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패턴과 배리어 프리

반응이 뜨거웠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뭔가에 꽂히셨던가 봅니다"라고 한 철학교수. "곤히 자는 남자 분을 깨우셨어야죠. 그래야 스토리텔링이 되는데…"라고 말한, 심장을 리모델링하고 삶까지 리모델링한 사람. "혹 가기 싫었던 거 아니에요? 프로이디언 슬립(Freudian slip)…"이라고 한, 다독가에 유식한 후배. "ㅎㅎㅎ"라고 웃음만 달아준 정신과 의사.

30분 전. 내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매양 타는 시각의 그 기차라 생각하고 탔는데, 내 자리에 누가 앉아 자고 있다. 깨우려다 말았다. 설마 내가? 맙소사! 난 반대 방향의 표를 샀던 것이다. 그래도 내가 잘한 점: 1. 타기는 제대로 했다. 2. 그 남자를 깨우지 않았다. 결론: 그래서! 난 아직 괜찮다."

5일 전. '배리어 프리 버전 영화'를 처음 보았다. 배리어프리? 배리어(barrier) 띄우고 프리(free) 라고 읽어 보았다. 아! 장벽 없는! 머리론 알겠는데 몸은 여전히 궁금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영화 제목은 '터치 오브 라이트'. 제4회 대구사회복지영화제의 첫 영화였다.

"자전거를 타고 노란 유채꽃 사이를 달리는 유시앙"처럼 음성 해설이 나오고, 모든 대사의 자막뿐 아니라 '♪ 잔잔한 피아노 소리' 같은 자막도 나왔다. 어떤 부분에선 음성 해설과 자막이 몰입을 방해하였다. 그러나 몸은 '이런 것이 배리어 프리구나. 시각 장애우, 청각 장애우와 같이 영화를 보는구나'라며 전일적으로 받아들였다. 영화는 감동적이었다. 영화 내용보다도 배리어 프리 버전이라는 낯선 형식을 접한 경험이 더 컸다. ('배리어 프리'는 1974년 국제연합 장애인생활환경전문가회의에서 '장벽 없는 건축 설계'(barrier free design)에 관한 보고서가 나오면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한다. 문턱이 없는 집, 문턱이 없는 거리, 엘리베이터가 있는 지하도 등이 그 예이다.)

스마트폰과 나름 스마트한 뇌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나는 왜 오늘 저런 실수를 했을까? 그러나, 바로 그 남자를 깨워 따지듯이 물어보지 않았고, 여느 때처럼 자책하지 않았고, 내가 잘한 점을 찾아냈던 것은 또 왜일까?

프로이디언 슬립('은연중에 자신의 무의식을 드러내는 말이나 행동, 실수'라는 뜻의 이 어려운 말을 후배 덕에 다시 찾아 공부하였다)이라는 말이나, "ㅎㅎㅎ"라는 자음 세 개 등의 댓글 등속을 달았던 사람들은 왜 그랬을까? 그 댓글들과 그 주인들이 딱 맞게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받은 건 또 무엇일까? 배리어 프리, 취지가 참 좋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불편감을 약간 느낀 것이며, 영화 자체보다 그 형식이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건 왜일까?

패턴의 문제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늘 하던 대로 기차표를 끊었(다고 생각했)고, 하던 대로 따지려다가 말았다. 사람들은 내재된 자신의 무늬대로 반응하며 댓글을 달았다. 늘 보던 방식이 아닌 배리어 프리 버전 영화는 내 뇌에 당혹감을 남겼다. 사람들은 사고, 말, 행동에 일정한 패턴을 만든다. 패턴을 형성하면 비슷한 상황에서 깊이 생각해 볼 필요없이, 해답을 바로바로 꺼내 쓸 수 있어서 효율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좋은 패턴도 있겠지만, 뭔가 오류가 있거나 발전이 없는 패턴이어서 바꾸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철학자 김영민은 '연극적 실천'이 그 답이라 한다. 나의 언어로 말하자면, 몸으로, 몸에 새로이 새기는 것이다. 익숙한 패턴대로 해서 실수를 했지만, 익숙한 패턴을 벗었기에 자책 대신 잘한 점을 찾아내는 새로운 패턴을 몸으로 실행해 보았다. 또 '장벽 없는' 영화를 보는 경험을 통해 새로운 문양을 새겼다. 경계와 장벽. 성장을 위해 넘어야겠다면, 우선 그 패턴을 몸으로 넘어 새로이 새겨봄은 어떨까?

김성아/사단법인 더나은세상을위한 공감 이사 drsakim@daum.net

 *패턴: 무늬, 본새, 틀, 문양 등의 우리말이 있지만, 패턴이라고 할 때 몸으로 확 와 닿는 느낌을 살리고 싶어 패턴이라는 말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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