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송인 김구라 씨가 막말 논란으로 방송계를 떠났다. 그는 2002년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면서 종군위안부를 비하하는 말을 한 것이 화근이 되어 출연 중인 방송에서 모두 하차했다. 본인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10년 전 말이 뒤늦게 문제가 된 것은 김구라 씨와 민주통합당 후보로 19대 국회의원에 출마했다 낙마한 김용민 씨의 특별한 인연 때문이다. 김용민 씨의 막말 파문이 불거지면서 과거 인터넷 방송을 함께 진행했고 4'11 총선 당시 김용민 씨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던 김구라 씨의 막말까지 회자되기 시작한 것.
김구라 씨의 막말이 세상에 다시 등장하게 된 단초는 김용민 씨 막말 파문이 제공했지만 본질은 인터넷이 갖고 있는 정보 보존 능력(?)에 있다. 인터넷에는 과거의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에서 '증거의 바다'로 변질되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돌고 있다. 또 과거의 기록을 지울 수 있는 법안을 만들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김구라 씨 막말 파문을 계기로 인터넷 흔적 지우기 논란을 조명했다.
◆네가 한 일을 기억하고 있다
19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경북 고령'성주'칠곡 선거구)했던 석호익 전 KT 부회장도 과거 발언이 문제가 되어 국회 입성의 꿈이 좌절됐다. 석호익 씨는 2007년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재직 당시 내뱉은 말이 여성 비하 논란에 휩싸이자 새누리당 공천권을 반납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여론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과거 발언이 그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인터넷을 통해 과거 행적이 공개되면서 문제가 된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최근 걸그룹 카라는 일본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국에서는 보통 남자들이 데이트 비용을 전부 낸다. 밥값도 전부 내고 가방도 들어 준다"고 말한 것이 다시 불거지면서 논란의 중심이 됐다. 문제의 말은 지난해 공개되어 기사화된 적이 있었지만 최근 일부 누리꾼들이 다시 해당 방송 화면을 이슈화하면서 논란이 재점화됐다.
올 초에는 그룹 틴탑의 맴버 캡이 과거 캐이블채널에서 한 남녀차별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케이블채널 Mnet '와이드 연예뉴스'에 출연해 '10년 뒤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제 자식은 정말 멋있게 키울 거예요. 아들이라면 원하는 것은 뭐든 다 해주면서 키우고, 여자면 때리면서 집에만 가둬놔야죠"라고 말한 것이 새삼 도마 위에 오른 것. 당시 캡은 "바깥 세상이 위험하다"는 의미로 내뱉은 말이었지만 논란이 거세지자 결국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 사과했다.
인터넷에 한번 올린 자료는 반영구적으로 남아 있다. 따라서 과거에 한 말뿐 아니라 사진, 동영상 등의 개인 기록은 언제든지 부메랑이 되어 돌아 올 수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막말을 입력한 뒤 검색을 하면 지하철 막말녀, 택시 막말녀 등 과거 문제가 되었던 막말 자료를 모두 볼 수 있다. 종군위안부를 키워드로 입력하면 2004년 종군위안부를 소재로 한 화보 촬영을 하다 논란을 불러 일으킨 탤런트 이승연의 자료도 검색된다.
◆원인은 검색 기술 발달과 SNS 발달.
김구라 씨 막말 파문은 인터넷 시대, 한번 공개된 정보는 언제든지 확대 재생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심지어 공개된 정보가 허위 사실로 확인되더라도 근거 없는 기록은 그대로 남아 꼬리표처럼 따라 다닌다. 게다가 '신상털기'로 이어져 인권 침해 논란까지 불러 일으키고 있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MC몽을 입력하면 병역을 회피하기 위해 고의로 이빨을 뽑았다는 부분은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병역을 기피했다는 각종 의혹들은 끝없이 쏟아진다.
전문가들은 특정 계기가 제공되면 과거 행적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해 사회적 이슈가 될 수 있는 배경에는 검색 기술의 발달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활성화가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국내 SNS 사용자는 카카오톡의 경우 4천여만 명, 싸이월드는 2천500여만 명, 트위터는 550여만 명, 페이스북은 450여만 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번 정보를 퍼 나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어 순식간에 통제 불능의 상황에 빠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잊힐 권리 찾기
모바일 기기를 통한 '실시간 검색'이 생활화되고 SNS를 통해 손쉽게 정보를 유포할 수 있게 되면서 누구든지 '온라인 공적'으로 몰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잊힐 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잊힐 권리'는 개인이 인터넷에 올라 있는 각종 정보를 삭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잊힐 권리'를 찾기 위한 노력은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인터넷에 남겨진 흔적들을 지워주는 디지털 장의업체가 등장해 성업 중이다. 라이프인슈어드닷컴은 회원이 사망하면 유언에 따라 페이스북 등에 올려 둔 사진은 물론 다른 사람 홈페이지에 남긴 댓글까지 찾아 지워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잊힐 권리'를 법제화하는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유럽연합은 올 1월 개인의 요청이 있을 때, 인터넷 사업자가 개인 정보를 삭제해야 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정보보호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프랑스는 인터넷에서 개인정보의 유통기한을 설정하는 법안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 또 독일에서는 죄를 저질러 수형 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범죄에 대한 죗값을 치른 만큼 관련 기록을 인터넷에서 삭제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에 독일 법원은 범죄자들도 프라이버시와 잊힐 권리를 갖고 있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국내에서도 '잊힐 권리'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잊힐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한 온라인 커뮤니티는 자신이 올린 글에 한해 사용자가 직접 삭제할 수 있는 '흔적 지우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반론도 만만치 않아
지난달 한국정보법학회가 '잊힐 권리'를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문재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잊힐 권리는 다른 기본권과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권리를 법률로 구체화하려면 신중한 검토가 요구된다. 인터넷의 보편화와 SNS의 확산으로 인터넷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가 날로 커지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프라이버시권 개념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프라이버시권과 표현의 자유라는 두 헌법적 가치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찾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인의 경우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부담이 일반인들보다 큰 점을 감안하면 자칫 '잊힐 권리'가 면죄부를 제공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또 상식을 초월한 행동은 '잊힐 권리'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인터넷에 한 번 올려진 정보를 완벽하게 지우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기술적 한계도 거론되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에 재학 중인 김모(27'여) 씨는 "인터넷에 공개된 행적이 쉽게 삭제될 경우, 공인들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사회적 책임을 둔화시키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잊힐 권리에 앞서 말 한마디라도 신중하게 하는 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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