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삶에 질려버린 거죠."
한 도시농업 전문가는 최근 도시농업 열풍이 부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도시농업은 이제 단순한 취미나 농촌에 대한 향수, 정서 안정 등에 머물지 않는다. 치열한 경쟁과 숨 가쁜 변화 속에서 황폐해진 도시를 '힐링'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도시농업은 도심재생과 문화, 오락, 생활 등과 만나면서 도심 곳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조금만 농사에 관심을 두면 누구나 농부가 될 수 있는 시대다.
도시농업 열풍에 지자체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대구시는 한 발 더 나아가 2017년까지 시민의 10%인 25만 명을 도시농부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잡았다. 이를 위해 대한민국도시농업박람회를 유치(9월 개최)하는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매일신문은 건강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대안으로 급부상하는 도시농업에 대해 5차례에 걸쳐 조명해본다.
농업, 도시의 일상이 되다
대구 수성구 만촌동의 한 건물. 거대한 비닐하우스를 고쳐 만든 이 건물은 마치 카페나 꽃집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곳을 운영하는 김성훈 씨는 "우리끼리 생태놀이터 또는 생태농원이라 부른다"고 말했다. 텃밭에는 오이나 가지 등 30여 종의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김 씨는 3개월 전부터 3천㎡ 규모의 농원을 직접 리모델링하고 있다.
아직도 작업이 끝나지 않아 실내는 공구와 나무판이 널브러져 있다. 김 씨는 "가족이나 학생들이 체험을 심심찮게 온다"며 "9월부터 본격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라고 했다.
농업이 도시 생활로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도시 근교에서 주로 만들어지던 텃밭이 어느새 도심 곳곳으로 들어왔다. 장소의 개념이 사라지면서 도심 곳곳으로 번져가는 것.
이와 함께 도시농업을 주제로 하는 사설 생태농장이나 카페, 빈집텃밭 등 새로운 형태로 확장되고 있다.
◆도시농업 생태농원'카페로 진화
김성훈 씨는 9월부터 색다른 방식의 생태교육 운영을 계획하고 있다. 참여자가 건물 뒤편의 텃밭을 활용해 파종부터 수확까지 전 과정을 직접 해보고 강사들이 옆에 항상 대기하면서 지도해주는 프로그램이다. 김 씨는 "채소를 키우는 것이 의외로 손이 많이 가지만 보통 주말농장은 도심에서 멀어 자주 못 가다 보니 채소가 말라죽기 일쑤다. 몇 차례 가고 나면 싫증을 느끼기 쉽다"고 말했다.
김 씨가 운영하는 생태농원은 도심에서 가까운데다 강사가 항상 지도해줘 누구나 쉽게 채소를 키울 수 있다는 것.
또 이 생태농원은 50여 명의 회원을 모집해서 한 달에 두 차례 농원에서 수확한 유기농 채소를 배송해주기도 한다. 김 씨는 "상자텃밭 만들기, 생태탐방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해 이곳 농원을 하나의 생태놀이터로 만들 생각이다"고 했다.
도시농업 카페도 최근 생겨났다. 협동조합 '소셜 살롱'에서 지난 1월 대구 만촌동 교수촌에 200㎡ 규모의 카페를 마련한 것. 이곳에서는 뒤편에 조성된 텃밭과 수경재배를 통해 10여 종의 채소를 직접 키웠고 이를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판매했다.
이를 주도한 대구사회연구소 전충훈 전략사업국장은 "지인들을 중심으로 세미나와 모임을 하면서 음식을 팔았다"며 "특히 비빔밥이 인기가 높았다"고 말했다.
전 국장은 "만촌동 카페는 6월까지 운영했고 가을로 접어드는 9월쯤 중구 북성로에 카페를 새로 마련할 예정"이라고 했다.
중구 대봉동의 한 골목길. 낡은 집 사이로 30㎡ 규모의 조그마한 텃밭이 있다. 2단 형태의 이 텃밭에는 상추와 파, 알타리무 등이 파릇파릇 자라고 있었다. 하지만 이 텃밭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쓰레기가 가득해 악취가 풍기는 공터였다.
