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보수성을 지역 강점분야 혁신동력으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4년간 대구는 지역 경제계의 끊임없는 연구와 개발, 시와 대학 및 연구지원기관 등의 지원에 힘입어 수출, 산업생산, 취업자 증가율에서 전국평균을 크게 상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대구경북의 소비자심리지수도 큰 폭으로 상승해 1년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소비심리 회복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수도권으로의 지속적인 부(富)와 인재 유출로 인한 수도권과 지방의 불균형이 심화되는 악순환 구조의 고착화는 시민들을 여전히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다.

경제학의 기본가정인 "세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에 의하면 수도권 집중화는 당연한 현상이다.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경제와 문화 및 교육 등 전반에서 집중과 우위에 있는 수도권으로 사람과 돈이 이동하는 것은 '합리적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지방은 자포자기하고 대한민국 내 2등 시민(?)으로 머물면서 손 놓고 있을 것인가?

조건을 변경시킨다면 경제학의 기본가정이 바뀌어 '합리성'을 극복할 수 있듯이 수도권과는 다른 지방만의 차별화된 특성을 만들거나 이러한 특성에 대한 '감성', 즉 문화를 만든다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도 있다. 이와 관련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독일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일은 대기업보다는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 중심의 국가다. 정보통신(IT)과 겉보기에 화려한 첨단산업은 별로 없지만 기계산업과 정밀화학 등 기초 산업의 경쟁력이 탄탄하다.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 '히든 챔피언'이 많고 이를 뒷받침할 인재를 길러내는 직업교육도 발달해 있다.

이런 점에서 기계금속업 기반의 중소기업 중심에다 교육도시, 그리고 보수적인 시민적 특성 측면에서 대구는 독일과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구와 독일의 경쟁력은 차이가 크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독일은 제조업 중 특히 기계관련 산업과 자동차 산업에 관해선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이며, 이들 특화분야에 대단한 긍지를 가지고 있다. 우리 대구는 어떤가? 한때 대구 하면 최고의 사과산지, 세계적 섬유산지, 지역의 K고교, K대 사대와 전자공학과, Y대 상대 등 몇몇 분야에서는 전국 최고라는 긍지를 가진 적도 있었지만 최근 들어 수도권 블랙홀 현상으로 이런 분야가 경쟁력을 잃었다.

둘째, 독일 사람 하면 떠오르는 부정적 특성과 이미지는 보수성과 폐쇄성이다. 일반적으로 보수성과 패쇄성은 혁신에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떻게 독일은 기계와 자동차산업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혁신을 구가하고 있을까? 그 답은 바로 보수성과 폐쇄성을 특정분야에 대한 귀속감과 애착, 그리고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강한 의지와 뚝심으로 전환해 이를 혁신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이에 반해 대구의 경우 보수성과 폐쇄성을 집단사고(group think)와 '끼리 문화'로 전락시키다 보니 현실안주와 기득권 보호에 치중, 결과적으로 지역경쟁력 약화로 나타나고 있다.

대구에도 대구텍, KOG, 라온엔터테인먼트 등과 같은 강소기업이 있으며 다른 지역이 부러워하는 수성구와 일부 고교, 그리고 인구 250만 명의 대도시답지 않게 교통체증이 덜한 것 등 강점이 많다.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장점을 소중히 여기고 이들 분야를 발전시켜야 한다. 또한 지역대학들을 똘똘한 명문대학으로 육성함과 동시에 새로운 특화분야를 발굴한다면 유능한 인재 유출을 막고 역외의 우수 인재들도 몰려올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역민들이 긍지를 느끼는 대구다움, 즉 대구 특유의 지역문화를 되살리거나 만들어 내야 한다.

물론 1980년대 초부터 중앙정부에 의한 획일적 교육제도가 지역의 인재배출 기반을 붕괴시켰을 뿐 아니라 인재의 유출은 물론 지역문화의 독자성마저 상실케 한 요인이다. 하지만 정부탓을 하기에 앞서 지역 특유의 강점을 살리고 이를 소중히 여기려는 지역 스스로의 노력 부족이 더 문제였다.

우리 스스로 특유의 강점분야를 소중히 여기고 긍지를 가짐과 동시에 우리의 보수성과 폐쇄성을 지역발전의 동력으로 승화시켜 이를 혁신으로 연결시키는 작업을 지역브랜드화, 즉 지역문화화한다면 대구는 한국 최고 도시를 넘어 세계적인 도시가 될 것이다. 한 도시의 질(quality)은 도시 크기나 화려함이 아니라 그 도시 특유의 문화로 결정된다.

이재훈/영남대 교수·경영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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