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환자를 즐겁게" 병원, 안팎 변신중

구경거리 푹 빠져 아픈 것도 잊겠네

회색건물, 하얀 시트, 소독약 냄새. 뾰족한 침이 달린 주사. 생각만 해도 싫고 무섭다. 아프거나 다친 것도 서러운데 무섭기까지 하다.

'공포'의 진원지였던 병원들이 고정관념을 깨고 변신 중이다. 수납창구와 상담실, 진료실로 나눠진 전형적인 병원 구조에서 벗어나 한옥으로 탈바꿈하거나 갤러리, 전시관 등 볼거리를 마련하는 병원들이 생겨나고 있다. 커피 향 나는 치과, 갤러리가 있는 피부과 등 특유의 냄새와 딱딱한 분위기를 벗어던졌다. 일부 병원은 카페, 목욕탕까지 장착했다. 환자들이 편하고 즐겁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환자들의 선호도가 매출에 영향을 미치는 피부과, 성형외과는 물론, 병원 중 가장 무서운 곳으로 악명을 떨치는 치과, 수치심을 일으킬 수 있는 산부인과, 아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인 소아과를 중심으로 이 같은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병원이야 야구전시관이야'

10일 찾은 대구 중구 삼덕1가 동원빌딩 4층 올포스킨 피부과. 입구에 들어서자 멈짓해진다. '잘못 왔나'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이도 잠시. 이어지는 감탄사. 호텔 로비를 방불케 하는 화려한 샹들리에와 조명, 그리고 이승엽 메모리얼 룸과 메릴린 먼로와 오드리 헵번이 그려진 전시실까지…. '이건 병원도 아니고 야구전시관도 아니고 갤러리도 아니여' 심지어 진료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복장도 흰색 가운과는 거리가 멀다.

접수실 맞은편 이승엽 메모리얼 룸이 특히 눈에 띈다. 20㎡가 채 되지 않은 비교적 좁은 공간이지만 대구 야구를 대표하는 이승엽 선수의 일대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또 이 선수가 사용해 온 야구화와 MVP기념 볼, 캐리커처, 야구 방망이, 양말 등 300여 점의 기록물이 전시 중이다. 또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유승민 국회의원 등 지역 정재계 인사들과 연예인들이 직접 사인한 야구공들이 환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제는 제법 소문이 나 환자 외에도 야구팬들도 이 병원을 찾을 정도다. 이곳에서 만난 야구광인 필리핀인 준 씨는 메모리얼 룸을 구경하러 왔다가 환자가 된 경우. "워낙 야구를 좋아해 소문을 듣고 구미에서 달려왔어요. 온 김에 얼굴에 난 점도 몇 개 뺐어요."

이 병원 민복기 원장은 "야구가 인기 종목임에도 유명 선수들의 흔적을 남긴 곳이 없어 아쉬웠다. 미국 민간 야구박물관이나 유럽 축구기념관처럼 지역을 대표하는 스포츠 기념관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야구뿐 아니다. 김중식 화백(재불작가 시차 조명 전 회장) 초대전을 열어 1천㎡ 공간에 3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내년 1월부터는 최근 제27회 금복문화상 사진부문 수상자인 대구미래대학교 석재현 교수의 사진전을 기획하고 있다. 민 원장은 "대구가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메디시티와 컬러풀 대구를 화합, 시너지 효과를 얻는 차원에서 무료 전시회를 기획했다"고 덧붙였다.

북구 동천동 로즈마리 아동여성병원 내 1층 소아과 곰돌이 방. '으앙' 대기실에서 기다릴 때만 해도 무서워 울음을 참지 못하던 어린 환자들이 진료실에 들어서자 울음을 '뚝' 그친다. 로봇 태권브이, 은하철도 999, 철인 아톰에서부터 요즘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독차지하는 라바까지…. 진료실 내에는 아이들을 위한 소품과 장난감들이 그득하다. 진료실 한쪽에는 자동차와 비행기 등 모형이 있는 전시실까지 마련됐다. 이곳 이태우 원장이 어린이 환자들을 위해 직접 제작한 것이란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진료실 모습에 딱딱한 병원의 이미지는 어디에도 없다. 진료를 마친 어린이 환자. 언제 울었느냐는 듯 집에 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주사는 무서운 모양이다. '주사 맞을래' 엄마가 어르자 그제야 아쉬운 듯 진료실 문을 나선다. "병원은 무서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어린이 환자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로 진료실을 꾸며 놓았어요. 진료실에 들어와서부터 일단 무서워하지 않고 울다가도 뚝 그쳐요." 이 원장의 설명이다.

◆한옥병원, 목욕탕까지

중구 삼덕동 동부교회 뒷골목에 있는 임재양 외과 병원은 속은 물론 겉모습까지 성형했다.

언뜻 봐서는 병원이라기보다는 관광지에 온 느낌이다. 원룸 밀집 지역인 이곳에 뚝심 있게 '한옥'이라는 전통 양식을 고수하고 있다. 병원을 중심으로 앞과 뒤 주변은 온통 원룸 건물이다. 다닥다닥 늘어선 높은 원룸 건물 사이에서 낮은 목조 건물에 널찍한 마당을 갖춘 이 병원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요즘은 여행객들의 블로그에 올라올 정도로 관광 명소가 됐다.

