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통 큰 양보가 필요하다

국가원수에 대한 막말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극에 달했다. 당시 한나라당 모 대변인은 "미숙아는 인큐베이터에서 키운 뒤에 나와야지"라며 대통령을 미숙아에 비유했다. 2003년 7월 한나라당 대표는 "과연 이 사람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인가, 나는 솔직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라고 했고, 지금은 새누리당 최고 실세가 된 한 의원은 그해 9월 "노무현이를 대통령으로 지금까지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은 '환생경제'라는 연극에 출연, 당시 노 대통령을 빗댄 주인공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기도 했다.

사실 느닷없이(?) 대통령을 뺏긴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거기다 대통령이 일반 정서와는 동떨어진 말들을 내뱉는데다 경제 상황마저 나쁘다 보니 지지도가 급락, 막말을 해도 괜찮은 대상이라고 생각한 국민들도 많았다.

시계추가 10년을 돌았고, 이번에는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을 '독재자의 딸' '박근혜 씨'라고 한 데 대해 새누리당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대통령에 대해 '씨' '공주' '독재 정권' 등 입에 담기도 부끄러울 정도의 말을 했다. 여야를 떠나 국가 지도자에 대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마저 헌신짝처럼 버려버린 종북 정당 대표의 막말에 국민의 분노가 엄청나다. 막말에 대해 사죄하고 자숙하라"고 공격했다.

이런 사태에 대해 민주당도 새누리당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막말을 끄집어내며 가세하는 분위기이다.

이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과거에 대통령 비하 발언이 나왔다고 해서 지금에 와서 우리도 그런 발언을 할 수 있다는 논리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국가원수에 대한 막말은 발언하는 사람들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망발이요, 국가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분명 자제돼야 한다.

막말 논쟁의 이면에는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파문이 자리 잡고 있다.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에 대한 수사를 검찰이 진행하고 있고, 법원의 판단도 남았으니 이를 지켜보자는 여당과, 검찰 수사를 믿을 수 없고, 국정원이나 국군사이버사령부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기관도 상당수 대선에 개입했으니 특검으로 가자는 야권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작금의 혼란은 검찰 수사 적절 시비가 발화점이 됐다. 검찰 지휘부가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특별수사팀을 지휘하던 윤석열 팀장(현 여주지청장)을 보직 해임, 의혹을 키워버렸다. 뭐라도 물고 늘어지고 싶어 하는 야권을 자극한 것이다. 또 감찰에 나선 검찰 지휘부가 공소장 변경 등 수사 확대를 시도한 윤 지청장에게는 중징계를 내리고, 축소 수사 의혹을 받던 지휘부에는 면죄부를 줘버렸으니 야권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했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었던 것.

여기다 48%의 지지를 받은 야당 대선 후보는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관련 수사를 한다며 참고인 신분이었는데도 공개적으로 소환한 반면 대선 때 유세장에서 기밀인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을 낭독해 고발당한 여당 거물 정치인들은 서면 조사를 했다. 야권과 SNS 등에서 난리가 나자 이 정치인들이 검찰에 자진 출석하겠다고 했고 그제야 검찰은 소환 조사한다고 발표했다.

이런 검찰 난맥상의 원인은 정권에 잘 보여 좋은 자리 차지하려는 지휘부와, 정치가 아니라 검찰을 통해 통치를 하려는 집권 세력에게 있다.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 문제는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엄정히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현 시점에서 검찰이 아무리 수사를 잘한다고 해도 야당은 수사 결과에 반발하게 돼 있다. 벌써 범야권연대까지 결성됐다. 이는 경제 회생 등 민생 문제는 손도 못 대는 결과로 귀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정의 책임은 야당보다 집권 여당과 대통령에게 훨씬 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120만 표나 되는 압도적 표차로 당선됐다. 누가 뭐래도 선거 결과에 시비를 걸 수 없다. 확실한 정통성이 입증돼 있는 것이다. 다만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 문제는 언제든 재연될 수 있으므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려면 수사 결과에 시비가 없어야 한다. 특검을 해서 수사를 하고 정치권은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민생 챙기기와 경제 살리기로 돌아가야 한다. 대통령과 여권의 통 큰 양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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