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북人세계In] <7>권석하 영국 런던 보라여행사 대표

"봉사는 나의 힘" 런던 한인타운의 '큰형'

※권석하 씨는 경북 봉화의 닭실마을에서 안동 권씨 집안 3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교육 공직자였던 부친을 따라 점촌 청도 안동 영주 등지를 옮겨 다니며 초등학교를 마쳤다. 영주에서 중학교를,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영남대 무역학과로 진학했다. 1982년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영국으로 건너가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런던에서 보라여행사, 문화
※권석하 씨는 경북 봉화의 닭실마을에서 안동 권씨 집안 3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교육 공직자였던 부친을 따라 점촌 청도 안동 영주 등지를 옮겨 다니며 초등학교를 마쳤다. 영주에서 중학교를,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영남대 무역학과로 진학했다. 1982년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영국으로 건너가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런던에서 보라여행사, 문화'도서'미디어 저작권 중개 업무를 하는 IM컨설팅, 한식당, 일식당 등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 시사주간지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쓰고 있으며, '뚜르 드 몽드' 등 잡지의 편집위원 일도 하고 있다.

'비 갠 저편 들판 건너 숲 뒤에 둥그런 무지개가 뻗쳤다. 그 아름다움에 반해 소년은 결심을 한다. 저 무지개를 가져다가 뜰 안에 갖다 놓겠다고. 소년은 길을 떠난다. 하지만 소년이 다가갈수록 무지개는 저편으로 썩 물러가 있다. 소년은 몸과 마음이 모두 피곤하였다. 그러나 눈앞에 찬란히 빛나는 무지개를 바라보며 소년은 다시 용기를 내어 무지개를 향하여 걸었다….'

영국 런던의 기업인 권석하(61) 보라여행사 대표를 만나며 문득 김동인의 동화 '무지개'가 떠올랐다. 잡힐 듯 잡힐 듯 무지개를 잡을 수는 없지만 그 기대와 희망, 용기를 포기하지 않는 소년. 권석하 씨는 지금도 그 무지개를, 꿈을 좇는 소년이다. 그의 눈동자는 예순을 넘긴 나이에도 무지개를 찾는 소년의 그것처럼 맑았다.

◆열정적인 삶, 60대 청년

"하하하. 제가 성공한 사업가라고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큰돈을 번 것도 아니고 높은 지위를 얻은 사람도 아닙니다. 조그만 구멍가게 몇 개 하고 있을 뿐인 걸요. 하지만 꿈을 이룬 것으로 말한다면 조금은 성공한 것도 같습니다. 제 어릴 적 꿈이 세계 곳곳을 누비며 다니는 마도로스였거든요."

여행사를 운영하는 그는 관광 가이드이기도 하다. 그것도 영국인들조차 따기 힘들다는 영국 국가공인관광가이드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정치, 역사, 문화, 건축 등 모든 방면에 해박한 지식을 가져야 함은 물론이다. 생업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도전하고 성취한 데 더 뜻이 있었다.

자원봉사에도 열심이다. 런던의 한인 지역인 뉴 몰든에서 '빅팀 서포트'(victim support)라는 범죄 피해자 후원 일을 하며 동네의 '큰형' 역할을 하고 있다.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최고령 자원봉사자로 지난겨울을 고국에서 보내기도 했다. 영국선수단과 함께 고국을 찾아 지적장애인 선수들의 손과 발로서 최선을 다했다.

그런가 하면 문화인류학 분야에도 해박한 지식을 가져 '영국인 발견'(Watching the English/케이트 폭스 저/학고재/2010년)이라는 책을 직접 번역하기도 했다.

◆도전과 시련, 런던과 러시아

권 대표는 지금은 여행업을 하고 있지만 엄청나게 큰 사업가가 될 '뻔'도 했다. 실제 많은 돈을 벌어보기도 했다. 러시아(당시 소련)에서 벌인 사업이 들판에 붙은 불처럼 일어나던 시기가 있었다.

권 대표의 첫 직장은 국내 굴지의 모피회사였다. 상사원으로 영국에 주재하던 그에게 러시아 근무 명령이 떨어졌고, 그는 그곳에서 많은 정'재계 유력자들을 사귀게 된다. 그리고 1년 후 그들과 함께 러시아에서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한다. 불혹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이다. 또 별도로 흑해 연안의 한 도시에 가죽공장을 세워 종업원 200여 명의 탄탄한 기업으로 키우기도 한다. 1990년대 말 한국의 IMF 사태와 함께 찾아온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모든 것을 빼앗겼지만 그의 10여 년을 불태운 열정의 시기였다.

◆나를 키워준 곳, 영남대

그는 자신의 성공에 밑거름이 되어준 것은 무엇보다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사람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방법은 남의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해주는 것이다. 한번 맺은 인연은 끝까지 이어가는 것도 그만의 강점이다.

"남의 얘기를 잘 들으려고 늘 노력합니다. 사업 파트너뿐만 아니라 직원들과도 대화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진심은 통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연들이 결국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소중한 자산이 된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 관리의 노하우는 대부분 그의 대학시절 경험에서 나왔다. 영남대에서 보낸 4년, 그는 대학신문사와 산악회, 음악감상 동아리인 '유터피' 등을 종횡무진했다. 특히 신문사에서 기자, 부장, 국장 등 생활을 하면서 조직사회를 미리 경험할 수 있었다.

"신문사에서 배웠던 업무처리, 조직관리 노하우 등은 회사생활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선배들이 원하는 업무를 생각하고, 나중엔 간부로서 했던 업무를 생각해보면 회사생활에서도 거의 비슷한 답을 낼 수 있었죠. 그렇게 조직 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새로운 무지개를 찾아

그는 연내에 자신의 책 두 권을 내려고 계획 중이다. 국내 시사주간지에 실었던 50, 60편의 글들을 모아 한 권을, 여행잡지에 썼던 글들을 모아 또 한 권을 계획하고 있다. 국내를 오가며 자신이 살아온 경험을 젊은 상사원이나 지자체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들려주는 강연 일도 더 많이 하려고 한다.

"저의 경험이 남들과 비교해 그리 탁월한 것이라 할 순 없겠지만, 우리나라의 세계무대 진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열심히 해보고 싶습니다. 우리 외교관이나 지자체 공무원, 상사원들이 영국 현지에 대해 좀 더 알고 가면 그만큼 업무가 원활해지지 않을까요."

그러고 보면 그의 눈앞에는 이미 또 다른 무지개가 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그는 영원히 소년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를 만난 다음 날. 기차를 타고 교외를 달리다 문득 바라본 차창 밖 먼 하늘에 영롱한 무지개가 둥실 떠 있었다.

영국 런던에서 글'사진 홍헌득기자 duckdam@msnet.co.kr

※권석하 씨는

경북 봉화의 닭실마을에서 안동 권씨 집안 3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교육 공직자였던 부친을 따라 점촌 청도 안동 영주 등지를 옮겨 다니며 초등학교를 마쳤다. 영주에서 중학교를,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영남대 무역학과로 진학했다. 1982년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영국으로 건너가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런던에서 보라여행사, 문화'도서'미디어 저작권 중개 업무를 하는 IM컨설팅, 한식당, 일식당 등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 시사주간지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쓰고 있으며, '뚜르 드 몽드' 등 잡지의 편집위원 일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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