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등골 빠질 노릇… 물가폭탄에 갈수록 팍팍한 서민들

영세민 "벌이 시원찮은데…생계막막" 상인 "소비 작년의 반으로 줄어

올 들어 수출, 증시 등은 활황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수입은 줄거나 정체상태지만 장바구니 물가가 치솟고 공공요금 인상까지 겹치면서 서민들을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소비가 줄면서 자영업자들의 시름도 깊다. 특히 저소득층은 부족한 일자리에 물가만 오르면서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졸라 맬 허리도 없다

장바구니 물가는 자고 나면 오르고 있다. 동북지방통계청에 따르면 4월 대구지역 소비자물가지수는 120.1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4.6% 올랐다. 같은 기간 콩은 78.4% 뛰었고, 양배추는 71.4%, 마늘은 63.9% 상승했다. 생선이나 채소, 과실 등 신선식품지수는 140.6으로 3월에 비해서는 5.2% 내렸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하면 21.2%나 오른 수치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밥상 물가에 주부들의 한숨은 깊어가고 있다. 23일 오후 대구 북구 한 대형마트. 한산한 대형마트를 둘러보는 주부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물건을 들었다가도 가격표를 살펴보고는 발길을 돌리는 이들도 적잖았다. 주부들은 한결같이 "가격이 너무 올랐다"고 푸념했다. 장을 보던 주부 박모(46) 씨의 카트에는 참치 캔과 계란 한판, 호박, 배추 등이 담겨 있었다. 박 씨는 "워낙 물가가 비싸다 보니 상대적으로 싼 기획상품만 사고 있다"며 "돼지고기를 사려했는데 1만원어치도 양이 너무 적어 포기했다"고 말했다.

주부 황모(35'북구 침산동) 씨는"식구 4명이 라면 3개를 끓여 나눠먹는다. 예전엔 삼겹살 1만원어치만 사도 배불리 먹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다"며 "대형마트에서 '1+1'로 파는 냉동식품도 뜯어보면 예전 1개짜리보다 양이 적다"고 푸념했다.

◆저소득층 생존 기로

저소득층은 고물가가 힘겹다. 매달 기초노령연금 9만원과 용돈 30만원으로 생활하는 허위출(80'달서구 송현동) 할머니는"고기나 생선은 사먹을 엄두도 못 낸다. 약값 10만원과 쌀, 반찬값 등으로 10만원을 쓰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유점(85) 할머니는 노령연금 9만원과 떨어져 사는 아들이 주는 10만원으로 생계를 잇고 있다. 그녀는 "시장에 갈 돈이 없어 노인정에서 대충 간식으로 때운다"고 했다. 칠순의 아내가 청소부로 일하며 버는 50만원과 노령연금이 수입의 전부라는 김수옥(75) 씨는 "수도료와 전기료, 난방비 등 관리비가 30만원 가까이 나간다. 늘어나는 생활비 부담에 갈수록 살기가 팍팍하다"고 힘들어했다.

직장인들도 마찬가지다. 최근 건강보험료가 오른데다 담뱃값과 음식값이 뛰면서 점심끼니 걱정이 앞설 정도다. 직장인 김태훈(28'북구 복현동) 씨는 "회사 인근 식당의 밥값이 500~1천원씩 일제히 올랐다"며 "월급은 그대로인데 온갖 지출은 늘어나니 담배 한개비도 마음놓고 피우기 힘들다"고 한숨을 쉬었다.

부동산 경기가 바닥을 헤매면서 저소득층이 얻을 수 있는 일자리도 잘 생기지 않는다. 일용직근로자인 백모(54) 씨는 "지난해엔 1주일에 5일은 일을 했지만 올해는 3일밖에 못하고 있다. 일을 구하지 못한 날에는 고물을 주워 간신히 1만원 정도를 벌어 연명한다"고 했다. 일식집 주방에서 일한다는 박모(47'여'남구 대명동) 씨는 "한달 전쯤 화상을 입었지만 병원비 걱정에 치료도 제대로 받지 않았다"며 "남편과 아들까지 돈을 벌지만 물가 때문에 나라도 돈을 벌지 않으면 생활도 힘들 지경"이라고 답답해했다.

◆소비 줄어 상인들도 울상

고물가 탓에 소비가 줄면서 상인들도 울상을 짓고 있다. 23일 오후 수성구 파동시장 안은 썰렁하기만 했다. 어두컴컴한 시장 안 여기저기에는 세를 놓는 푯말이 붙어있었고 흔한 노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이곳에서 15년 동안 돼지고기 음식점을 운영했다는 박종희(46'여) 씨는 "5월에는 야유회나 체육행사 등으로 수육 주문이 많은데 올해는 비싸다며 그냥 돌아가는 통에 주문이 지난해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고 호소했다.

오랫동안 한 자리에서 장사를 해온 상인들은 '최악의 경기'라고 입을 모았다. 남구 봉덕동에서 돼지국밥장사를 하는 이모(57'여) 씨는 "구제역 때문에 고기값도 올랐지만 채소는 2배 정도 올라서 최근에 국밥가격을 올렸다. 이래도 안되면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했다. 전통시장에도 여전히 찬바람이다. 중구 서문시장에서 칼국수 노점을 하는 임모(62'여) 씨는 "국수값이 2천500원인데 그 돈도 아끼려는 사람들이 많다"며 "노점이 이 정도면 가게 월세를 내는 사람들은 사정이 더 딱할 것"이라고 말했다. 꽃집을 운영하는 윤모(32'여) 씨는 "봄꽃을 찾는 손님들이 지난해의 딱 절반 수준이다. 행사가 많은 5월까지만 견뎌보고 그래도 안되면 가게를 그만둘 생각"이라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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