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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문의펀펀야구] (하) 세이브 투수의 탄생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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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투수를 선택할 땐 세 가지 사항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타자를 완전하게 압도할 빠른 볼이나 싱커, 슬라이더 등 한가지 확실한 볼을 갖고 있거나 원하는 지점에 송곳처럼 정확하게 던질 수 있는 제구력, 그리고 투구폼이 특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요건을 다 갖춘다면 당연히 완벽한 세이브 투수가 되겠지만 한 가지만 확실해도 마무리 전문 투수로 이름을 떨칠 수 있다. 그중 한 가지 구질은 절대적인 믿음과 함께 타자가 좀처럼 공략할 수 없어야 한다.

마무리 투수가 경기 막바지, 마운드에 오를 땐 위기상황일 때가 대부분이어서 기필코 실점을 막아야 하는 임무를 갖는다. 이때 병살타로 연결할 그라운드볼(땅볼)을 유도하거나 삼진을 잡아낼 수 있는 공 하나는 마무리 투수가 갖는 최고의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투구폼이 특이한 경우는 마무리 투수가 한 타자를 두 번 상대하는 일이 없고, 또한 자주 상대하지도 않으니 타자들이 적응하기도 전에 끝을 내는 데 유리하다.

1985년 베로비치 다저스캠프에서 왼손 에이스였던 발렌슈엘라의 피칭 연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권영호는 생전 처음 보는 구질에 깜짝 놀랐다. 정통 싱커의 일종으로 손목 스냅을 비틀어 역회전해 던지는 일명 역회전 스크류볼이었는데,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모습이 아주 인상 깊었다.

당시 국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너클볼도 가끔 실전에서 구사할 만큼 실밥 다루는 능력이 뛰어났던 권영호는 곧바로 신무기를 전수받기로 작정하고 무작정 투수코치를 찾아갔다.

원년 15승을 거두며 다승 2위에 올랐던 권영호였지만 이후 허리부상으로 구위가 10㎞ 이상 떨어져 있었던 터라 새로운 무기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통역도 없이 손짓으로 묻고 짐작으로 알아들으면서 단 한 번 공을 쥐는 요령과 투구 요령을 배우고 다음날부터 연습투구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미 오래전부터 알아왔던 것처럼 익숙하게 느껴지면서 빠르게 적응해, 돌아올 무렵에는 어느새 자신의 것이 되어 있었다.

사실 익히기 몹시 어려운 구질이었지만 역회전 스크류볼과는 천생연분이었던 것이다.

자신감도 되찾았다. 신무기를 장착한 권영호는 자신도 처음 알았으니 국내 타자들도 당연히 처음 볼 것이고 그러면 실전에서 반드시 통할 것으로 확신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1985년 4월 7일 잠실 MBC와의 경기에 9회 마운드에 올라 한 점차 승리를 지켜내며 수입산 싱커의 위력을 절감했다. 이후 26세이브를 기록하며 통합우승을 견인한 권영호는 마무리 투수라는 새로운 영역의 주인공으로서 아낌없이 진가를 발휘했다.

비록 타자를 압도하는 빠른 볼을 없었지만 권영호는 담력과 책임감이 강해 승부에서 물러섬이 없었고, 빼어난 제구력에다 역회전 스크류볼이라는 새로운 구질을 연마해 절체절명의 순간에 병살타나 삼진으로 위기를 벗어나 어려운 시기에 팀을 구원한 해결사였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마무리를 맡아 아쉽게도 100세이브만을 남긴 채 은퇴했지만 국내 세이브 역사의 선구자로서 진정한 활약과 길을 제시한 업적은 전설로 남을 것이다.

야구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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