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SNS 올린 사진이랑 똑같이 생겼네요"

IT가 만든 맞선·소개팅 신풍속도

결혼은 대다수 혼인적령기 선남선녀에게 여전히 지상 최대의 과제다. SNS 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맞선
결혼은 대다수 혼인적령기 선남선녀에게 여전히 지상 최대의 과제다. SNS 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맞선'소개팅 이전에도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쉽게 입수할 수 있게 됐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 9월 결혼을 연기하거나 포기하는 사회적 추세가 지속된다면 현재 20대 초반 남녀 5명 중 1명은 평생 미혼으로 남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2010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당시의 연령별 혼인이행률을 현재 24세 남성'여성에게 적용할 경우 20년 후 각각 23.8%, 18.9%가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란 추산이다. 초혼 연령이 급격히 높아진데다 결혼을 아예 포기해 버리는 '적극적 혼인 포기자'의 증가가 원인이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는 대다수 혼인적령기 선남선녀에게 여전히 가장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다. 커피숍들은 맞선'소개팅을 통해 짝을 찾아 나선 이들로 넘쳐나고, 웨딩산업의 성장세도 멈출 줄 모른다. 다만 만남의 트렌드가 달라지고 있을 뿐이다.

◆동네 커피숍이 맞선 명당

결혼 관련 업계 관계자들이 꼽는 가장 큰 변화는 만남의 장소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맞선이라고 하면 호텔부터 떠올리기 마련이었다. 일부 계층만 호텔을 이용할 때라 프라이버시와 '품위'가 어느 정도 보장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동네 커피숍에서 만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결혼정보회사 '닥스클럽'이 지난해 미혼남녀들을 대상으로 맞선 장소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60.3%가 집 근처 커피숍에서 처음 만난다고 답했다. 프랜차이즈 커피숍(15.0%), 호텔 커피숍(11.7%), 레스토랑(9.3%)을 압도적인 차이로 따돌린 것이다.

대구에서는 남구 앞산 카페골목, 수성구 수성못 일대, 동구 팔공산순환도로 주변에 있는 커피숍들이 맞선 장소로 인기다.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크게 시끄럽지 않으면서도 창밖 조망 등 분위기가 뛰어난 곳들이 많다. 최근 맞선과 소개팅을 10여 차례 봤다는 직장인 김희정(가명'30'여) 씨는 "주로 접근성과 느낌이 좋은 집 근처 커피숍으로 만남 장소를 정하곤 한다"며 "호텔은 부담스러워 거의 가지 않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재혼에 나서는 이들은 초혼과는 다소 다른 경향을 보인다. 여전히 호텔 커피숍을 맞선 장소로 선호한다는 것이다. 재혼 만남의 경우 대부분 40대 이상이라 젊은이들이 북적이는 곳을 꺼리는 것으로 풀이된다. 예전부터 맞선 장소로 유명했던 대구 그랜드호텔의 경우 주말에는 재혼 만남이 최소 10쌍 이상 이뤄지고 있다. 이 호텔 마케팅 관계자는 "토요일은 오후 2시부터, 일요일은 정오부터 맞선 손님이 많은데 선을 보러 온 커플은 첫눈에도 티가 난다"며 "연세 지긋하신 분들의 '황혼 만남'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배필을 찾으러 나온 이들의 패션 스타일은 여전히 정장이 절대다수다. 여성은 단정한 원피스나 세미 정장, 남성은 비즈니스 캐주얼이 보편적이다. 커피 값 등을 남성들이 부담하는 것도 달라지지 않은 문화다. 하지만 자녀의 선 자리에 따라나서는 부모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랜드호텔 커피숍 관계자는 "맞선에 어른들이 배석하지 않는 풍속은 4, 5년 전부터 관례화된 것 같다"며 "젊은 남녀만 만나서인지 맞선 매너는 예전보다 못해진 것 같다"고 했다. 첫인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아예 음료를 주문하지 않고 30분도 안 돼 일어서거나 입을 다문 채 창 밖만 바라보는 커플이 많다는 설명이었다.

◆'월하빙인'은 멀리 있지 않다

청춘 남녀의 만남을 주선하는 일은 예로부터 매파(媒婆)의 몫이었다. 중년 이후의 노파들이 이 역할을 많이 해서 '할미 파'(婆)를 쓰게 됐다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남녀 두 사람의 자유의사에 의한 결합을 기피하는 경향이 강해 매파의 존재는 필수적이었다. 서로 잘 아는 집안 간에도 일가친척을 중간에 내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혼인적령기의 자녀를 둔 집을 연줄로 찾아다니면서 직업적으로 중매하는 매파는 '마담 뚜'라고도 불린다. 유래는 정확하지 않지만 군사정권 시절 부유층이나 권력층들이 혼인을 매개로 한 신분 상승, 권력 유지를 위해 이들을 활용하던 게 서민층으로까지 확대됐다.