도시농업에 관심 있는 대학생 모임인 '도심오아시스팀'에 의해 버려진 땅이 도심 텃밭으로 변신한 것이다. 대학생 김경진(21'여) 씨는 지난해 9월 학교 선배들과 도심오아시스팀을 결성했다.
주택가의 못 쓰는 땅이나 폐가 등을 위주로 텃밭을 조성해 도시를 푸르게 재생하기 위해서다. 도심오아시스팀은 중구 대봉동의 빈집과 공터 몇 군데를 이미 텃밭으로 꾸몄다. 김 씨는 "동사무소 협조를 얻어 주민들을 대상으로 텃밭 조성을 알리고 분양 신청을 받았다"며 "앞으로 호응도를 봐서 다른 지역으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도시농업은 이처럼 주말농장으로 대표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교육이나 도시재생 등의 목적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를 통해 도시농업이 도시인들에게 보편화되고 있다. 전 국장은 "도시농업은 도심을 벗어나 도시 근교에서 행해지는 농사가 아니다"며 "도심에서 이뤄지는 일상으로 변하고 있으며 생산과 유통, 소비 등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도시 곳곳에 부는 텃밭 열풍
도심에서의 농사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텃밭 상자가 활성화되고 관련 기구가 다양하게 나오면서 자투리 공간만 있다면 채소를 키우는 것이 흔한 일이 되고 있다. 동구 방촌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상윤(61) 씨는 옥상에서 채소를 키운다. 매일 아침, 저녁이면 옥상으로 올라가 고추와 상추, 들깨 등의 상태를 확인한다. 김 씨는 하루라도 커가는 채소들을 보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다고 한다. 김 씨는 "시멘트 옥상이지만 다양한 크기의 화분을 놓으니까 웬만한 텃밭 못지않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부터 꾸준히 옥상에서 채소를 직접 길러 먹거나 이웃에 나눠주기도 한다.
김 씨는 "과거보다 건물도 시원해진 것 같고 무엇보다 수확의 기쁨이 크다"고 했다.
2011년 개교한 달서구 월암초교 학생들은 각자 하나씩의 식물을 키우고 있다. 800명가량의 전교생이 각자 1개씩 상자 화분을 갖고 있어 봄부터 겨울까지 계절 채소나 작물을 심는다. 보통 4~5월 상추나 쑥갓, 5~9월 목화, 6~9월 수수, 9~10월 배추나 무, 11~3월 보리나 밀 등을 직접 파종하고 수확체험도 한다. 한 학생이 보통 5종의 작물을 가꾸는 셈이다.
학부모들도 식물재배 동아리를 결성해 교내의 빈 공간을 텃밭으로 조성해 채소를 키우고 있다. 이금숙 교감은 "아이들의 인성교육 차원에서 농사를 접목해 운영하고 있는데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월암초교의 '팜스쿨'은 전국적인 모범 사례가 되면서 지난해 전국 생활원예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대학 캠퍼스도 예외가 아니다. 경북대 농대 2호관 앞에는 165㎡ 규모의 텃밭이 마련돼 있다. 학생들은 이곳을 희망토 마을이라 부른다. 희망토 마을은 지난해부터 운영되고 있으며 올해 초 3기생들을 모집했다. 이들은 전국의 대학생들과 텃밭동아리 모임을 하고 있다.
대구시는 텃밭 열풍에 가속도를 붙이려고 대대적인 도시농장 만들기에 나섰다. 이미 수성구 팔현마을 '공영도시농업 농장'과 달성 화원 본리마을의 마비정 등 주말농장을 조성해 운영하고 있다. 특히 팔현마을의 주말농장은 호응도가 높다. 지난 3월 8천여㎡의 주말농장을 345가구에 분양해 주말이면 텃밭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렇게 되자 마을 앞 길거리에는 채소나 과일을 사고파는 진풍경도 벌어지고 있다.
대구시 권학기 농산유통과장은 "옥상농원이나 아파트를 대상으로 상자텃밭 조성지를 늘리고 팜스쿨도 지원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도시농업을 확대할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2017년까지 25만 명의 시민이 도시농업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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