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재즈 기타의 거장 팻 메스니가 지난 5월, 서울재즈페스티벌 참가차 내한했을 때의 일이다.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팻 메스니에게 가장 존경하는 기타리스트가 누구냐고 물었고, 팻 메스니는 장고 라인하르트와 케니 버렐, 그리고 웨스 몽고메리를 말했다. 그 중 웨스 몽고메리를 가장 존경하는 기타리스트로 말했는데 원래 트럼펫을 했던 팻 메스니가 기타리스트로 전향하게 된 계기라고도 했다. 팻 메스니만 아니라 웬만큼 알려진 재즈 기타리스트들은 웨스 몽고메리의 그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왜냐하면 모던재즈 기타 연주의 모든 것을 만든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웨스 몽고메리(Wes Montgomery)는 하드밥과 소울 재즈가 유행하던 1960년대를 풍미했다. 하지만 웨스 몽고메리가 처음 사람들 앞에 등장했을 때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재즈계에서 기타는 작은 음량의 한계로 그리 주목받는 악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앰프와 스피커, 일렉트릭 기타가 등장하면서 음량의 한계는 해결되었지만 그 수혜는 재즈가 아닌 로큰롤이 보고 있었다. 거기에 웨스 몽고메리의 연주는 정서적이다. 격정이 대세이던 시절 조용하고 차분한 연주가 환영받지 못했던 것이다.
1950년대를 무명으로 보낸 웨스 몽고메리에게 기회를 준 사람은 당대를 대표하는 색소폰 연주자 캐넌볼 애덜리였다. 발표하는 앨범마다 재즈 바이블로 평가받을 만큼 영향력을 가진 캐넌볼 애덜리는 재즈 명가 리버사이드에 웨스 몽고메리를 소개했고, 재즈 기타의 교과서라고 평가받는 앨범 'Increduble Jazz Guitar'(1960)를 녹음하게 된다. 앨범을 통해서 웨스 몽고메리는 전매특허나 다름없는 옥타브주법, 코드주법 등을 선보인다. 특히 피크가 아닌 엄지손가락으로 기타를 연주하는 주법을 선보이는데 이후 많은 재즈 기타리스트들이 피크를 버리고 손가락으로 기타를 연주한다.
그런데 손가락 주법의 발명은 의도된 것이 아니었다. 웨스 몽고메리가 무명 시절 기타 연습을 할 때마다 이웃에서 항의가 들어왔는데 그 해결책으로 피크를 버린 것이다. 이렇게 우연히 시작된 손가락 주법은 오히려 중량감 있는 소리를 들려줬고 기타를 리드 악기로 자리할 수 있게 만든다. 특히 차갑고 금속성 소리만 낼 수 있다는 일렉트릭 기타의 이미지를 바꾸게 된다.
기타가 대중들에게 중요한 악기로 인정받는 일은 록음악이 등장하고부터다. 재즈계에서도 기타는 재즈록 또는 퓨전 재즈라고 말하는 스타일이 등장한 1970년대 이후나 되어야 각광받는 악기로 자리하게 된다. 하지만 웨스 몽고메리가 없었다면 기타의 전성시대는 한참 늦춰졌거나 아직 등장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변방의 악기를 20세기 음악의 중심악기로 만든 웨스 몽고메리의 업적은 혁명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자신을 재즈 기타리스트라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웨스 몽고메리를 흉내내는 데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권오성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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