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국고 보조사업 정비해야

정부조직법에 따라 재정정책을 수립·조정하고 예산을 편성'집행하는 기획재정부가 10월부터 12월까지의 4/4분기 예산 가운데 출장비나 업무추진비 등은 15% 삭감하고 아직 집행하지 않은 사업비는 우선순위를 정해 예산을 절감하라는 내용의 지침을 최근에 모든 중앙행정기관에 통보했다고 한다. 예산의 조기 집행을 독려해 오던 정부가 느닷없이 예산의 절감을 호령하고 있는데, 올해 정부 예산에 216조4천억원으로 잡혀 있는 국세 수입이 많게는 10조원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의 형편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국회는 2012년 대통령선거 때 박근혜 후보가 내걸었던 공약을 존중해 지난해 12월 31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영유아에 대한 보육을 무상으로 하되 그 내용 및 범위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는 내용을 담은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올해 3월에 시행한 개정 영유아보육법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영유아의 보육료와 가정에서 양육하는 영유아의 양육수당을 부분적으로 인상하며 수혜 대상을 한꺼번에 크게 확대하는 바람에 지방자치단체의 지출이 예기치 않게 급증했는데도 정부는 지금까지 이에 필요한 재원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데 주저하고 있다.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사업의 범위와 국고 보조율을 정하고 있는 대통령령인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영유아보육사업 지원은 현재 개정 영유아보육법의 시행 이전과 다름 없이 '서울 20, 지방 50'으로 되어 있다. 나머지 사업비는 시·도와 시·군·구가 분담하고 있다. 그래서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등에서는 올해 봄부터 '보육 대란'이라 울부짖으며 보조율을 서울 40, 지방 70으로 인상할 것을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이처럼 지방자치단체들이 영유아보육비의 폭등에 허덕이고 있는 마당에 정부는 취득세의 세율을 낮추겠다고 한다. 지출은 잔뜩 늘려 놓고 수입은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엊그제 영유아보육사업의 보조율을 올리고 지방소비세의 세액을 확대하는 등의 보전 방안을 내놓았는데 이것으로는 지방자치단체가 주장한 보전 규모에 턱없이 모자란다. 그래서 당장 국고 보조사업의 정비에 나설 것을 정부에 제안한다.

영유아보육사업에서 보는 것처럼 정부가 정해 지방자치단체에 국고보조금을 교부하며 조성하는 국고 보조사업은 2005년에 크게 정비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2004년도 당시 533개 보조사업 중에서 359개만 정부에 남기고 나머지 사업은 그 재원과 함께 지방자치단체로 넘겼다. 이때 이전된 재원은 보조사업 때처럼 정부에 의해 용도가 하나하나 특정되지 않고 지방자치단체에서 비교적 자율적으로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보조사업은 이명박정부 때 지방분권의 조류를 거스르며 폭증해 2013년도 예산에서는 985개에 이르렀다. 국고보조금도 2004년도 12조5천억원에서 2013년도 33조5천억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러나 평균 보조율은 2004년도 66.2%에서 2013년도 60.8%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국고 보조사업에서 지방자치단체의 부담이 가중된 것이다.

국고 보조사업에는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이 작용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이는 지방재정에 큰 짐이 되어 있다. 게다가 보조율이 법정되어 있는 것은 112개 사업뿐이다. 나머지 보조사업과 보조율은 정부가 편성해 국회에서 심의·확정하는 정부 예산으로 정해진다.

내셔널 미니멈이라고 누구나 공감하는 것은 국고 보조사업으로 법정해 보조율을 올리면서라도 존치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업은 냉혹한 재정 사정을 감안해 대대적으로 정비하자.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할 수 있는 사업은 그 재원을 국세에서 지방세로의 세원 이양을 통해 보장하면서 시·도나 시·군·자치구로 넘겨 이들이 스스로 결정해 수행도록 하자. 또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은 사업 자체를 폐지해야 마땅하다.

방만한 국고 보조사업의 정비는 국민과 주민의 부담을 늘리지 않으면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살림살이를 보다 건실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성과 자율성도 아울러 높이는 일석이조의 길이다.

강재호<부산대 행정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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