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디지털 라이프] 내년부터 '블랙리스트' 제도 도입

통신사 통해 사던 단말기 제조사에서 직접 구입

이르면 내년부터 단말기 블랙리스트 제도가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는 통신사를 거치지 않고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 휴대폰 제조사에서 직접 단말기를 구입해 가입하고 싶은 통신사를 선택해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현재 통신사 중심의 단말기 유통구조에 일대 변혁이 일어나는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번주 중, 통신비 인하 대책 방안의 하나로 이런 내용을 담은 '단말기 블랙리스트' 제도를 발표할 예정이다.

◆블랙리스트? 화이트리스트?

현재 국내에서 휴대폰이 유통되는 방식은 '화이트리스트 제도'다. 이동통신사들이 단말기 식별번호인 IMEI를 모두 관리하고 있는 것. 통신망을 공급하고 있는 통신업체들이 단말기 판매와 개통 권한까지 가지고 있으면서 소비자들은 이들의 동의를 거치지 않는 한 휴대폰을 구매하거나 개통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화이트리스트 제도는 휴대폰 구매 및 서비스 가입 절차를 한곳에서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또 단말기 보조금 지원과 체계화된 가입자 관리도 용이하다. 하지만 이런 화이트리스트의 장점이 어떤 측면에서는 '독'이 되는 양날의 검이었다. 단말기 공급권을 이통사들이 독점함으로써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침해당하고, 제조업체와 소비자 간 직접 구매 기회가 원천차단되면서 각종 부작용을 낳은 것.

그 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통신업체들의 과도한 마케팅 경쟁이다. 가입자 수를 늘리기 위해 과도한 보조금 지급 경쟁을 계속하면서 결국에는 이것이 단말기와 통신서비스의 가격 거품으로 소비자에게 되돌아오는 악순환이 계속된 것.

이에 반해 방통위가 내년부터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블랙리스트 제도'는 통신업체들이 분실 단말기나 도난 등으로 인해 사용할 수 없게 된 단말기 고유번호만 블랙리스트로 관리할 수 있도록 최소화시킨 제도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들은 원하는 가게에서 원하는 휴대폰을 구입, 원하는 통신업체에 가입해 자유롭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셈이다. 대형 유통망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대기업 제조사들에 비해 팬택 등 자체 유통망이 적은 제조사들과 해외 브랜드들은 하이마트, 전자랜드 등과 같은 유통사와 제휴해 휴대폰 판매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화이트리스트 제도를 고수하고 있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한다.

◆통신요금 인하효과 있을까?

방통위는 유통업체들과 통신업체들의 각각의 경쟁구도가 더 치열해지면서 과거 이통사 대리점을 통해 단말기를 공급받았을 때보다 단말기 가격의 거품이 제거되고, 또 최적의 약정할인 상품을 골라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통신요금 인하의 효과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보조금을 미끼로 워낙 비싼 기본요금제 가입을 유도하는 통신업체들의 상술이 판을 치다 보니, 블랙리스트 제도가 도입되면 이런 불필요한 요금제에 현혹당하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요금제를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통신요금 인하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

또 중고 휴대폰 재활용을 활성화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채 1년도 쓰지 않고 새 단말기로 교체하는 경우가 워낙 많다 보니 멀쩡한 휴대폰이 서랍에서 잠자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이에 따라 블랙리스트 제도가 시행되면 유심(USIM:범용가입자인증모듈)만 바꿔 끼우면 단말기를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꿔 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블랙리스트 제도 전환에 따른 단점도 상당수다. 당장 휴대폰을 개통하려면 단말기 판매점과 통신서비스 업체 두 곳에 들러야 하는 수고가 발생한다. 통신업계에서는 아예 블랙리스트 제도의 실효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휴대폰 단말기 가격은 인하될 수 있겠지만 통신업체가 각종 소비자 혜택을 줄이면서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실질적인 인하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통신업계가 뿌리고 있는 막대한 금액의 보조금이 차단되고 각종 서비스 혜택이 축소될 경우 오히려 실질적으로는 단말기 가격 인상을 불러 소비자 부담만 더 크게 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휴대폰 분실 시 사고 위험도 높아진다. 지금은 해당 통신업체에만 신고하면 타인의 불법 사용 등을 차단할 수 있지만, 블랙리스트 제도 아래에서는 휴대폰을 분실한 개인이 직접 경찰서 등에 신고해야 하는 불편이 발생한다. 이에 대해 방통위는 '이동통신사 통합 IMEI 관리 센터'를 구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소비자가 관리센터에 자신의 단말기 IMEI를 한 번만 등록하면 통신업체가 바뀌어도 계속 관리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또 외국에서 분실'도난되거나 범죄용으로 신고된 단말기가 불법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제 공조 네트워크도 구축할 계획이다.

중고 휴대폰 재활용 효과보다는 오히려 휴대폰 교체 주기를 좀 더 앞당길 것이라는 부정적 견해도 있다. 기존 통신업체들이 보조금 지급을 미끼로 '약정'을 강제했던 것이 사라지게 되면서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빨리 휴대폰을 교체하려고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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