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가진 도구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대개는 청진기를 든다. 청진기의 원어인 'stethoscope'(스테서스코프)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가슴'을 뜻하는 'stetho'와 '본다'라는 뜻의 'scope'를 합친 것이다. 청진기를 처음 발명한 사람은 라이네크라는 프랑스의 병리학자이다. 1816년 어느 날, 루브르궁의 안뜰을 산책하던 라이네크는 아이들이 시소(seesaw) 양쪽의 나무판자에 각각 귀를 대고 서로의 소리를 듣고 노는 모습을 보았다. 이때 라이네크는 문득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는데, 아이들의 놀이를 응용해서 사람의 가슴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후 라이네크는 자신의 진찰실에서 종이를 여러 장 말아서 원통모양으로 만들어 한쪽 끝은 심장병을 앓고 있던 여자의 가슴에, 다른 쪽은 자신의 귀에 대보았다. 그랬더니 가슴 속에서 폐나 심장이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당시에 여성들을 진찰할 때 직접 가슴에 귀를 밀착시키는 것이 곤란했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한다.
훗날 그는 종이 청진기를 더욱 발전시켜서 둥근 나무조각으로 청진기를 만들었다. 그의 청진기 발명은 많은 질환들을 정확하게 진단하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의학사와 발명사에 빠짐없이 기록되고 있다. 그가 사망한 후 뿔, 스틸로 재질이 변했고, 현재는 디지털 방식의 전자청진기까지 등장했다.
전국의사총연합(전의총)은 얼마 전 공식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안내와 함께 3미터 길이의 청진기 사진을 올렸다. '한국형 청진기 공구(공동구매) 들어갑니다. 의사는 3m 떨어져 있고, 여환(여자환자)분은 의사 지시에 따라 청진기를 직접 본인의 몸에 대시면 됩니다.' 전의총은 이어 '아청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아시죠? 청진시에 여자환자분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고발한 경우 성추행으로 인정되어 벌금 수십만원 내고 나면 의사는 10년간 취업, 개설이 불가능합니다'라고 적었다.
전의총 등 의료계 일각에서 제기하는 현행 아청법의 문제는 아동'청소년의 성(性)을 보호한다는 아청법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성인 대상의 가벼운 성추행 등까지 '10년 취업'개설 제한'의 근거로 삼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주장이다. 현행 아청법은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뿐 아니라 성인 대상 성범죄의 경우라도 '형 집행 종료시부터 10년 동안 취업 또는 사실상 노무를 제공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당초 여자 환자의 가슴에 바로 귀를 대기가 민망해서 만들어진 청진기가 이젠 더욱 길어지게 됐다. 어쩌면 앞으로는 여성의 손목에 실을 매어 옆방에서 진맥을 했던 선조들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야할지도 모를 일이다. 참, 그런데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청진기 회사의 이름이 공교롭게도 3M(쓰리엠)이다.
정호영 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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