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에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부품이 납품되고, 안전사고가 잇따라 터지면서 우리나라 원전 23기 가운데 17기가 몰려 있는 영남권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주민들의 불안을 불식시키려는 듯, 한국수력원자력의 한 관계자는 최근 모 학술대회에 참석해 "원자력에 대한 불안감은 실제 위험도보다 국민들의 체감 위험도가 지나치게 높다"고 발표했다. 원자력발전은 안전하지만 국민들은 원자력에 대해 터무니없이 크게 불안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잇따라 터져 나오는 한수원의 각종 비리와 사건'사고 등을 보면서 이 관계자의 낙관처럼 원전이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만은 없다. 특히 최근 원전 납품 부품에 대한 시험성적서가 위조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일련의 원전 안전사고가 부품 문제와 관련된 것은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거대한 핵 벨트 '영남권'
한수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고리 1~4호기'신고리 1~2호기(부산 기장), 한빛 1~6호기(전남 영광), 월성 1~4호기'신월성 1~2호기(경북 경주), 한울 1~6호기(경북 울진) 등 총 23기의 원자력발전기가 있다. 이 중 17기가 경주와 울진, 고리 등 영남권에 몰려 있다. 특히 경주는 한수원 본사 이전과 함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이 추진되고 있고, 영덕은 신규 원자력발전소(천지원자력발전소) 유치, 울진은 신규 원전 건설 등 경주-영덕-울진이 대형 원전 벨트로 형성돼 있다.
김관용 경상북도지사는 "국내 원전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영남은 명실공히 국가에너지 생산을 책임지고 있는 지역이다. 하지만 원자력 관련 17개 안전'연구기관 모두 다른 지역에 있어 정책 연계 및 관리감독에 대한 효율성이 크게 떨어진다"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원전 지역에 안전'연구'산업 등을 융합하는 원자력 클러스터 국책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비 13조5천억원을 들인 거대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원전에 대한 안전성이 한층 보장되고 경북의 경쟁력도 크게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불안한 원전, 위조부품 납품 탓?
최근 원전 3곳이 고장으로 가동을 멈추면서 전국이 '블랙아웃' 공포에 시달리는 등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원전 부품의 시험성적서가 위조됐다는 국정감사 결과가 나오면서 주민들이 '위조부품과 원전고장'을 연관시키며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작은 허점이 자칫 대형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 원전설비의 특성인데,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부품이 대거 원전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에 원전가동 지역 주민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제품과 원자로 안전은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설명했지만, 시민단체 등은 자주 발생하는 원전고장이 엉터리 부품 납품과 연관이 있는 게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한수원은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부품 대부분이 원자로의 안전 및 방사능과 직접 관련이 없는 2차 계통 설비에 들어갔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경주를 비롯한 원전 가동 지역에서 고장사고가 잇따르고 있어 부품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오영석 교수는 "원자력발전소는 약간의 착오만 있어도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안전한 부품이 들어가도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위조된 부품이 들어갔다고 하면 원자로 가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이 밖에도 최근 경주 월성원전 4호기에서 지난 2월에 이어 냉각수 유출 사고가 재발하는 등 매년 원전을 둘러싼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주민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울진원전민간환경감시기구 한 관계자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국내 원전 정밀안전진단이 진행됐다. 하지만 고장 등으로 인한 가동중단과 같은 사고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며 "원전이 사고 때마다 자세한 원인 등을 공개하지 않고 원전이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다고만 주장한다. 원전부품이 곧 안전이라는 생각으로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관리돼야 한다"고 했다.
◆원전운영의 원칙은 '안전'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전문가들은 원전 클러스터 사업 등에 앞서 신뢰 프로세스 구축이 우선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수원에 따르면 원전 건설 비용은 전체 전력설비 비용 대비 24%에 불과하고, 가격대비 발전량 역시 91%에 달해 발전방법 가운데 가장 효율이 높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보듯 원전운영에 대한 위험부담은 단순히 효율만으로 따질 수 없는 수치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땅이 비좁고 원전이 특정지역에 대거 밀집해 있는 경우는 안전사고 하나가 대한민국을 통째로 마비시킬 수 있는 위력을 가진다. 원전정책에 있어 '안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이은철 위원장은 "원자력은 가장 안전한 설비를 자랑하는 발전이다. 하지만 그것은 가장 위험한 것을 다룬다는 방증임을 명심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고리 1호기 은폐사건, 납품비리, 품질검증서 위조 등 원전 안전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악화돼 있다"며 "앞으로 기기의 고장이력, 사고고장 정보, 운전 경험 등 모든 상황을 데이터베이스화해 국민 모두가 원하면 언제든지 열람할 수 있도록 투명도를 높여야 한다. 이를 통해 업계 내의 유착관계 등이 모두 근절되고 원전 종사자들의 책임감이 높아진다면 안전 확보는 물론 국민들과의 신뢰 회복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경주'이채수기자 cslee@msnet.co.kr
박승혁기자 psh@msnet.co.kr
신동우기자 sdw@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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