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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사랑] 척추·발목 골절로 생계 끊긴 박형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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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는 두 딸 위해 목발이라도 짚고 싶어…"

박형기(가명
박형기(가명'42) 씨가 힘겹게 바닥을 짚고 일어서고 있다. 척추와 발목을 심하게 다친 박 씨는 두 다리로 딛고 일어선 것만 해도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에 마음은 주저앉은 상태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방 안에 깔린 매트리스에 힘겹게 앉으며 박형기(가명'42) 씨는 "5분도 서 있을 수 없다"라고 했다. 6m가 넘는 축대에서 떨어지면서 척추와 발목 등을 다친 박 씨는 걷는 것도 힘겨워 보였다.

"두 발을 모두 다치다 보니 한쪽 다리는 괜찮아야 사용할 수 있는 목발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다친 뒤 꼼짝도 못하고 병원에 누워 있다가 두 달 만에 두 발을 디디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뒤로 이를 악물고 걸음연습을 해 지금 이 정도라도 걸을 수 있게 됐습니다."

◆"병원비를 못 낼 것 같은데…"

박 씨는 지난 5월 경산의 한 원룸 공사장에서 추락 사고를 당했다. 아내와 사별 후 생계를 꾸리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당한 사고였다.

"'일거리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원룸 공사장에 갔었는데, 일거리를 구하지 못하고 공사장을 돌아서 나오던 중 그만 발을 잘못 디뎌 떨어졌습니다. 떨어질 때 높이가 한 6m쯤 됐을 거예요. 떨어질 때 머리를 보호한다고 쪼그린 자세로 콘크리트 바닥에 착지하면서 발목과 척추를 다친 거죠."

박 씨는 지나가던 사람에게 발견돼 대구의 한 종합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에서는 발목의 뼈가 세 조각으로 쪼개졌고 요추 1, 2번이 충격으로 뼈끼리 부딪치면서 손상됐다. 팔꿈치 관절도 크게 다쳤다. 당장 수술이 필요했다.

그러나 박 씨는 선뜻 수술을 받을 수 없었다. 수술비를 낼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병원 의료진이 "수술 받고 빨리 나아 병원비를 갚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며 박 씨를 설득한 뒤에야 박 씨는 겨우 수술을 결심했다.

수술을 받기는 했지만 역시 병원비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모아둔 돈은 사별한 아내의 치료비와 장례비에 모두 써 버렸고, 박 씨의 두 딸 중 큰딸은 구미의 한 공장에서 일하다가 그만둔 상태였다. 작은딸은 고교 2학년이었기 때문에 돈을 벌 사람이 없었다. 입원비라도 줄여야 하겠다는 마음에 빨리 퇴원하고 싶었지만, 병원비를 내지 못하다 보니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주민등록 없이 산 이유

박 씨는 14년 전 첫 번째 아내와 이혼했다. 당시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의류 도'소매상을 하던 박 씨는 외환위기(IMF)를 맞으면서 장사가 잘 안돼 빚을 지기 시작했다. 빚이 많을 때는 4억원 가까이나 됐었다. 그러자 아내와의 다툼도 잦고, 심해졌고 결국 헤어졌다. 이후 박 씨는 돈을 벌기 위해 두 딸을 부모에게 맡기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했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막노동과 옷 가게에 물건을 대신 떼어다 주는 등의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그러던 중 2007년 대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두 번째 아내를 만났다. 처음 만나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두 사람은 함께 식당을 운영하며 살기 시작했다. 서울에 있던 두 딸도 데려왔다.

"이때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어요. 제가 외동아들이라 두 딸을 맡길 데도 없었고요. '이제는 정착해야겠다' 싶어 두 딸도 대구로 데려왔는데, 다행히 새로 만난 아내와도 친하게 지내더군요. 그래서 '같이 살아도 되겠다'고 확신을 했습니다."

박 씨는 그 즈음에 주민등록이 '거주자 불명'으로 말소됐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하지만, 바로 주민등록을 회복하지는 않았다. 아직 갚지 못한 빚 때문이었다. 만약 박 씨가 주민등록을 회복하면 빚쟁이들이 대구까지 쫓아와 괴롭힐 것이고 새로 만난 아내도 힘들어할 것이 뻔했다. 어쩔 수 없이 두 번째 아내와는 혼인신고 없이 동거 상태로 살아야 했다.

박 씨는 지난해 드디어 갚을 수 있는 개인 빚을 모두 갚았다. 빚쟁이에게 쫓길 염려가 없어지자 박 씨는 주민등록도 회복하고 혼인신고도 하려 했다. 하지만 박 씨에게 또 다른 비극이 찾아왔다. 두 번째 아내가 뇌출혈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지난해 겨울에 갑자기 쓰러지더니 석 달을 앓다가 결국 저세상으로 갔어요. 3월에 장례를 치르고 4월 말까지 멍하게 지냈습니다. 이제 아내와 함께 좀 행복하게 한번 잘 살아보려고 했는데…."

◆집에서도 나가야 할 판

박 씨가 내야 하는 병원비는 수술비와 입원비 모두 합쳐 1천700만원 정도다. 병원비가 이렇게까지 많이 나온 데에는 주민등록 말소로 건강보험 자격이 상실됐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박 씨는 이달 9일 주민등록을 회복하고 건강보험 자격도 다시 얻어 건강보험과 구청의 긴급의료지원비 300만원으로 병원비 일부는 해결했다. 하지만 600만원이나 되는 건강보험 체납분은 해결이 막막하다. 체납된 보험료를 내지 못하면 남은 1천400만원의 병원비는 고스란히 박 씨의 몫이다.

주민등록 회복 전 두 딸을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등록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두 딸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고 있지만 모두 합쳐봐야 100만원 안팎이라 건강보험료를 해결하기는커녕 생활비로 쓰기에도 급급한 실정이다.

더 큰 문제는 다음 달이면 지금 사는 집에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박 씨는 두 번째 아내가 죽기 전 사업자금 마련을 위해 살던 집을 팔고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35만원짜리 원룸으로 이사했다. 두 딸에게 집을 얻어주고 나서 남은 돈으로 박 씨는 아내와 함께 옷 장사를 할 생각이었다. 큰딸이 돈을 벌고 있던 때여서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다시 모여 살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아내와 사별하고, 박 씨 자신도 크게 다치고 큰딸도 다니던 공장을 그만두면서 월세조차 낼 수 없는 형편이 된 것이다.

박 씨의 집에 가스가 끊긴 지 벌써 석 달째다. 전기료도 못 내고 있어 다음 주면 전기도 끊길지 모른다. 박 씨는 자기 때문에 힘들게 사는 두 딸을 볼 때마다 가슴이 무너진다. 둘째 딸은 다니던 학교도 자퇴하고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들었다. 다친 발목과 척추 때문에 아장아장 걸을 수밖에 없는 박 씨는 앞날이 자신의 더딘 걸음만큼 답답하다.

"적어도 1년 이상은 재활치료를 받아야 한데요. 수술했던 병원의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일단 퇴원하고 다른 의원을 알아보고 있어요. 하지만 1년 동안 제가 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두 딸에게 짐만 되는 것 같아 살아있는 것 자체가 미안할 따름입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매일신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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