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후딱 먹고 갑시다"

12월에도 벌써 10곳 이상의 결혼식장에 다녀왔다. 결혼식(본식)의 기획과 연출 그리고 사회, 때로는 주례 없는 예식으로 주례의 역할까지 하는 경우도 있지만 가끔은 진정한 하객으로 혹은 또 다른 임무를 띠고 참석하기도 한다.

지난 일요일, 친한 후배가 예식 동영상 촬영을 부탁해서 오랜만에 식장 여기저기를 누비며 결혼식 영상스케치를 했다. 대부분 사회석 쪽에 머물거나, 식 진행을 준비하면서 분주하게 다니느라 하객들의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들을 수 없었지만 그날은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다. 결혼식에 오면 하객들이 궁금해하며 주고받는 대화의 레퍼토리는 정해져 있다고는 해도 식이 시작되기도 전에 들려온 한마디는 씁쓸한 기운으로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있다.

"말라꼬 여 있는교? 후딱 먹고 갑시다."

원형 테이블로 꾸며진 자리에서 동시에 8명 정도가 연회장으로 대이동했다.

물론, 그분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결혼식 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여러 홀로 꾸며진 예식장, 시장통 같은 사람들 틈바구니에 축의금을 내고 식권을 받아들고 사람들이 덜 붐비는 틈을 타 밥을 먹고자 바로 연회장으로 향하는 하객, 또 다른 결혼식을 위해 답례품을 손에 들고 식장을 나서는 하객,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들리지 않는 사회를 맡은 신랑 친구, 결혼 당사자들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자랑과 의미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마지막으로' '끝으로'라며 고도의 주례 기법을 쓰는 주례, 웅성웅성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하객들. 그다지 신랑과 신부의 입장에서는 반가워하지 않을 장면들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신랑, 신부는 본식이 가장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턱시도, 메이크업, 헤어의 완성 등 준비 과정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정작 결혼식 당일에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소중한 시간을 정신없이 흘려버리고 만다. 간격이 촘촘한 예식장 스케줄을 비롯한 여러 시스템 자체가 다른 공간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모든 결혼식의 풍경은 아니다. 많이 달라졌고, 하객들의 의식수준도 향상되어서 의미 있고, 풍성한 예식을 많이 접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좀 더 새롭게 시도하려는 결혼식은 형식만 점차 화려해지고 있을 뿐 내용의 참신한 변화를 발견하긴 어렵다. 머물고 싶은 결혼식, 끝까지 축하해 주고 또 축하를 받는 결혼식 문화는 언제부턴가 사라졌다.

연예인이 나와서 의미 없는 축가를 부르고, 이벤트 사회자가 나와서 떠들썩한 진행을 하더라도 결혼 당사자가 중심이 되지 못하면 쇼에 불과하다. 물론 신랑, 신부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상담을 해서 그 마음을 읽고 그들만의 예식을 기획했다면 남부럽지 않은 ' 세기의 결혼식'이 될 수도 있다.

의미라는 것은, 진솔하고 자연스러움 속에서 묻어나는 것이다. 화려하지 않더라도 잔잔한 음악이 깔리며 신랑이 턱시도 안주머니에서 꺼낸 꼬깃꼬깃한 A4용지에 담은 부모님과 아내에게 보내는 소소한 편지 하나만으로도 감동적이고 여운을 남길 수 있는 예식이 될 수 있다. 물론 하객들도 집중시킬 수 있다.

결혼이라는 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작업이다.

보여주기 위한 것에 에너지를 낭비하며 스트레스 받지 말고, 좀 더 자신들의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 수 있게 하객들을 의식하지 말고 신랑은 신부에게 신부는 신랑에게 그리고 양가 부모님께 어떻게 하면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자. 그 고민에 대한 답이 평생을 끈끈하게 만들어주는 든든한 추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우리는 조금은 어설프고 지루하더라도 끝까지 함께 박수쳐 주고 축하해 주자.

그것이 내가 낸 축의금을 몇 배로 불려 주는 일이다.

공태영/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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