대구 시내에도 여전히 '마담 뚜'들이 활약하고 있다. 대구시내 유명 호텔들의 경우 고정적으로 '출입'하는 이들이 40여 명에 이른다.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자녀들 둔 부모들이 이들의 주요 고객이다. 다만 '마담 뚜'도 예전처럼 자리에 함께 앉아서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하지는 않고 소개만 해준 뒤 자리를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매쟁이를 고상하게는 '월하빙인'(月下氷人)이라고도 부른다. 중국 고서에 전하는 월하노(月下老'달빛 아래서 독서하고 있는 노인)와 빙상인(氷上人'얼음 위에 있는 사람)의 고사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요즘에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월하빙인'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구 중구 삼덕동에 있는 레스토랑 'B2'의 이지인(38'여) 사장은 본의 아니게 '사랑의 메신저'로 명성을 떨치게 된 케이스다. 최근 TV 오락프로그램에서 '맞선 명당'으로 소개되면서 서울과 대전 등지에서도 '잘 부탁드린다'며 찾아오는 손님까지 있을 정도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자발적으로 맞선'소개팅을 위해 찾아오는 손님이 한 달 평균 300쌍이 넘는다는 이곳에서는 웃지 못할 일도 많이 벌어진다. 파트너를 잘못 알아봐서 한참을 이야기한 뒤에 자리를 바꿔 앉는 남녀도 종종 있고, 평범한 레스토랑인 줄 알고 들어온 커플들이 어색해하며 발길을 되돌리기도 한다. 이 사장은 "인상 좋은 단골손님들의 명함을 받아뒀다가 서비스 차원에서 괜찮은 선후배나 분위기가 어울리는 고객들끼리 소개해준 게 시작이었다"며 "결혼 직전까지 다다른 커플도 여럿 된다"고 전했다.

'중매를 잘하면 술이 석 잔, 못 하면 뺨이 석 대'라는 말도 있지만 결혼정보회사들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수백만원에 이르는 가입비는 부담스러워도 만남 당사자들의 신분을 확실하게 보장한다는 장점 덕분에 회원 수가 계속 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정회원이 1천500여 명 정도인 '닥스클럽' 김민규 대구지사장은 "정회원들의 졸업증명서'재직확인서 등을 직원들이 직접 관련 기관을 찾아 발부받고 있다"며 "여성들은 상대의 직업, 남성들은 외모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여전히 강하다"고 했다.

◆첫 만남 실패하지 않으려면

맞선이나 소개팅 날짜가 잡혔다면 상대가 어떤 스타일의 이성인지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키는 얼마나 큰지,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말을 해야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을지 등등 신경 쓰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IT 기술의 발전은 이 같은 선남선녀들의 궁금증 해소에 도움이 되고 있다. 페이스북과 같은 SNS 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미팅 현장에 나가기 전에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쉽게 입수할 수 있는 덕분이다. 반면, 부작용도 적지 않다. 회사원 이주연(32'여) 씨는 "주선자로부터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받으면 카카오톡으로 사진부터 확인하는데 남자들의 경우 사진을 올려놓지 않는 경우가 많아 여자들이 손해인 듯하다"며 "상대방이 연락해오지 않을 경우에는 외모 때문에 거부당한 것 같아 기분이 나쁠 때가 많다"고 했다.

이와 관련, 아무 생각 없이 SNS에 올린 글 때문에 만남을 망치는 사례도 많다. 결혼정보회사 '가연' '안티싱글'이 7월 미혼 남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7%가 '소개팅 전에 상대방의 SNS를 찾아본 적 있다'고 답한 가운데 61%가 'SNS가 소개팅에 영향을 줬다'고 응답했다. 특히 소개팅을 망치는 SNS 글로는 '비방이나 허세가 담긴 포스팅'(40%)이 가장 많이 꼽혔으며 '수많은 이성친구의 댓글'(32%), '지난 사랑의 흔적'(17%) 등이 뒤를 이었다.

맞선'소개팅을 대하는 남녀 간의 의식 차이는 기대했던 만남이 '애프터'로 이어지지 않는 원인이 되곤 한다. 일반적으로 남성들은 결혼까지 염두에 두고 나오는 데 비해 여성들은 연애 상대를 원한다는 것이다. 남성들이 첫 만남부터 결혼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꺼낸다면 십중팔구 '비호감'이란 소리를 듣기 마련이다. 이주연 씨는 "여성들은 상대방의 조건보다는 느낌을 훨씬 중요시하는데 남성들이 이를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연봉 등 경제력에 대한 질문은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드는 결례"라고 꼬집었다.

대구의 결혼 적령기 여성들은 괜찮은 신랑감이 없다는 푸념도 많이 한다. 대기업 등 내로라할 만한 직장이 많지 않은데다 지역경제가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으면서 능력 있는 젊은 남성들이 수도권으로 많이 이동했다는 것이다. 교사, 공무원 등 대구지역 미혼 여성들이 수도권 전출을 앞다퉈 신청한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린다.

그러나 이에 대한 지역 남성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2년 전 서울로 옮겼다는 이동현(30) 씨는 "경제력 차이가 원인이겠지만 서울 여성들은 남자에게 덜 기대하는 것 같다"며 "만남의 분위기도 대구보다 훨씬 자유롭다"고 털어놓았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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