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와 주유소는 '온도 보정'을 거쳐 기름을 거래한다. 하지만 정작 주유소에서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소매 거래에서는 온도 보정이 이뤄지지 않는다.
또 액체인 휘발유와 경유보다 온도 변화에 따른 부피 팽창이 큰 가스는 몇 년 전부터 온도와 압력을 감안해 요금을 계산하는 것이 법으로 의무화돼 있다. 따라서 유류 구매를 할 때도 정확한 계량 기준을 토대로 온도 보정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정유사-주유소 거래, 온도 보정한다
우리나라 4대 정유사(SK에너지'GS칼텍스'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들은 주유소와 계약 시 온도 보정을 선택 조건으로 제시한다. 현재 석유 공급 방식은 크게 두 가지.
휘발유의 국제표준온도인 15℃를 기준으로 온도와 비중을 환산, 무게 및 부피 환산 수량으로 공급하는 네트(Net'형량법) 방식과 계절이나 온도에 관계없이 일정량을 공급하는 그로스(Gross'비교법) 방식이 있다.
네트 방식이 온도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취재 결과, 에쓰오일을 제외한 나머지 정유사들은 주유소 측에 선택권을 주고 있다. 에쓰오일은 여름철인 5~10월까지 네트 방식으로, 평균 기온이 낮은 11~4월까지는 그로스 방식으로 주유소에 기름을 공급한다.
SK네트웍스 관계자는 "매년 한 차례 계약을 갱신하는데 그때마다 주유소 측이 네트와 그로스 중에서 고를 수 있다"고 밝혔다. 현대오일뱅크도 "네트와 그로스 한 쪽으로 정해놓고 계약하는 것이 아니라 둘 다 사용한다. 주유소 측에서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자영 주유소는 온도 보정해 주지 않아
정유사와 한국석유공사 간 거래도 마찬가지. 정유사가 석유공사에서 비축유를 대여할 때 온도 보정을 받아 거래가 이뤄진다. 한번 거래할 때 수백만 배럴(bbl)을 대여하는 정유사 입장에서는 온도 상승에 따른 가격차가 엄청나기 때문에 온도 보정을 하는 것이 이익이다.
한국석유공사 관계자는 "비축유 및 비축시설 운용 기준에 따라 정확한 실물량을 빌려줘야 하기 때문에 온도 보정을 하는 네트 방식을 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유사 측의 횡포도 존재한다. 자사 폴을 단 주유소에는 '온도 보정'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제안하지만, 자영 주유소에는 온도 보정을 아예 해주지 않는다는 것.
대구의 한 자영주유소 사장은 "4개 정유사 기름을 다 받아서 쓰는데, 에쓰오일을 제외하고 다른 정유사는 온도 보정을 요청해도 들어주지 않는다"고 했다.
◆석유 소비자도 온도 보정 받아야
주유량을 정확하게 측정하지 못하면 주유소나 소비자 중 한쪽이 손해나 이익을 본다. 전문가들은 '거래의 공정성'을 위해서라도 주유할 때 온도 보정을 꼭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08년부터 도시가스는 온도와 압력이 보정된 상태에서 요금이 계산된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유동음향센터 임기원 박사는 오랫동안 '주유량 온도 보정 기술'을 연구해온 유량 측정 전문가다. 임 박사는 '새벽이나 밤에 주유하면 소비자한테 유리하고, 낮에 넣으면 불리하다'고 시중에 나도는 이야기를 실제로 검증했다. 2001년부터 2년간 기상청의 지난 50년 기온 자료를 토대로 지역과 계절에 따른 온도 차이를 확인했으며, 주유소 3곳을 2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온도 변화 시 실제 주유량에도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임기원 박사는 "기상청 기온 자료를 토대로 계산해보니 제주도 사람들이 매달 똑같은 양의 기름을 넣는다고 가정했을 때 4% 손해 보고, 춘천 사람들은 평균 기온이 낮으니 2%가량 이익을 봤다"며 "하지만 주유소의 위치나 지역, 주유량 등 다양한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누가 손해나 이익을 보는지 평균을 구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임 박사는 또 "겨울철에는 소비자가 주유할 때 이익을 보니 온도 보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도 있는데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주유소와 소비자, 양쪽 다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정확한 양을 거래할 수 있는 확실한 계량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년 3월까지 온도에 따른 부피변화 측정
평균 기온이 낮은 나라에서는 정유사와 주유소가 앞장서서 온도 보정을 하자고 나선다. 캐나다는 주유소 주유기에 온도에 따라 가격을 조정하는 자동 온도 보정장치(ATC)가 설치돼 있다. 기름이 따뜻하면 가격이 내려가고, 차가워지면 가격이 올라가는 식이다.
해가 갈수록 여름철 기온이 상승하는 추세가 계속된다면 기름 온도 보정 문제는 더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6월부터 한국주유소협회와 한국석유관리원, 소비자단체 등이 연합해 전국 100개 주유소를 대상으로 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전국 100개 주유소를 지정해 내년 3월까지 두 달에 한 번씩 경유와 휘발유의 정량 검사와 온도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기술표준원 관계자는 "실제 주유소 주유기에서 온도에 따른 기름의 부피 변화가 있는지 소비자단체와 관련 기관이 함께 참여해 조사 중"이라며 "내년 3월쯤 정확한 데이터가 나오면 경제적 효과를 분석해 정책에 반영할 것"이라고 했다.
기획취재팀=김수용기자 ksy@msnet.co.kr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文, 뇌물죄 기소에 "터무니없고 황당…尹 탄핵에 대한 보복"
이재명 "수도권 주요 거점을 1시간 경제권으로 연결"
文뇌물죄 기소에 "부동산 정책 실패하고 사위엔 특혜?" 국힘 일갈
[단독] 국민의힘, '한동훈 명의 당원게시판 사태' 덮었다
이재명 대권가도 꽃길? 가시밭길?…대법원 재판 속도전 의견 분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