌이는 삶과 죽음의 사투만 영화 전편에 걸쳐 그려낸다.
연쇄살인마도 아니고, 경악할 자연재앙도 아닌 우리의 일상 속에 있는 어둠이 공포의 대상이다. 빛은 삶이고, 어둠은 죽음이다. 감독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이라면 모두가 느껴봤을 법한 어둠에 대한 근본적인 공포를 다루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초반 극적 긴장감은 중반을 넘어서면서 힘을 잃는다. 단선적인 캐릭터에 관객의 호기심이 느슨해지면서 주인공들의 사투만 연속적으로 반복된다. 기발한 설정에 종말에 대한 공포가 느껴지지만, 이를 장편으로 끌고 가는 힘이 역부족이다. 그래서 러닝타임이 91분 밖에 안되는가? 12세 관람가.
김중기 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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