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과 거의 같은 의미의 '지방'은 근대 일본이 지어낸 한자 조어로서 1882년 수신사로 일본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온 박영효 등의 글에 나타난 후 1894년 갑오경장 이후 법령과 정부 공문서 등에 쓰이다가 1910년부터 조선총독부를 거치면서 우리에게 익숙해진 말이다. 그때 없던 지방자치단체가 설치되어 활동하고 있으며 인구와 산업 등의 성쇠로 인해 우리 사회가 크게 변모한 오늘날 지방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서로 다른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첫째는 서울이나 수도권 밖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지방이다. 정치'행정'경제'문화 등 온갖 기능이 서울에 너무 집중되었다고 하여 1970년대 이후 역대 정부들은 수도권에 소재한 국가 행정기관 등의 일부를 비수도권의 지방으로 이전하여 분산하는 정책을 추진해 왔다. 유신의 박정희정부가 입안하고 전두환'노태우'김영삼정부가 줄곧 일관성 있게 시행한 정부과천청사와 노태우정부가 계획을 세우고 김영삼'김대중정부가 함께 추진한 정부대전청사가 지방이전의 좋은 사례다. 이렇게 하여 행정 각부 등의 중앙행정기관은 종전의 정부중앙청사에서 이를 포함한 세 청사로 크게 분산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국가 또는 중앙정부의 상대로 일컫는 지방자치단체로서의 지방이다. 국가가 갖고 있던 행정권한 일부를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하기 시작한 것은 5'16 군사쿠데타에 의해 1961년 해산된 지방의회를 30년 만인 1991년에 다시 설치한 때다. 당시 노태우정부는 국무총리 훈령으로 총무처에 설치한 지방이양합동심의회를 중심으로 중앙행정기관이 갖고 있던 사무권한 중의 일부를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하는 작업을 벌였던 것인데 이런 지방이양은 1993년 이후 김영삼정부에도 그대로 계승되었다.
뒤이은 김대중정부는 일본과 영국 등의 움직임에 자극을 받아 이 합동심의회를 대체하는 것으로 1999년 법률기구인 지방이양추진위원회를 설치해 중앙정부 행정권한의 지방이양을 법률의 규정에 따라 더욱 견고히 이어갔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지방에는 앞의 첫째와는 달리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등의 지방자치단체도 당연히 포함된다.
2003년 이후 노무현정부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침체해 있던 첫째의 지방에 수도권 등의 반발에도 국가균형발전특별법과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통해 새로운 유형의 사업예산을 도입하여 그 원기를 북돋웠다. 이 과정에서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의 대대적인 지방이전계획도 더불어 구체화되었다. 그리고 둘째의 지방에도 행정 각부 등의 저항을 누르고 지방분권특별법과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를 통해 중앙행정기관이 갖고 있던 권한과 재정을 지방자치단체와 나누어 가지는 지방분권의 추진에 앞장섰다.
물론 이러한 성과에 대해서도 2002년의 대통령선거 때 노무현 후보가 내걸었던 공약에 비추어보면 불충분하였다고 노무현정부가 거둔 지방분산과 지방분권에 비판적인 사람도 더러 있다. 하지만, 이들도 노무현정부가 그때까지의 어느 정부보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의미의 지방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것은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명박정부는 첫째의 지방에 관해 2009년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개정해 위원회를 지역발전위원회로 개칭하며 그 심의사항에서 '균형'을 모두 삭제함으로써 노무현정부가 지방분산을 통해 추진한 서울과 지방의 균형에서 애써 벗어났다. 지역발전위원회로 바뀐 뒤 위원회의 규모와 위상은 위축되었으며 공공기관 지방이전의 진척도 지지부진해졌다. 그리고 둘째의 지방에 관해서도 종전의 위원회를 대체한 지방분권촉진위원회가 지난 5년간 일궈낸 성과는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박근혜정부는 지난 6월 19일 제3기 지역발전위원회를 구성한 데 이어 지방분권촉진위원회 등을 대체하는 제1기 지방자치발전위원회를 곧 선보일 예정이다. 지난 5년간의 활동을 성찰하며 전자는 비수도권의 지방에 방점을 찍어 왕년의 국가균형발전위원회처럼 왕성하게 활동하고 후자는 지방자치에 필요한 권한과 재정의 지방분권 등에 충실하면 좋겠다. 박근혜정부가 다시 이들 두 지방에 활력을 불어넣길 기대한다.
강재호/부산대학교 행정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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