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최병호가 오케레코드사 이외 다른 곳에서 발표한 음반으로는 1943년 태평레코드사에서 일제강점기 말 이른바 '개병가'(皆兵歌)란 장르로 낸 '우리는 제국군인'(김정일 작사'김용환 작곡)이란 가요가 하나 있습니다. 물론 자신의 자발적 선택은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이 되지만 이 노래는 취입하지 말았어야 할 반민족적인 군국가요였습니다.
가수로서 인기가 높았던 1942년 최병호는 오케레코드사 선배 송달협(宋達協)의 누이동생을 아내로 맞이해서 혼례식을 올렸습니다. 1943년이 저물어갈 무렵 최병호는 김해송(金海松, 1911∼1950)과 함께 약초가극단(若草歌劇團), 조선악극단(朝鮮樂劇團)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었지요. 기예증(技藝證)이 있으면 그나마 비교적 안전한 신분이 보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병호는 징용대상자로 소집되어 일본 규슈지방의 고쿠라 탄광으로 끌려갔습니다. 죽음터와 같은 그곳에서의 고통을 견뎌내지 못하고 최병호는 일부러 미치광이 짓을 계속했는데, 이 때문에 극적으로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돌아와서 그는 다시 조선악극단 멤버로 전국을 순회공연 다니던 중 8'15해방을 맞이했습니다. 평소 절친하던 김해송이 K.P.K악단을 결성하자 단원으로 활동했는데, 서울에서는 국도극장이 주된 무대였고, 박시춘악단과 무궁화악극단에도 출연했습니다.
1947년에는 영화 '그들의 행복' 주제가를 장세정(張世貞, 1921∼2003)과 함께 불러서 음반을 냈고, 근검절약해서 모은 출연료로 서울 종로구 봉익동에 아담한 주택을 장만했습니다. 그러나 돌연히 발발한 한국전쟁은 최병호의 모든 삶을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했습니다. 그가 살던 주택은 9'28 수복 때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완전 빈털터리가 된 최병호는 생존을 위해 방송국의 기술직원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그 덕분으로 한강교가 폭파되기 직전에 부산으로 피란길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한강 다리를 넘으며 그는 주변의 혼란한 참상에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부산 피란시절에는 방송국 뒷마당 공터에 판잣집을 짓고, 가족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전쟁의 와중에 그는 해상이동방송국, 대구방송국 출력증강 등을 위해 지역을 옮겨 다니며 바쁘게 일을 했었고, 때로는 군예대(軍藝隊) 소속으로 병사들을 위한 위문공연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과거 인기 높았던 가수로서의 명성은 급격히 시들었고, 이제는 알아주는 사람조차 드물어졌습니다. 이 무렵 목포 출신의 코미디언 금년동(琴年童)과 촌극(寸劇)으로 무대에 올라 약간의 대중적 인기를 회복하면서 이은관, 장소팔, 고춘자 등의 만담 무대에 보조역으로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최병호는 피란생활 중 한강 다리를 넘을 때 느꼈던 민족의 참담한 현실과 수난의 역사를 언제나 기억 속에서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틈날 때마다 피란 내려올 때 한강 주변의 보았던 그 참담한 광경을 되새기며 마침내 한 편의 가요작품을 작사, 작곡해서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최병호는 이 가요작품을 1952년 대구문화극장에서 가수 심연옥(沈蓮玉, 1929∼ )을 통해 공군경음악단 반주로 첫 발표를 하게 되는데, 이 노래가 바로 '한 많은 강가에 늘어진 버들가지는∼'으로 시작되는 그 유명한 '한강'(漢江)입니다.
하지만 최병호의 살림은 점점 더 곤궁해져서 이곳저곳 셋방살이로 전전하다가 나이 마흔이 되던 1955년에는 서울 종로구 충신동 언덕배기 달동네에 판잣집을 짓고 아내와 8남매를 부양하게 됩니다.
1976년 최병호는 회갑기념으로 '최병호 걸작음반'을 LP독집 앨범으로 발매하게 됩니다. 만년의 최병호는 원로방송인 모임에 가끔 나타나서 옛 동료들과 어울리곤 했습니다. 불후의 가요 '아주까리 등불' 한 곡으로 일제강점기 말 실의에 빠진 우리 민족을 위로하고 격려했던 가수 최병호! 그는 중년까지 가난했으나 노후엔 효성스런 자녀들과 더불어 행복한 말년을 보내다가 1994년 향년 79세로 눈을 감았습니다.
영남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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