속도 알차다. 마당에서부터 복도, 거실, 방으로 층을 이루며 깊어지고 아늑해진다. 병원 대기실인 대청마루에 오르면 대기 시간조차 치유의 시간이 된다. 안마당에서 바라보는 주택과 한옥 병원, 뒤편에 보이는 교회의 어우러짐이 묘하면서도 색다른 분위기다. 대로변에 있는 것도 아니고 큰 간판도 없다. 한옥이 어울릴 듯한 한의원도 아니다. 그러나 마당도 있고 바람도 있고 햇빛도 있다. "의사나 환자가 편안해하는 병원을 생각하니 자연히 한옥이 떠올랐어요." 임재양 원장이 한옥에 병원을 차린 이유다.

같은 동네에 있는 유방암'갑상선 전문병원 분홍빛으로 병원. 유방암 수술 환자들만 사용할 수 있는 목욕탕이 병원 안에 갖춰져 있다. 이곳엔 냉'온탕과 함께 사우나 등 목욕시설이 갖춰져 있고 한 번에 15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다. 또 힐링센타'복지연구소가 병원 내에 있다. 유방암 수술 후의 건강관리에 대한 강좌와 웃음 치료, 영양 상담, 에어로빅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유방암 수술을 받은 환자 중에 공중목욕탕에 못 가는 환자들이 많았어요. 수술에 따른 신체 변형을 부끄러워해서지요. 그래서 이들을 위한 전용 목욕탕을 마련했어요." 5년 전 이동석 원장이 병원 안에 목욕탕을 차린 이유다. 지금은 타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환자들도 무료로 사우나 등 관련 시설들을 이용할 수 있다. 유방암 수술 후 이곳 목욕탕을 자주 이용한다는 김정임(44'여) 씨는 "이 병원 목욕탕은 유방암 환자들에게는 사랑방이다. 수술 후에도 자주 오다 보니 제가 병원에 오는 건지 목욕탕에 오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 병원은 여성암 환우회 모임인 '분홍빛 사랑회'를 결성해 자문과 지원을 하고 있다. 또 청소년 봉사단 '생명사랑봉사대' 대구지부를 결성하기도 했다.

◆의사들도 변신

바리스타나 마사지사로 변신, 환자들을 위해 색다른 '몸 봉사(?)에 나서는 의사들도 있다. 손창용 부강외과 의원 원장은 환자들에게 직접 커피를 만들어 준다. 또 대기실에는 진동의자를 마련해 대기 때부터 치료를 시작한다.

손 원장은 "아프기 때문에 병원을 찾는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다. 커피향을 마시며 기다리는 동안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마디병원 최창동 원장은 노인환자들을 대상으로 직접 안마를 해주기도 한다. 이를 위해 스포츠 마사지에 대해 공부하기도 했다.

병원로비를 아예 카페형으로 바꾸는 병원도 유행이다. 동성로에 있는 행복을 심는 치과는 로비를 카페형으로 바꿨다. 커피향을 통해 병원 냄새를 없애고 환자들이 마음을 편히 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치화 원장은 "병원이 주는 딱딱하고 차가운 분위기를 지양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카페처럼 꾸며 환자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효성병원 분만실 앞에는 행복우체통이 있다. 예비엄마들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우체통이다. 요즘 같은 추운 날에는 따뜻한 어묵이 배달된다. 이 병원 로비는 전시장으로 자주 변한다. 모유 수유 사진전, 시어머니 며느리 행복 사진전, D라인 사진전 등 주제별 사진전이 정기적으로 열린다.

요리교실, MBA 과정 교육 등 각종 이색 프로그램도 환자들에게 힐링을 제공한다.

영남대병원은 중간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메디컬 MBA 과정교육을 개설, 경영 혁신 및 고객 만족을 동시에 꾀하고 있다. 푸른 미래 내과는 당뇨병 등 성인병 환자를 대상으로 성인병 예방 요리 교실이 정기적으로 열린다. 단순한 건강 강좌에 그치지 않고 실습을 통해 직접 당뇨환자용 식단을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경북대 병원로비는 아예 상설 공연장으로 변신했다. 주 2회 이상 점심시간에 1층 로비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연주하여 심신이 지친 환자들에게 감동과 훈훈함을 전달하고 있다. 12일에는 가수 이기찬의 공연이 펼쳐졌다. 계명대 동산의료원은 요즘 환자 반, 관광객 반이다. 의료원 뒤편 초록빛 잔디밭에 있는 선교박물관, 의료박물관이 들어서면서 유명 관광지로 변했다. 특히 대구시티투어코스, 중구청 근대골목투어코스로 선정되면서 유치원생부터 초'중'고등학생, 신학대학, 교회, 의료계 등 각계각층의 발길이 잇따르고 있다.

글'사진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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